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용 산업2부장 |
요즘 믿을 데라곤 기업뿐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매번 당연하게 여겼던 기업들의 성금(誠金)이 달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할퀸 ‘괴물 산불’이 지나간 뒤에도 기업들의 온정이 이어졌다. 삼성그룹 30억 원, SK·현대차·LG·포스코그룹은 각각 20억 원씩 냈다. 롯데·KT·HD현대는 10억 원, CJ·신세계·LS는 5억 원씩 냈다. 이 외에도 이름 대면 알 만한 거의 모든 기업이 정성으로 돈을 냈다. 기업들이 내는 돈은 ‘성금’이다. ‘세금’이 아니다. 세금 받으면서 일하는 정치인들이 산불 피해 주민들을 돕는 추경안을 놓고 다툼을 벌인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러니 믿을 데가 기업뿐이라는 것이다.
“혼란한 정국 믿을 데라곤 기업뿐”
대형 재난 상황에서뿐만 아니다. 2021년 중국이 갑자기 요소 수출을 제한하자 한국에서 ‘요소수 대란’이 터졌다. 요소수는 화물차의 필수품인데 품귀 현상이 빚어지자 가격이 10배까지 뛰었다. 당시 한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터라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이때 나선 것이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한국 A기업이다. A기업은 중국에서 다져둔 탄탄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으로 보낼 요소를 대량으로 긴급 확보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한국 정부는 우선 급한 불을 끄고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큰 칭찬을 받아 마땅하지만 A기업은 공치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성과를 한국 외교관과 공무원들에게 넘겼다. “국민들이 힘들 때 기업이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만 했다.
기업은 세금으로도 국민을 돕는다. 한국은 전체 세수 328조 원 가운데 법인세(62조5000억 원) 비율이 19%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기업이 비틀거리면 법인세 수입이 줄어 정부 재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 노력에도 반기업 정서 강한 韓
이미 시행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있다. 사업장에서 사망 등 중대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최고경영자(CEO)가 처벌받을 수 있다. 하청업체에서 난 사고에 대해 원청 경영자에게 더 무거운 책임을 지우고 관련 규정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결국 시행 중이다.
기업과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며 처벌하고 규제하는 법률과 정책이 너무 많다. 기획재정부 등이 2023년 조사한 결과 414개 법률에서 형벌 규정은 5886개였다. “CEO가 되면 감옥 갈 각오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 흰소리가 아니다.
여기에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까지 떨어졌다. 안에서는 반기업 정서에 따른 각종 규제로 힘들고, 밖에서는 미국의 무자비한 관세까지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쪽 발에만 있던 족쇄가 양발에 채워진 형국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해 보인다. 기업이 뛸 수 있도록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날개까지 달아주면 더 좋다. 믿을 데라곤 기업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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