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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진호의 퍼스펙티브] 유럽 1270조 재무장 계획…프랑스 핵우산에 유럽군 창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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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밀착으로 흔들리는 대서양 동맹



중앙일보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후 3년이 넘도록 정치적 타협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트럼프 2기 출범으로 미국이 러시아에 전격적으로 손을 내밀자 ‘종전 거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달 중순 우크라이나와의 협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크렘린궁을 방문한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특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무려 8시간을 기다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종전에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준 장면으로 해석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일(현지시간) 미국의 중동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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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크라 문제 연내 종결 추진

러시아, 우크라 중립국화 노림수

미·러 손잡자 대서양 동맹국 충격

독일, 안보 위해 징병제까지 검토

미국의 한국 패싱 예의주시하며

대체불가 한·미 동맹 점검할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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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 대해 “실용적이지 않다”며 일찌감치 러시아의 손을 들어줬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의 국경을 (크림 반도를 강제 병합한) 2014년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비현실적인 목표”라고 일축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지침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국방비가 1000조원을 돌파해 ‘천조국’으로 불리는 미국은 해외 군사개입 축소 방침을 제시하며 2차 대전 이후 수행해온 세계 경찰국가의 사명을 포기하려는 태세다. 대신에 해외 주둔 미군을 구조조정하고, 동맹국에 더 많은 안보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향후 5년 동안 매년 국방비를 8% 감축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와 유럽의 군사적 긴장이 상시화할 가능성을 키우고, 이는 미국의 핵심이익을 위협하는 현상 변경이 될 수 있다. EU와 나토 등 민주주의 진영은 전쟁 종식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새로운 국경선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지원 없이 전쟁 어려운 우크라이나

하지만 종전 협상 계약 당사자가 될 미국이 새로운 국경선을 보증한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체 면적의 20%에 해당하는 영토를 영구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무장해제와 중립국화 등의 굴욕을 감내하고 러시아의 세력권에 포위된다면 미국은 러시아와 경쟁할 이유가 사라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범 국가’ 러시아를 미국의 핵심이익으로 관리하려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다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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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지원 없이 자체 군사력만으로는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독일 ‘킬 세계 경제 연구소(IfW Kiel)’에 따르면 개전 이후 2024년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사회의 안보 지원 중에 미국은 42.7%를 차지했다. 미군의 감시정찰 자산과 상업용 위성이 수집한 러시아군 핵심 표적 등 군사 정보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 지난 2월 말 워싱턴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 정치 엘리트들에 둘러싸여 온갖 수모를 당했다. 그런데도 그가 정상회담 파행 직후 서둘러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과의 뜻을 밝히고 광물협정 서명 의향을 밝힌 것은 대체불가한 미국의 능력과 영향력 때문이다.

종전 놓고 당사국들 수싸움 치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둘러싸고 이해 당사자들의 수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트럼프 2기 대외 정책이 선명해지면서 상수가 된 러시아의 위협에다 동맹 미국이 없는 안보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유럽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강대국 국제정치의 귀환에 따라 이제 유럽도 각자도생의 생존 게임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불완전한 정전이든 불가역적 종전이든 어떤 형태로든 올해 안에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전쟁을 조기에 종식하면 우크라이나에 투입해야 할 자원과 역량을 대중국 봉쇄에 집중할 수 있다. 종전 이후 러시아를 주요 8개국(G8)에 복귀시켜 중국과 러시아의 ‘전면적 전략 협력 관계’를 약화하는 ‘역 키신저 전략’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완전한 승리를 추구한다. 과거 ‘민스크 협정’(2014년 1차, 2015년 2차 협정)처럼 불완전하고 모호한 상태로 전쟁을 동결한다면 또 다른 갈등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이 추구하는 완전한 승리란 우크라이나가 패전을 인정한 뒤 헌법을 개정해 중립국화를 선언하고, 영토 회복 의지 조항을 영구적으로 삭제하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이런 의도가 실현된다면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동진을 차단·흡수하는 완충지대이자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남게 된다.

유럽, 우크라 평화유지군 창설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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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을 위해 ‘국제 평화유지군’(유럽 방위군) 창설을 논의 중인 유럽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8000억 유로(약 1270조 원)의 ‘유럽 재무장 계획(ReArm Europe)’을 발표했다. 향후 4년간 대규모 예산을 투자해 유럽의 방위산업과 국방력을 재건하고, 미국산 무기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등 2030년까지 유럽 중심의 대비태세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나토 회원국 내부에 누적된 미국 핵 억제의 정치적 신뢰성 문제와 트럼프 2기 해외 군사 개입 최소화 영향으로 유럽판 확장억제 논의도 확산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에 맞서 유럽의 동맹을 보호하기 위해 ‘핵 억제력 대화’를 선언했다. 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연례적으로 발표하는 ‘2024년도 연감’에 따르면 프랑스는 약 29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반면, 러시아는 미국(약 5044기)보다 많은 약 5580기로 평가됐다.

러시아와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핵 능력을 보유한 프랑스가 핵우산을 주장하며 유럽의 구원투수를 자처하는 데는 자체 핵무장을 주장했던 ‘드골의 통찰’이 유럽을 각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동맹의 가치를 부정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신주류 ‘냇콘(National Conservatism·Natcon)’의 폭주를 보면서 유럽은 미국이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자각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치권이 드골주의를 추앙하고, 폴란드가 핵 자강과 함께 차선책으로 프랑스 핵 공유 옵션을 검토하는 이유다. 다만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미국의 핵우산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유럽의 독자 핵우산론에 선을 그었다.

독일 정치권은 인프라·국방 특별 예산을 수립하기 위한 헌법(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독일은 향후 10년간 5000억 유로(약 791조원) 규모의 특별 기금을 편성해 경제 및 국방 분야에서 획기적인 체질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EU의 ‘모범 검소 국가’ 덴마크는 2025~2026년 국방비에 70억 달러(약 10조원) 규모를 추가 편성해 대대적 재무장에 나섰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라트비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듬해 징병제를 부활했고, 프리드리히 메르츠 차기 독일 총리는 징병제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의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와 인접한 폴란드는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통해 가장 모범적으로 자강을 추진하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매년 국내총생산의(GDP)의 4% 이상을 국방비에 지출하도록 하는 헌법 개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징병제 폐지에 따른 대비 태세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2027년부터 매년 10만 명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군사훈련을 시행해 예비전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자유 수호해온 나토 동맹 닮은 한·미 동맹

냉전 시기 소련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1949년 4월 결성된 나토가 올해 창설 76주년을 맞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전 사무총장은 2019년 나토 창설 70주년 기념식에서 “유럽과 북아메리카 동맹국들은 전례 없는 평화와 번영을 구축했다”며 “나토를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동맹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가장 성공적인 동맹 나토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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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보다 4년 뒤인 1953년 7월 출범한 한·미 동맹은 올해로 72년째를 맞는다. 한·미 동맹의 역사는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온 나토의 여정과 유사한 경로를 밟아왔다. 한·미 동맹은 북한의 현존 위협은 물론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한 대체 불가한 안보자산이다. 한국 정부는 최근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인도·태평양 지역을 순방하면서 한국을 패싱하고 필리핀과 일본을 방문한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러 밀착과 대서양 동맹의 약화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적과의 동침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냉혹한 안보 현실을 보여준다.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되 초불확실성 시대의 복합 위기에 대비해 가치와 실용을 넘어서는 담대한 대외 정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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