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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전남 강진군 백운동 원림(정원)에 붉은 동백꽃이 피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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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길 가득 그늘을 만드네(今成滿路陰)
가지마다 꽃 보숭이 맺혀 있네(頭頭結蓓露)
세한의 마음을 남겨두었다네(留作歲寒心)"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이 전남 강진군의 백운동 원림 풍경에 반해 쓴 '백운첩'의 한 대목(백운동 2경)이다. 귀양살이 중이었던 다산은 1812년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 등반 후 백운동 원림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백운동 원림은 재야 문인 이담로(1627~1701)가 17세기에 조성한 별서(집과 멀지 않은 곳에 지은 전통정원)였다. 다산은 백운첩을 이담로의 후손인 이덕휘(1759~1828)에게 선물했다.
백운동 원림은 2001년 백운첩이 알려지면서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속세로부터 숨겨진 천혜의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원림에 들어서면 다산의 표현에 절로 공감할 수 있다. 18년간 유배 생활을 한 다산의 마음을 위로한 절경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말 강진을 찾았다.
전남 강진군 백운동 원림에 핀 동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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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사후 다산은 유배지인 강진에서 실학을 완성했다. 훗날 다산학단으로 불리는 18인의 후학을 양성하고 이들과 5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 백성을 아껴 이들을 보살피기 위한 목민관들의 지침을 담은 '목민심서'도 강진에서 집필했다. 강진은 유배지였지만 그의 호에서 알 수 있듯 다산의 정신적 고향에 가까웠다.
다산초당과 백련사 잇는 동백길
전남 강진군 다산초당 앞에 매화가 피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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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서 다산의 자취를 좇기 위해선 만덕산 기슭의 '다산초당'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본래는 초가였지만 1957년 다산을 기리기 위해 한옥 세 채의 기와집(와당)으로 복원했다. 초당은 마을에서 300m가량 산길을 오르면 조용히 나타난다. 다산은 유배 8년째인 1808년 외가 해남 윤씨의 산정(산속에 지은 별장)이었던 이곳을 들른 후 경치에 반해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해배(1818년)되기 직전까지 머물렀다.
전남 강진군 만덕산 기슭의 '다산초당' 연못에 동백꽃이 떨어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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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은 제자들이 머물던 서암, 본채, 서재와 사랑방을 겸한 동암으로 구성돼 있다. 본채 뒤편에는 유배지를 떠나며 다산이 직접 자신의 성을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정석(丁石)바위’와 차를 우린 약수가 흐르는 ‘약천’이 있다. 본채 앞에는 절경을 감상하며 직접 차를 끓여 마신 넓적바위 ‘다조’가, 오른편에는 인공연못과 다산이 직접 강진만의 돌을 주워와 만들었다는 ‘연지석가산’이 있다. 이 네 가지가 다산이 '다산사경첩'(보물)에서 직접 꼽은 다산초당의 ‘4경’이다.
이를 보고 있자니 마침 내리기 시작한 봄비에 연못에 비친 초당의 반영이 흐려진다. 초가 지붕이었을 초당의 본래 모습을 함께 떠올려 본다. 누추한 귀양살이에도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닦았던 그의 일상이 느껴졌다. 다산초당 곳곳에서 정갈하고 소박했던 그의 성품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백련사 주위 동백나무숲이 울창하게 자라 햇빛을 가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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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산 차밭의 차나무와 후박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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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은 1.5km의 오솔길을 통해 백련사로 이어진다. 다산은 이 길을 걸어 그의 지음(知音)이었던 혜장 스님이 있는 백련사로 갔다. 높게 자란 나무에 대낮에도 그늘이 드리워진 숲속에서 둘은 학문을 논하고 우정을 키웠다. 현재도 경관이 아름답고 경사가 완만해 산책을 하기에 적당하다. 다산은 혜장 스님에게 유학을 가르쳤고, 혜장 스님은 다산을 차의 세계로 이끌었다.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혜장 스님이 초당을 들러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다산은 문을 걸어 잠그지 않았다고 전해질 정도다. 오솔길의 끝에는 작은 차밭이 있다. 혜장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의 다례를 위한 차나무가 여기서 자란다.
백운동 4경 단풍나무 빛이 어린 옥구슬 폭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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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12경 왕대나무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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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의 숲이 동백으로 붉게 물들었다면 백운동 원림의 숲은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만든 사계의 향연에 가깝다. 다산이 12경으로 꼽았던 백운동 단풍나무, 소나무, 왕대나무 등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때문에 어느 계절에 찾아도 다른 절경을 볼 수 있다. 동백나무가 만든 그늘과 나무들 사이로 스치는 바람 소리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원림 옆에 흐르던 계곡에 앉아 환상에 빠진 다산과 제자들을 상상해본다.
다산도 못 잊은 월출산 차
백련사 뒤로 푸른 강진만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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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입장 전 쇠북을 울릴 수 있는 백련사의 해탈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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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반했던 숲의 절경을 만끽했다면 다산의 정신적 벗을 만날 차례다. 길고 긴 유배생활에 다산과 함께했던 혜장 스님이 머무른 백련사는 통일신라 말기 839년 무염국사가 세운 천년고찰이다. 진입로에 쇠북과 고무망치가 비치된 해탈문이 있다. 사찰을 찾은 방문객이 경내에 진입하기 전에 직접 울릴 수 있다. 부드럽게 세 번 타종해 마음을 경건히 하라는 사찰의 뜻이다. 해탈문의 종을 울리고 경내에 진입하면 천천히 뒤를 돌아봐야 한다.
월출산 다원이라고도 불리는 설록다원강진에 차나무가 끝없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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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계 한 대가 한적한 차밭을 지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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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월출산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월출산 남쪽에 있는 천년고찰인 월남사지 인근에는 33ha(33만㎡)에 걸친 광대한 차밭이 펼쳐져 있다. 1982년 조성된 현대식 차밭이지만 다산이 즐겨 마셨던 월출산의 야생차가 기원이다. '차가 자라는 산'이라는 뜻의 호 다산도 만덕산과 월출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다산은 봄마다 만덕산과 월출산에서 야생찻잎을 따서 차를 우렸다. 1818년 유배에서 풀려 나 고향인 경기 남양주로 돌아갔을 때도 강진의 차를 맛볼 수 없음을 한탄했다. 이에 제자들이 '다신계(茶信契)'를 조직해 매년 봄에 다산에게 차를 보냈다.
아직 수확까지는 시간이 남았음에도 벌써 풍성한 찻잎이 달렸다. 이따금 지나가는 농기계와 바람에 돌아가는 풍차 말고는 움직이는 것이 드물다. 매일같이 달려야 하는 일상과는 다른, 평온한 공간이다. 드넓게 펼쳐진 차밭에서 다산이 그리워한 차의 맛과 향을 즐기다보면, 어지러운 속세를 홀연히 떠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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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40111480000630)
강진=글·사진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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