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첫째, 계엄이 정당했다면 모두가 왜 우왕좌왕했으며 군은 왜 일사불란하지 않았는가. 조직을 이끄는 인사가 제자리에 있었는지, 국회는 제 역할을 했는지,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켰는지 이 모든 잡음은 국가적 인사 실패를 방증한다.
둘째, 최순실 국정농단, 조국 사태, 검찰개혁 갈등, 탄핵 정국까지 일련의 이 혼란은 결국 시스템이 아닌 ‘사람’에 의존한 구조 탓이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당파적 이익에 따라 사용하고 이를 감시하고 견제할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맥을 잃는다. 우리는 다시 묻고 다시 설계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지금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다시 회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권력이 국민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 당파의 이익을 위해 소모된다면 그것은 이미 국민의 권력이 아니다. 국민의 권리를 오용하고 남용하는 구조 속에서 국민은 피해자가 아니라 방관자가 된다. 국민은 이제 적극적으로 통제권을 회복해야 한다. 권력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도 필요하다. 국민비상회의 같은 제도적 장치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 시작과 끝은 결국 ‘사람’과 ‘임명’의 문제다. 당리당략으로 운영되는 국가 모델이 현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케케묵은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여야 통합이라는 말은 공허하다. 말로만 통합을 외치고 실제로는 편 가르기와 내 편 챙기기로 국가 시스템을 좀먹는 것보다는 솔직한 구조조정이 오히려 건강할 수 있다.
지역에 맞는 해법을 지역 스스로가 만들고 책임지는 시스템,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100점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통합과 효율을 원한다면 지금과 같은 수도권 중심의 중앙집중 모델을 고집해선 안 된다. 메가서울(서울·경기북부), 메가강경(강원·대구·경북), 메가경충(경기남부·충청), 메가전라(광주·전라·제주), 메가부울경(부산·울산·경남) 이 다섯 개의 메가시티 권역이 실질적 자치를 이루고 중앙정부는 헌법, 국가안보, 조세, 외교와 국방만을 맡는 구조로 전환한다면 정치와 행정 모두 ‘현장 중심’이 될 수 있다. 권역별 자치헌장과 의회, 재정권, 정책권을 부여받아 경제, 산업, 사회 정책을 각자 선택해 자신들의 정체성과 산업 기반에 맞는 발전 전략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게 된다.
통합이 되지 않는다면 억지로 끌고 가지 말고 동서로 나눠 각자의 길을 가는 게 낫다. 바티칸처럼 중앙정부는 외교, 국방, 통화 등 핵심 기능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동서 자치정부가 운영하는 실질적 연방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상징 정부가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고 동부와 서부는 각자의 정치·행정 시스템을 통해 이념적·경제적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동서 각자의 역사와 성향에 맞춘 자치 정책, 산업, 사회, 노동 정책을 펼치고 중앙은 헌법 수호자로만 남는다면 지금보다 더 민주적이고 실용적인 대한민국이 가능할 것이다. 미국, 독일, 스위스처럼 각 지역이 상당한 자치권을 가지되 중앙 정부는 상징성과 최소 행정만 담당하는 것이다. 조세도, 복지도 능력껏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100점에 근접한 시스템인가. 국가는 시스템이다. 사람보다 구조로 움직여야 한다. 누가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뀌는 정치가 아니라 어떤 구조 안에서 누가 오더라도 제대로 작동하는 정치가 돼야 한다. ‘미스터트롯’의 올(All) 100점이 주는 울림은 명확하다. 모두에게 만점을 받기 위해선 치열한 준비와 노력, 그리고 공정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철저한 기준과 공정한 심판,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원칙 위에서 가능하다. 국가적 핵심인재인 공직자의 양성·선발·임명이 갖는 의미는 초일류 국가를 향한 첫걸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사람의 나라’에 머물러 있다.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제도가 휘고 방향이 틀어진다.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국정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이 제도의 틀 안에서 제대로 쓰이고 있는가. 100점을 향한 사회는 국가적 성장과 도전을 위한 제도와 인사의 혁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출발점이다. 인사권의 주인은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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