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
스티븐 미런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장이다. 트럼프에게 정책 방향 등을 제시한다. 전통적으로 자문위원장 자리는 경제학자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미런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기는 했지만, 학계보다는 금융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올해 2월 미 의회 인준을 받기 전까지 자산운용사 허드슨베이캐피털매니지먼트의 선임 투자전략가로 일했다.
“강달러가 문제야!”
미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2024년 11월 미런이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놓았다. ‘글로벌 교역시스템 재구성에 대한 가이드(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다. 그는 “보고서 내용이 트럼프 행정부나 소속사인 허드슨베이와는 무관하다”고 했지만, 서방 미디어는 “트럼트 경제전략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읽어야 할 글”이라고 평했다. 사실 제목부터 한국 등 미국 시장에 기대는 나라가 민감하게 반응할 만하다. 분량도 A4 용지 40쪽 정도나 된다. 정작 핵심 내용은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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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무역적자는 강달러가 원인
중국, EU 등을 관세로 압박해
제2의 플라자 합의 이끌어내야”
미국과 글로벌 시장 반발 가능성
스티븐 미런 미국 경제자문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교사다. 사진은 올해 2월 미의회 인준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블룸버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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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불균형의 뿌리는 만성적인 강달러다. 이는 국제교역의 균형 잡기를 방해하는데, 강달러는 대외준비금 자산(외환보유액)을 확보하기 위한 비탄력적인 달러 수요에 의해 발생한다. 세계 총생산(GDP)이 증가할수록 대외준비금 자산을 공급하고 안보 우산을 제공하기 위해 돈을 대는 일이 미국에는 더욱 부담스러워진다. 동시에 (미국 내) 제조업과 교역 부문이 그 비용의 충격을 감당하고 있다.”
약달러 전략 추진할 듯
2000년 이후 미국 달러지수. 중앙그래픽 |
약달러는 미 경제 실상과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은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무역과 재정 모두 구멍이 났다. 미 국채를 해외에 팔아 조달한 자금으로 적자를 벌충해야 하는 구조다. 이때 강달러는 필수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와중에는 미 국채를 사는 해외 투자자가 손해를 볼 수 있어서다. 1980년 이후 미 대통령과 재무장관,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들이 재정을 팽창시키고 통화를 증발하면서도 하나같이 “달러 가치 안정”을 부르짖었던 이유다.
3저 호황의 추억
트럼프의 관세전쟁도 약달러와 거리가 멀다. 역사적으로 관세장벽을 쌓는 나라의 돈 가치는 강세였다. 그런데도 트럼프가 북을 치고 깃발을 흔들며 관세전쟁에 열 올리고 있다. 그 바람에 트럼프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엿보인 지난해 가을 이후 미 달러 지수가 기준치(1973년 3월=100)를 웃돌고 있다. 트럼프가 왜 앞뒤가 맞지 않는 움직임을 보일까. 이유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미런의 보고서에 들어있다.
미런의 보고서에 따르면 관세전쟁은 마약성 약물인 펜타닐 공급차단이나 불법이민자 단속 등 미시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판, 즉 21세기형 플라자 합의(마러라고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지렛대다. 이 과정에서 뉴욕 증시가 휘청이는 것도 “실물 경제가 더 중요하다”며 감수할 태세다.
트럼프의 약달러가 이뤄질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강달러 덕분에 글로벌 머니가 미 증시에 집중되면서 미 경제가 예외적으로 탄탄한 흐름(America’s Economic Exceptionalism)을 보였다. 이런 흐름과는 배치되는 전략을 트럼프가 쓰려고 한다.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반발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한국은 플라자 합의와 관련해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 ‘저유가·저금리·저달러’라는 3저 호황이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이 트럼프 약달러 전략에 대해 기대 섞인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역사가 되풀이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무엇보다 약달러는 한국이 외채에 시달리던 시대에나 좋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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