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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 (목)

트럼프-머스크의 거침없는 공세, 그들에 맞서 본분을 지키려는 이들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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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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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스브스프리미엄 출범부터 지난 2년 반 동안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해 소개하고 글의 배경과 맥락을 짚은 해설을 쓰면서 저희도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 쓰는 해설은 오늘 글이 마지막입니다. 앞으로도 뉴스페퍼민트와 "미국을 알아가는 시간 아메리카노" 팟캐스트, 그리고 뉴스레터 "프린스턴에서 온 편지"를 통해 세상을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글과 칼럼, 인터뷰, 뉴스를 계속 전하겠습니다. 그동안 스프x뉴욕타임스 코너를 아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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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도 더 지났습니다. 첫 번째 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미국의 법과 제도, 관례를 하나하나 자기 입맛에 맞게 바꾸고 허물어뜨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그리고 트럼프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이른바 마가(MAGA) 진영의 공세에 온 미국 사회가 휘청이고 있습니다.

이전 칼럼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미국은 판례 중심의 보통법/관습법 체계를 따르기 때문에 법조문에 "무얼 하면 안 된다", "범죄다", 혹은 "불법"이라고 자세히 쓰여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법이 있더라도 기본적인 원칙을 건조하게 서술한 문장이라 해석의 여지가 매우 큽니다. 자연히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법을 피해 가거나 교묘히 어기고 무력화할 방법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미국 사회와 정치 제도, 특히 민주주의는 법을 어겼을 때 처벌 조항을 명시해 둠으로써 발휘되는 억제력보다도 제도와 원칙을 지키는 편이 더 낫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관행으로 굳어졌고, 그 관행을 누가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대부분 지켜온 덕분에 유지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한 뒤 수많은 관행을 보란 듯이 어기고 깨더니, 지난해 선거에서 승리해 백악관에 돌아오고 나서는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을 넘어 아예 "제왕"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은연중에, 때론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미국 사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를 견제하고 막아서지 못하는 건 근래 들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민주주의에 필요한 많은 원칙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트럼프의 개인적인 성향 탓도 있지만, 여전히 지난 선거에서 왜 참패했는지 원인을 두고도 내부적으로 갈팡질팡하는 힘없는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도 책임이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 15일 미국 정부 부채 한도 연장 기간이 종료돼 정부가 폐쇄(shutdown)될 위기를 앞두고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십분 반영해 짠 공화당의 예산안을 그냥 통과시켜 주자고 기존에 했던 말을 바꾸자, 당내에서 지도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의 내홍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은 민주당과는 명확히 다른 노선으로 트럼프와 머스크, 마가 진영의 의제에 맞서 싸우는 사람을 조명하려 합니다. 바로 버몬트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입니다. 2016년과 2020년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기도 했고, 법안을 발의하거나 투표할 땐 주로 민주당과 함께하지만, 샌더스 의원은 무소속이죠. 샌더스는 트럼프 행정부를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자본가들이 권위주의 성향의 정치인을 돈으로 매수해 결탁한 과두정으로 규정하고, 미국인들의 이익에 반하는 과두정을 끝장내야 한다며, 최근 전국을 순회하며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메간 스택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샌더스의 연설 현장을 취재한 뒤 칼럼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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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우리나라가 서서히 망해가서 겁나요"...미국인의 분노의 원천을 들춰내다


샌더스가 하는 말은 사실 그가 평생 해오던 주장 그대로입니다. 칼럼에도 쓰여있는 대로 전 국민 의료보험, 약제가 인하, 부자 증세, 주립대학 무상 교육, 노동조합 강화, 최저임금 인상 등 미국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 봤을 겁니다. 심지어 '몇십 년째 했던 말 토씨 하나 안 바꾸고 하는 거 지겹지도 않나?' 의문이 들 정도죠. 하지만 시류에 편승해 방점을 다른 데 찍고 말을 바꾸는 정치인들과 달리 샌더스의 우직한 주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를 맞아 갑자기 사람들의 귀에 쏙쏙 꽂히기 시작합니다. 효율을 찾는다는 명목하에 멀쩡한 제도를 마구 난도질하고, 공무원들이 속절없이 해고되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인들은 내 삶을 지탱해 주던 수많은 사회보장제도와 안전망도 저렇게 사라지는 거 아닐까 불안해하기 시작했고, 샌더스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와 달리) 이 불안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소위 "거 봐, 내가 뭐라고 했어?"라고 할 만한 순간이 온 셈이죠.

사실 샌더스가 해온 말들이 새삼 주목받기 시작한 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시작 전, 즉 대선이 끝난 뒤부터였습니다. 샌더스는 민주당이 무얼 잘못해서 선거에서 졌는지, 참패한 마당에도 왜 자명한 원인을 외면하는지 목소리를 높였죠.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에도 나와서 비슷한 내용의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거칠게 핵심을 요약하면 다음 답변 속에 민주당을 바라보는 샌더스의 여전히 유효한 진단이 담겼습니다.
제가 하려는 말은요, 평범한 사람들이 절대 바보가 아니란 말이에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다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단 말이죠. 그런데 실제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 있는데도, 자꾸만 나빠지는 경제 상황에 다들 힘들어하는데, 거기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 이 정당은 서민들 삶에는 관심이 없구나, 우리 삶이 어떤지 전혀 모르는구나 하겠죠. 그러면서 선거에서 표를 받길 바란다고요? 앞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죠. 심지어 물가 너무 올라서 다들 힘들어하는데 거기다 대고 민주당 지도부가 뭐라고 했습니까? 바이든 행정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일자리를 몇 개 창출했다느니, 실업률이 얼마나 낮다느니, 경제는 다 잘 돌아가는데 왜 그렇게 불만이 많냐는 식으로 꾸짖었어요. 그럼, 사람들은 당연히 실망하죠.


민주당이 지난 선거에서 진 이유, 그리고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별것 아닌 일로 치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왜 이 중요한 문제를 별것 아닌 일로 치부했을까요? 저는 민주당 지도부와 워싱턴 엘리트들이 실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연구기관이나 싱크탱크에서 발표하는 지표들만 보면 다 꿰뚫어 본다고 여겼는지, 제대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민주당이 버블에 갇혀있는 사이 오히려 유권자들을 만나 불만을 경청하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려고 애를 쓴 건 공화당과 트럼프 캠프였습니다. 물론 공화당이 내놓는 해법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펴는 정책이 다 좋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유권자들은 우리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는 부자 정당과 적어도 우리 얘기를 들어주는 정당 사이에서 어렵지 않은 선택을 한 셈입니다.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아 코르테스 의원(이하 AOC)도 결국, 사람들을 만나서 말을 듣는 데서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워싱턴DC에서 법 잘 만들고 행정부 견제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은 삶의 근간이 흔들려 불안해하는 미국인들을 만나서 안전망을 같이 지켜줄, 약탈적인 정부에 맞서 같이 싸워줄 정치인이 있다는 걸 알리고 풀뿌리 단계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독려하는 게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샌더스와 민주당 진보파 정치인들은 "과두정과의 싸움 전국 투어(Fighting Oligarchy Tour)"를 통해 유권자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무엇보다 '듣는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2025년 전 세계 정치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키워드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금 세상을 거칠게 두 진영으로 나누자면, 불평등의 원인을 제대로 들춰내고 마주하려는 쪽과 원인을 감추려 하거나 애써 다른 데로 돌려보려는 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자본주의가 기술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고 가장 발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시장 권력이 독과점 기업이나 소수 자본에 집중되는 걸 막지 못하면서 불평등이 심화한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치권력이 자본과 손을 잡거나 자본에 잠식되면서 불평등의 원인을 들춰내고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은 번번이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샌더스나 AOC는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과두정을 이루는 자본가들과 정반대 주장을 하지만, 전통적인 민주당의 태도는 다소 애매합니다. 결국,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은 이 문제에 관심을 끊은 채 언급도 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죠. 트럼프 대통령의 실정이 계속돼 불만이 커지면, 다음 선거에서 반사이익을 얻어 다시 정권을 되찾을 수도 있겠지만,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민주당만이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민주당 정권은 결국 '바이든 시즌2'에 그치고 말 겁니다.

샌더스나 AOC의 주장은 논리적인 구조나 정합성이 뛰어나 통찰력이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삶을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정확히 반영하기 때문에 뿌리가 탄탄한 겁니다. 트럼프 시대 들어 대다수 서민과 중산층은 기본적인 존엄을 위협받고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 좌절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당한 내 몫을 지키고자,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고자 싸우고 있습니다. AOC는 "제가 좌파, 마르크스주의자라 과격한 주장을 하는 게 아닙니다. 바텐더로 일해봤기 때문에, 근근이 하루하루 사는 일이 얼마나 고달픈지 알기 때문에 당연한 것, 상식적인 요구를 하는 겁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죠. 이 상식적인 요구를 외면하고 별것 아니라고 일축하는 민주당 엘리트가 있다면, 트럼프와 마가를 넘어서지 못할 겁니다.


본분을 지키는 이들의 싸움
사실 이번 주 최대 뉴스는 단연 애틀란틱 편집장인 제프리 골드버그가 초대된 줄 모르고, 시그널(Signal)이라는 메신저앱,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단톡방"에서 군사 기밀을 논의한 J.D. 밴스 부통령과 주요 부처 장관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시그널 게이트'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골드버그가 뉴욕타임스 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한 이야기 중에 "요즘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정권이 언론을 험악하게 몰아가려 하는 때일수록 언론의 본령, 기자의 본분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원칙에 충실한 언론이 권력에 책임을 묻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트럼프가 싫어서, 심지어 트럼프를 제거해야 하는 악마로 여기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동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건 자기 본분을 지키는 사람들의 싸움입니다. 즉, 자기 본분에 충실해지려는 기자를, 노동자를, 공무원을 공격하고 축출해 내는 건 돈과 자원이 무한히 많아 보이는 일론 머스크라도 절대 쉽지 않을 겁니다. 이들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동을 당당하게 인정받기 위해 싸우는 것이죠. 반면 트럼프와 머스크를 위시한 과두정은 샌더스가 지적한 대로 끝없는 욕심에 세금 더 안 내려고, 이미 높은 이윤을 더 올리려고, 권력을 자기 손에 더 집중시키려고 이미 없는 사람들의 것을 더 빼앗기 위해 제도를 허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과두정이 꿈꾸는 "MAGA"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Great)"가 아니라 "미국을 다시 극도로 불평등한 도금시대로(Gilded-Age)"에 가까워 보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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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표 D콘텐츠 제작위원 minpy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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