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가 마침내 관세 정치를 시작한다. 지금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여론의 전쟁터에서 싸워왔다면, 지금부터는 실전이다. 관세 부과는 규칙이 없는 전쟁이다. 여기까지라고 선을 그어놓고 싸우지 않는다. 적어도 세금에 있어서는 '가상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도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 미국인들이 현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관세를 내는 일이다. 트럼프의 관세가 어떻게 세계 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몰아넣을지 알아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상호 관세 부과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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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 대책으로 꼽힐 만한 게 있다.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이 1974년 10월 시작한 '인플레이션 타도(Whip inflation now·WIN)' 캠페인이다. 당시 포드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이자 훗날 최장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조차 "믿을 수 없을 만큼 멍청했다"고 평가한 캠페인이다.
포드 대통령은 'WIN'이라는 흰 글씨가 새겨진 빨간색 버튼을 달고 진행한 TV 연설에서 "실내 난방 온도를 낮추고, 카풀을 하고, 정원을 가꿔 인플레이션을 이겨내자"고 말했다. WIN 캠페인의 시각적인 우스꽝스러움은 부차적인 이유였다. 잘못된 처방이라는 점이 진짜 문제였다.
1973년 10월 제1차 오일쇼크 직전 배럴당 2.9달러이던 두바이유 가격은 포드가 연설할 무렵 12달러로 4배 이상 뛰어오른 상태였다. 베트남 전쟁 여파로 미국 통화량이 매년 10% 이상씩 증가한 것도 인플레에 불을 붙였다. 이런 맥락에서 포드 대통령의 WIN 캠페인은 공급에서 생긴 인플레 문제를 수요의 제한으로 풀겠다는 접근법 자체가 문제였다.
그런데 50년이 흐른 현재 비슷한 일이 반복될 기미를 보인다. 취임 100일이 갓 지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란 이름의 매서운 채찍질(whipping)이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2일(현지시간)을 세계 보편 관세의 시작점이라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이날은 높은 확률로 세계 스태그플레이션의 시작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학자들에게 스태그플레이션은 곧 희망 없는 미래를 뜻한다.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세가지 거시경제 지표는 국내총생산(GDP), 물가상승(인플레이션), 그리고 실업이다. 이 세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희망적이라면 어떻게든 몸을 추스를 수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모두가 비관적인 유일한 상황이 스태그플레이션이다. 경기는 침체하는데(GDP 축소 혹은 경제성장률 하락), 물가는 상승하고, 실업까지 대량 발생하는 상황이라서다.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는 포드 대통령이 WIN 캠페인을 벌이던 1970년대다. 당시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974년 –6.14%, 1979년 –2.37% 등으로 역성장했다. 실업률은 1975년 8.5%, 1980년 7.2% 등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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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도 1974년 11.1%, 1979년 11.3%였고, 1981년에도 10.3%로 높았다. 미국의 성장률, 물가상승률은 1980년대에도 들쭉날쭉했지만, 적어도 실업률만은 1983년 3.2%를 기록하며 점차 안정됐다. 그래서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 기간을 1973~1982년 10년간으로 한정할 수 있다.
미국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다시 올 수 있다는 전망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다. 우선, 경기침체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3월 30일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메모에서 "미국의 올해 1분기 성장률이 0.2%를 기록하는 등 2025년 성장률이 기존 전망치인 2.0%에서 대폭 둔화해 1.5%에 머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은 기존 20.0%에서 35.0%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아울러 올해 연말 핵심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예측치를 3.5%로 올렸고, 연말 실업률 예측치도 4.5%로 상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가 예상하는 미국의 평균 관세율 상승은 올해에만 15%포인트다.
그런데 해외 수입품에 관세를 물리는 일은 늘 상대적이다. 미국이 20%를 올리겠다고 해서 상대 국가도 20% 올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관세 전쟁은 항상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내포한다.
비록 실행에 옮기진 않았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보복관세 위협전戰이 대표적인 일이다. 캐나다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전기요금에 25% 할증료를 부과하겠다고 선수를 치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캐나다 유제품 등에 보복관세 250%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던 게 불과 3주 전 일이다.
1970년대 이후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석유와 같은 제품의 가격이 오랜 기간 극단적 수준으로 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이 모든 나라의 수입품에 일정 수준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고, 상대 국가들이 일률적으로 여기에 비슷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는 식의 악순환이 지속한다면, 이는 수많은 종류의 제품 가격을 일시에 수십퍼센트(%) 이상 끌어올리는 효과를 낸다. 그 결과 여러 제품의 소비가 쪼그라들고, 각국 기업들은 앞다퉈 공급을 줄인다. 공급량 감소로 대량 실업이 발생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은 완성된다.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은 1970년대 인플레이션 대책에 실패했다. [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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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과연 관세와 보복관세의 악순환을 버틸 힘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관세를 내는 주체를 두고 다른 의견들이 존재한다. 사실 경제학적으로 이견이 있을 순 없지만, 백악관 대변인을 포함해 많은 미국인은 소비자와 수입업자가 부담해야 하는 관세를 수출하는 국가가 부담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 2기가 지금 준비하는 2차 소득세·법인세 감세 패키지 효과는 무력화할 가능성이 높다. 관세의 증가는 그만큼의 증세를 뜻한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은 지난 3월 30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관세로 우리는 10년 동안 약 6조 달러를 거둬들일 것"이라며 "내 메시지는 관세가 감세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상식적이고, 평범하며, 경제 논리가 통하는 현실 세계에서 사는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피터 나바로의 '메시지'가 "연간 6000억 달러씩 10년간 증세한다"는 얘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미국인들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순간, 트럼프 2기 감세안은 6000억 달러 증세부터 시작하게 된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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