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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 (토)

[밀착카메라] 어른 양말 신고 '씩씩'…산불로 집 잃은 7살 결이의 희망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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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역대 최악의 산불에 경북 지역에서 100명 넘는 아이들이 집을 잃었습니다.

현재 대피소 임시 천막에서 머물거나 학교나 교회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고 있는데, 밀착카메라 이상엽 기자가 보호자 동의를 얻어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기자]

7살 결이와 6살 솔이 형제가 살던 집.

자전거와 킥보드가 불에 타버렸습니다.

'꼬꼬닭'도 두 마리만 남았습니다.

[결이/7살 : 제가 이름도 지어준 꼬꼬닭인데요. 까망이라고 무지개라고. 그런데 불에 타서 네 마리는 죽었고, 두 마리는 살아있어요. 꼬꼬닭은 죽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경북 의성에서 안동으로 번진 산불은 이 형제의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결이는 집이 내려앉는 장면을, 솔이는 할아버지 자동차가 불타는 장면을 봤습니다.

[결이/7살 : 다 부서졌어요. 다 무너져 내렸어요.]

[솔이/6살 : 차 불났다. 피했다. 할아버지 차.]

하지만 아이들은 씩씩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기 때문입니다.

[결이/7살 : {사랑해?} 당연하죠. 할머니 엄청 많이 사랑해요.]

평생 상처가 될지 모를 2025년 3월의 기억.

여러 사람들이 그 상처를 보듬고 있습니다.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이 형제를 위해 학교 선생님들은 장학금을 모았습니다.

[이호균/임하초 교장 : 새까맣게 다 그을리고 없어졌지만 언젠가는 새싹이 반드시 돋아난다고. 새싹 속에서 꿈과 희망을 찾기를 바란다고…]

산불에 외벽이 타는 피해를 입은 한 교회.

더 큰 피해를 입은 이 형제에게 당장 지낼 곳을 내줬습니다.

[진삼열/목사 : '할아버지 집이 불탔어' 뭐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 순간에는 사실 굉장히 무서워하고 또 까불고 이렇게 놀긴 합니다. 그런데 그 후에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지는… 어떤 미래를 바라보면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 가족이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역시 안동에 사는 12살 예은 양 가족.

결이와 솔이에게 당장 필요할 물품을 챙겨왔다고 합니다.

[유예은/12살 : 저희가 사는 쪽은 안 탔는데 여기도 거기처럼 다시 원래대로 멀쩡하게 살려면 뭐라도 주고 싶어서…]

당장 살 곳을 내준 교회, 속옷과 양말을 챙긴 가족, 돈을 모아 장학금까지 건넨 학교까지 아이들에게 선한 마음들이 다가왔습니다.

그 시각, 아침부터 농사를 짓다 저녁이 돼서야 돌아온 할머니.

아이들이 집에 가자고 하면 이렇게 답합니다.

[손인숙/경북 안동시 : '할머니 우리 집 불탔어, 할머니 우리 집 없잖아' 그래요. 할머니가 나중에 집 잘 지어줄게. 방도 만들어줄게. 기다려. 괜찮아.]

흔히 '조손 가정'이라고 불리는 결이네.

할머니는 취재진에게만 조용히 걱정을 털어놓습니다.

[손인숙/경북 안동시 : 지금 쟤가 바지만 입고 있거든요. '할머니 저 팬티 없어요' 그래요. 어른 양말도 신겨놨거든요. 지금 (양말) 머리가 이만큼 올라가 있어요.]

경북 지역에만 산불 피해를 입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100명도 넘습니다.

체육관 구호 천막에서 먹고 자고, 처음 만난 친구들과 만들기도 합니다.

[김수금/안동시가족센터 관계자 : 냉장고에 붙일 거라고 했는데 집이 없어서 냉장고도 없다는 그런 말도 (아이가) 하니까…]

정부와 지자체는 산불 피해 아이들을 위해 심리 치료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손인숙/경북 안동시 : 저는요. 절망적이지만 아이들한테는 소망을 주고 싶어서… 날씨 추울 때 그랬으면 어떡하면 좋았을까. 지금은 그렇게 춥지 않으니까.]

검게 그을린 집을 바라보는 아이들 눈엔 이 장면이 더 아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른들이 어떻게 바로잡느냐에 따라 지금 이 장면은 그냥 '절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절망을 딛고 희망으로 회복한 기억'으로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작가 강은혜 / VJ 김진형 / 영상편집 홍여울 / 취재지원 권현서]

이상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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