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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 (토)

경북 산불, 인명 피해 줄인 40차례 대피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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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화해 149시간 동안 안동과 영양, 청송, 영덕 등 5개 시·군구를 집어삼킨 이번 산불은 여의도 156배 면적인 4만 5천여 ha를 태웠고, 57명의 사상자를 낳은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뉴스타파는 경북 산불의 주불 진화가 거의 완료된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2박 3일간, 최초 발화지인 의성과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영덕을 찾았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혼돈과 절망 속에 있었다.

우리 집은 완전 흔적도 없어. 폭삭 내려앉아서 샌드위치같이. 말도 못 해. 아이고 속이 상해서... 말을 못 하겠어.
- 서영자 / 영덕군 노문리


눈물이 안 나 억장이 무너져 가슴에 화가 치민다. 우리 아저씨가 일찍 돌아가셔서 열심히 살아왔는데, 빚이 많아 이 집을 억지로 건졌는데 한 번에 다 태워버려서 이걸 뭐 어떻게 하노
- 이순늠 / 의성군 구계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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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 석리는 이번 산불로 마을 전체가 전소됐다.

인명 피해 줄인 의성군... 신속한 긴급대피명령 발동

이번 경북 산불의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지역은 의성군으로 약 12,800ha가 불탔다. 대피 인원도 6,400여 명으로 5개 시군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반면 인명 피해 규모는 가장 적었다. 지난달 30일 기준, 경북에서 총 26명이 숨졌는데 지역별로는 △영덕 9명 △영양 7명 △청송 4명 △안동 4명 △의성 2명이다. 이중, 의성에선 헬기 조종사 1명 외에 80대 주민 1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의성군 관계자와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인명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던 배경으로 ‘선제적인 대피’를 꼽는다. 대표적인 예가 단촌면 구계2리에서 벌어진 긴급 대피 조치다. 구계2리는 전체 46가구 중 32가구가 전소될 정도로 의성군 내에서 산불 피해가 큰 지역이다.

지난달 25일, 류시국 구계2리 이장은 마을로부터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주민들을 직접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거동이 힘든 노령의 주민들까지 모두 대피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40~50분 전후, 류시국 이장은 이 같은 대피 조치에 앞서 약 2km 떨어진 곳의 불길을 처음 목격했다고 한다.

의성군의 ‘긴급대피명령’을 담은 재난문자 발송도 선제적이었다. 불길이 확산하던 25일 의성군이 발송한 대피 재난문자는 총 40차례, 횟수도 잦았고, 대피령을 받는 대상과 대피장소도 적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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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의성군은 총 40차례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했다.
류시국 구계2리 이장이 긴급 대피를 고민하고 있던 25일 오후 4시 14분, 마을 주민들은 다음과 같은 긴급재난문자를 전송받았다.

(긴급대피명령 발령) 산불 확산으로 단촌면 전주민과 등산객은 단촌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집결하시기바랍니다. [의성군]

대피 명령은 심할 정도로 하루 전날부터 한 걸로 알고 있고요. 또 화마가 닥치기 전 최소한 두세 시간 이전 많게는 한나절 이전에 해서 인명피해가 적었다고 보고, 어르신들을 모시는 과정에서도 돌봄이가 형성돼 있는 의용소방대 자율방범대 주민 등 자발적으로 형성된 주민 공동체가 움직여서 어른들 한 분 부상 하나 없이 사고 없이 옮겼다고 생각합니다.
- 박형진 / 의성군 관광복지국장


4시 반, 5시에 대피하라 하니 난리가 났지. 갑자기 소장님 전화 오지, 동장님 방송하지 갑자기 그냥 그러니까 이장님은 어른들 모시고 대피하라고 하는데. 만약 그렇게 안 대피했으면 여기 화 다 입었죠. 모두 다 죽었지. 불나는데 어쩔 수가 있어요.
- 박복희, 백문자 / 의성군 구계2리


계곡 타고 번진 산불... 방향도, 바람도 예측 불가
의성군과 달리 영덕군은 갑자기 불어닥친 화마에 큰 인명 피해를 입었다. 영덕군 관계자들은 발화지인 의성과 약 75km 떨어져 있는 데다 의성군과 영덕군 사이에 청송군도 끼어 있기 때문에 불과 몇 시간만에 산불이 청송을 넘어 영덕까지 번질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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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화지인 의성군과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영덕군은 직선거리로 약 70km 이상 떨어져 있다.
그러나 역대 최대 고온, 최대 순간 풍속을 동반한 이번 산불은 일반적인 산불과 달랐다. 강력한 서풍으로 번진 산불이 청송을 거쳐 영덕에 다다르기까지는 4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산불이 계곡을 타고 다니면서 진로나 방향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불이 설마 여기까지 올 거라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고 그래갖고 한 여섯 시 반, 한 일곱 시쯤 되니까 연기가 자욱이 오더라고. 불이 앞산에서 덩어리가 날아와 갖고 우리 집 앞에 때리면서 불이 타기 시작하는 거야. 불덩어리가 차에서 내려도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불고 이 바람이 막 자갈과 불과 차를 갖다 때리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죽는가 보다 생각이 들더라고
- 이미상 / 영덕군 석리 이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덕 주민들은 충분한 대피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마을 전체가 전소된 바닷마을 석리의 주민들은 불길이 가옥을 덮치는 순간에도 대피를 마치지 못했다. 같은 시각 옆 마을도 불타는 중이어서 주민들은 그야말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40여 명의 석리 주민들은 해안가 인근의 방파제로 대피했고, 일부는 정박된 배에 오른 뒤 해경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바다로 탈출했다.

그 배 없었으면 진짜 위험했어요. 배 두 대, 해경 배 놓고 줄 매면서 어르신들 다 옮기고... 그때는 진짜 사경을 헤맬 정도였어요. 우리 노인들 타고 나갈 수 있는 게 그냥 몇 분 정도였어요. 해경 배는 두 척 왔고...
- 영덕군 석리 주민


‘기후 변화’로 산불 대형화 빈번... 대형 인명 피해 우려

산불이 확산한 지난달 25일 기준, 영덕군이 발송한 대피령 문자는 총 10회로 의성군에 비해선 적었다. 또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입은 석리의 경우, 일부 주민들이 통신 두절로 어려움을 겪은 데다 석리를 명시한 대피령 문자도 발송되지 않아 혼란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영덕군 관계자는 “현장에 나간 소방이나 경찰, 군청 직원들이 위험하다고 전달을 해오면 마을 명칭을 넣어 대피하라고 보내지만, 석리는 따로 요청을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산불이) 이렇게 확산되는 걸 사실 어느 누구도 예측을 못했어요. 이렇게 빨리 확산이 되는 거는 아무도 예측을 못했기 때문에 대응 자체가 좀 어려웠다고 봅니다. 평상시 산불 같으면 아주 안전하게 대피를, 산불 같은 건 급류가 내려오듯이 내려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평상시 산불 같으면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거든요. 이번에는 정말 다급했습니다.
- 류희상 / 영덕군 재난안전과 안전정책팀장


인명 피해는 없어야 되니까 나중에 돌아오더라도 안전한 대피소를 찾아 주민을 대피시키는 게 그게 정답일 것 같습니다.
- 이미상 / 영덕군 석리 이장


2022년 울진 산불 이후 불과 3년 만에 또다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피해 규모는 사상 최대, 파괴력은 더 강해졌다. 예방하는 게 최우선이겠지만, 산불 발생시 대형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대응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산불행동분석관은 “계속 반복되는 얘기인데, 기후 위기로 앞으로 산불의 대형화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산불들이 더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최악의 조건을 가정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성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관련 기사

- 검은 산 : 2022년 울진 산불 (https://newstapa.org/article/9VQFs)

뉴스타파 신동윤 shint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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