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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트랜스젠더 위한 ‘진료 가이드라인’ 기반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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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가 21일 서울 종로구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에 앞서 ‘한국트랜스젠더건강코호트연구’ 포스터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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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트랜스젠더가 몇명이나 될까요? 그중 몇명이 성별확정의료(호르몬 치료·성확정 수술 등)를 경험했을까요?”



서울 종로구 연구실에서 21일 한겨레와 만난 이선영 서울대학교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가 물었다. 답을 망설이자 이 교수가 말했다.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는 분명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지만, 국가 통계가 없어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이 교수를 비롯한 ‘한국트랜스젠더건강코호트연구’(KITE·Korean initiative for transgender health) 연구팀은 지난해부터 국내에 거주하는 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이분법적 성별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규정하는 사람) 등 성별다양성이 있는 이들 1000여명을 대상으로 국내외에서 받은 성별확정의료 경험과 그에 따른 건강 상태 변화를 추적·관찰하고 있다. 오는 2026년까지 이어질 연구로, 국내에서 진행된 트랜스젠더의 의료 경험 조사 중 최대 규모다. 성별확정치료 사실을 의무기록을 통해 확인한 이들에 대한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성소수자 친화 의료기관 8곳의 의료인과 연구자 10여명이 조사에 손을 보태고 있다.



이들이 이런 연구에 나선 건 성소수자 건강권 보장에 필요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트랜스젠더는 의료적 조처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선영 교수는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몸을 보며 느끼는 성별 불쾌감(위화감)을 해소하길 원하는 많은 트랜스젠더가 성별확정의료를 필요로 하고, 국내외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이가 성별확정의료를 접하는지, 이런 치료가 성별 불쾌감 해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등 데이터가 없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의 부재는 성별확정의료를 고민하는 이들의 의사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이 교수는 “하다못해 감기약을 먹더라도 대부분의 환자가 부작용은 없는지, 다른 이들은 얼마나 만족했는지 등을 궁금해 한다. 그런데 국내 트랜스젠더들은 자신이 만난 의료진의 진료 경험에 바탕한 설명만을 듣고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인 특성에 맞는 의료 지침도 부재하다.



한국성소수자의료연구회가 세계트랜스젠더보건의료전문가협회(WPATH)의 진료 가이드라인을 2021·2024년 두 차례 번역해 국내에 소개했지만, 이를 한국인 진료에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적 환경도, 신체적 특질도 국외와 다르기 때문이다. 연구팀 일원인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은 “한국은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호르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 수도권 등 대도시에 집중돼 있어 비수도권 환자의 경우 국외 가이드라인 권고만큼 자주 병원을 찾아 주사를 맞기 어렵다”고 했다. 잦은 병원 방문이 여의치 않은 환경에선, 한 번에 투약하는 주사제 용량을 최대한 늘려야 하는데 이로 인해 감정 기복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



추 원장은 “국내에서 트랜스여성에게 많이 쓰는 한 남성호르몬 억제제의 경우, 한국인의 유전적 특질로 인해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뇌하수체 호르몬 수치 상승이 상당히 자주 발생한다. 이런 부작용을 이해하고 알맞은 약을 처방하려면 국내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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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 은 올해 초 발표회를 열어 지난해 진행된 조사 결과를 일부 공개했다. 연구 참여자 절대 다수는 성별확정의료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살면서 한 번 이상 자살 시도를 한 적 있다는 응답자가 약 33% 달했는데, 이들 중 약 69%가 성별확정치료를 시작한 뒤 자살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의 종류 에 따라 만족도엔 다소 차이가 있었다. 호르몬 치료에 ‘만족했다’는 비율이 90.5%에 달해, 성별위화감 해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환·난소·난관 등 생식샘 제거 수술의 만족도가 트랜스남성과 트랜스여성 각각 83.9%, 86.6%로 높은 반면, 음경·질 등 생식기 형성수술 만족도는 52.0%, 65.2%에 그쳤다. 추 원장은 이런 차이를 두고 “자신이 인지하는 성별과 반대되는 성별의 신체 특징을 없애는 치료를 당사자들이 더 시급하게 필요로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조사가 한국인에 맞는 ‘트랜스젠더 진료 가이드라인’ 밑자료이자 성별확정의료의 건강보험 적용 필요성을 설명할 근거로 쓰이길 기대한다. 이 교수는 “그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성별확정의료의 효과와 부작용, 만족도 등을 데이터에 근거해 설명함으로써 당사자들의 의사 결정을 돕길 바란다”고 말했다. 추 원장도 “일부 법원이 트랜스젠더의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성별 정정에 필요한 요건으로 만족도가 비교적 높지 않고 비용 또한 많이 드는 생식기 형성 수술 등을 요구하는 관행에도 제동을 걸 수 있을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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