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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 파스 냄새 풍기던 목수 아빠, 6명에 '삶' 선물하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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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고 집 계단 오르던 중 쓰러져
아픈 어깨 수술 치료 미루다 사고
가족들에 요리 즐겨 해주던 아버지
장례서 돌아오니 절임배추 택배

장기기증자 반종학(57)씨가 1997년쯤 당시 두 돌 무렵이던 딸 혜진씨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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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갓길에 쓰러진 50대 목수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 6명에게 생명을 나누고 하늘로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해 12월 15일 가천대 길병원에서 반종학(당시 57)씨가 심장과 폐, 간장, 신장, 좌우 안구를 6명에게 기증하고 생을 마감했다고 7일 밝혔다. 반씨는 100여 명의 환자에게 피부, 뼈, 연골, 혈관 등 인체 조직도 함께 기증했다.

기증원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12월 11일 저녁 일을 마치고 귀가를 위해 집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20여 년 목수로 일해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컸던 고인은 평상시 어깨가 아팠지만 '수술을 하고 나면 목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미루고 일을 계속 해왔다고 한다. 그는 집 계단을 오르다 중심을 잃었는데 아픈 쪽 팔을 뻗어 난간을 잡지 못해 사고를 당했다.

고인의 딸 혜진씨는 '더 이상 치료의 의미가 없다'고 하는 의사 소견이 너무 갑작스러웠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가시는 길에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실 수 있었으면 한다"는 생각에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혜진씨는 "(장기기증 후에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하고 간절히 기다렸던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고인은 축구 경기를 같이 보러 가거나 자녀들에게 요리를 즐겨 해주던 다정한 아버지였다고 한다. 혜진씨는 "(생일이면) 미역국을 직접 끓여주시곤 했다. 사고 당일에도 장을 보고 계단을 올라오던 중 사고가 났다"며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자, 집에는 아빠가 주문한 김장김치용 절임배추가 도착해 있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혜진씨는 아버지를 떠올리면 아버지가 늘 온몸에 붙이고 다니던 파스냄새가 난다. 그는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은 인사를 남겼다. "아빠가 우리 아빠여서, 지금까지 이렇게 잘 커서 잘 살게 될 수 있었던 것 같아. 여행 많이 못 다녔으니까 하늘나라에서는 많이 많이 여행 다녔으면 좋겠어.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너무너무 보고 싶지만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을 거야. 사랑해 아빠"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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