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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쓸모…‘힐링’ 아닌 폭력을 직시할 힘 [한승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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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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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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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어느 인문대 대학원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석사학위 과정에 지망한 학생이 있었다. 명문 대학 출신에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연구계획서의 문장이 조리가 없고 혼란스러웠다. 입학 면접에서는 면접관들 앞에서 다소 병리적으로 여겨지는 행동까지 보였다. 탈락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을 때, 창가의 햇볕을 즐기며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은퇴를 앞둔 노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인문학에는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도 있다고 하니, 일단 입학시켜 놓고 지켜보면 어떨까요?” 입학 정원에 여유가 있기도 해서, 그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인문학 대학원의 학습량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불규칙한 생활과 수면 부족으로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다. 정신과 계통의 지병이 있었던 그 대학원생에게 이런 환경은 치명적이었다. 약물 복용을 거르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시기를 놓쳤다. 폭주하는 망상을 제어하지 못하고 세미나 중에 횡설수설을 늘어놓는가 하면, 소통 장애로 동료들과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학교와 가족의 합의로 그는 쫓겨나듯 대학원을 떠나야 했다.



이처럼 전문적인 인문학자를 양성하는 훈련 과정은 인간의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기 어렵다. 그렇다면 서두에 등장한 노교수가 말한 ‘인문학의 마음 치유 효과’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대중 강연이나 자기계발서 시장에서 강조하는 ‘힐링’ 담론과 관련되어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성찰이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고 인생의 의미를 발견해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널리 알려진 인문학에 대한 이미지는 여기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나는 힐링을 말하는 ‘인문학’이 학자들의 인문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가치와 역할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효능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 휴식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간과 세계에 대한 ‘얕고 넓은’ 지식이나 삶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는 지혜는 다소간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심적 위기에 몰려 있는 사람에게 더 필요한 것은 치유에 특화된 심리상담이나 의학적인 치료다.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이 의약품을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인문학’에 마술적인 치유 효과 같은 것은 없다.



최근 발의된 ‘연예인 인문학 교육법’이 우려스러운 것은 이 지점이다. 이 법안에 의하면 연예기획사는 소속 연예인들에게 연 1회 이상 인문교육을 제공해야 하고, 위반할 경우에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대표발의자인 강유정 의원의 제안 이유에 따르면, 이 법은 치열한 경쟁과 대중의 평가에 노출되며 정신건강이 취약해지기 쉬운 연예인들의 ‘심리적 회복력’을 높이고 ‘내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 마련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효과는 의심스럽다. 바쁜 일정에 쫓기는 아이돌 그룹 멤버나 탤런트들이 1년에 한번 남짓 ‘인문학 강사’의 강연을 들으면 마음이 건강해지고 내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가정은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이 법안이 제안된 직접적인 계기는 아마도 근래의 몇몇 비극적 사건들일 것이다. 거기에서 노출된 문제들은 많은 점에서 심리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이다. 기획사, 언론, 대중과의 비대칭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연예인들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처하기 쉽다. 이런 경우 법과 제도는 잠재적인 피해자의 ‘버티는 힘’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잠재적인 가해자의 ‘폭력’을 제어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해주겠다는 인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은 고통과 부조리 속에서도 우울에 빠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일하는 노동자를 만드는 일 정도다. 반면 역사적, 사회적 구조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말, 글, 행위를 분석하는 비평적 인문학은 고통과 부조리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직시하도록 한다. 그것은 가짜 뉴스에 속지 않는 시민, 혐오 선동보다는 좋은 정책으로 표를 얻는 정치인, 노동자를 신체적, 정신적 위험으로 몰아가면서까지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기업가, 위헌적 비상계엄에 가담하지 않는 공직자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인문학은 우리의 아픈 마음을 치유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인문학 연구자가 생산하는 지식은 우리를 아프게 하는 구조를 인식하고, 비판하고, 개선해 나가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의 인문학 교육은 특정 직종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영리 기관이나 개인이 아니라 공적 제도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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