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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 20곳 줄줄이 탈락한 사회복지사… 그 뒤엔 시설장 횡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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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0일 사회복지사의 날 ]
약자 위한 빛과 소금 역할 수행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피해, 두 배 높은 수준
관장이 '평판조회' 테러, 재취업도 막아
예산 지원하는 정부와 지자체는 뒷짐
"결국 피해는 복지 대상자에게 간다"

직장 내 괴롭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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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갔다가 다시 찾아온 양관식(가명) 알지? 면접 보고 다니는지, 전화가 계속 오던데 내가 좋게 얘기 안 해줬지. 그래서 걔가 취업을 못 했잖아. 너도 갈 수 있는 데가 있겠느냐." (서울 한 노인복지관 관장)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10년차 사회복지사 A씨(30대)가 관장에게 들은 말이다. 관장은 수시로 일상적인 사안에 대해 반성문을 요구하거나, 업무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괴롭혔다. 관장이 예로 든 사회복지사 양씨도 '타깃'이었다.

양씨는 모욕을 못 이겨 그만뒀다가 3년이나 취업을 못 했다. 이직을 훼방했던 관장은 다시 찾아온 양씨를 선심 쓰듯 받아줬다. 숨소리조차 죽이며 일하는 양씨를 다른 직원들에게 본보기 삼았다. A씨에게도 "나가면 죽을 때까지 취업 못 하게 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3월 30일은 사회복지사의 날이다. 장애인·노인·아동·빈곤층 등 사회 곳곳의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복지사들이지만 59.1%가 폭행·폭언·부당 업무 강요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이는 일반 직장인의 두 배(직장갑질119 조사)에 달한다.

그래픽= 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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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곳 복지관 면접서 탈락, 그 배후엔···


A씨도 약 10개월간 20여 곳의 복지관 면접을 봤는데 모두 탈락했다. 탄탄한 경력 덕분에 서류는 매번 통과했지만, 면접에서 '너희 관장을 잘 아는데, 관장이 뭐라고 할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A씨는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 인정을 받았고 현재 중앙노동위원회에 사건이 계류 중이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현실이 답답하다. "다시 돌아간다면, 신고를 하기보다 그냥 견디면서 회사를 다닐 것 같아요. 아니, 아예 이 일을 선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종사자 권익지원센터에 따르면, 2024년 9월 25일~12월 31일 63건의 괴롭힘 사례가 접수됐다. 횡령 등 부정 행위 요구나 개인 업무 지시 등 부당 업무 강요가 가장 많았다. 센터 관계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당장 개입해야 할 사안들이 많았다"며 "사회복지사들은 '업계가 좁다'는 이유로, 피해를 드러내 놓는 경우가 많지 않는 만큼 피해는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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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레퍼런스 체크(평판조회)'는 '목줄'이나 다름없다. 일반 기업도 채용 시 평판 조회를 하지만, 복지시설 대부분은 규모가 작아 인사담당자가 따로 있기보다 기관장이 이 역할을 한다. 전직 사회복지사 B씨는 "작은 규모 시설에선 회계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 잘못된 것을 봐도 (눈 감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만한 사람을 선호한다"면서 "밖에 알려질까 봐 일부러 이직을 못 하도록 악의적으로 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요한 노무법인 노동을잇다 공인노무사는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예산 사업을 하는 곳들이 대부분 '관'하고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고, 또 까다로운 자격심사를 거쳐 통과되는 만큼 자기들끼리 네트워크가 상당히 강고하다"고 했다.

지원금 주는 지자체, 종사자 감독엔 무관심


예산을 지원하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도감독 권한은 입소자에 대해서일 뿐, 종사자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되는 한부모 보호시설 성심모자원에선 2023년 9월 시설장이 여성 입소자를 강제추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용산구청은 해임 이상 중징계를 내릴 것을 권고, 시설장은 사임했다. 그런데 성심원 이사장은 이를 관할 구청에 신고한 사회복지사 박세주(가명·58)씨를 해고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올해 초 부당해고가 인정됐으나, 성심원은 행정소송까지 가겠다는 입장이다.

서울 용산구 한부모시설 성심모자원 사무국장 박세주(가명·58)씨가 2020년 5월 28일 받았던 여성가족부 장관 표창. 박씨는 30여 년 사회복지사로 일할 정도로 '베테랑'이었던 데다 성과가 좋았던 복지사였지만, 시설장의 입소자에 대한 강제추행을 신고한 뒤 보복성 해고를 당했다. 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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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는 손을 놓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가 운영비를 거의 전액 지원하는 것은 맞지만, 관리감독은 관할구청인 용산구가 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용산구 관계자는 "노사 관계는 기관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시설에 종사하는 사회복지사가 괴롭힘이나 성추행을 당할 경우 고용청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김수정 국제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시설은 종사자 5인 미만의 소규모 시설이 많아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고, 10인 미만의 시설은 직장 내 괴롭힘 대응을 위한 취업규칙 수립 의무가 없다"며 "비합리적인 조직체계에서 상급자가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복지현장은 시설 종사자의 평판을 중요하게 여기는 특성이 있어, 신고 시 직업 유지에 위협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직업" 괴롭힘 만연한 현실 개선 돼야


사회복지사 등에 대한 괴롭힘은 복지 서비스의 질 하락으로 직결된다. 김 노무사는 "일단 진입하기만 하면 경쟁이 없는 시장이기 때문에, 경력이 많은 직원을 대우해 오래 일하도록 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자연스럽게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공적인 서비스를 운영하는 곳인 만큼 위탁이 아닌, 정부 운영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중학생 시절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의료사고로 실명했을 때 한 복지사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아버지가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정년을 앞둔 그는 시설의 횡포와 맞서 싸우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후배들에게 늘 이런 말을 합니다. '사회복지사는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직업'이라고. 저는 이미 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선례를 남기고자 합니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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