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그래도 춤은 추지 마라[뉴스룸에서]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운명의 시간
어느 쪽도 승복하겠단 자세 없어
4월 4일 대한민국에 부끄러운 날
무너진 정치, 헌재 결정 이후가 걱정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연다. 탄핵 소추 111일, 변론 절차 종결 38일 만이다. 사진은 용산구 대통령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4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한다. 결정문이 낭독되고 나면 점심을 먹으면서 다들 "대통령이 어쩌고저쩌고" 몇 마디 말을 꺼내볼 것이다. 탄핵 소추 인용 혹은 기각, 또는 각하, 그리고 재판관 의견 몇 대 몇. 누군가는 분개할 것이고 안도할 것이고 또 냉소할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점심값 내기에 졌다며 투덜댈지 모른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지 111일, 헌재 최종 변론 후 38일이 지났으니 아껴둔 말들이 얼마나 많겠나.

자칭 타칭 명석한 헌법학자, 노련한 헌법재판관들이 넘쳐난다. 포장하고, 둘러대지만 꼼꼼히 들어보면 기대와 욕망이 대부분이다. "왜 인용이지?"라는 질문엔 "그게 당연하니까", "왜 기각이지?"란 물음엔 "그러면 안 되니까"라는 답이 돌아온다. 당장 내일 점심 메뉴도 예상 못 하면서 밀실의 결론은 어찌 그리 자신하는지 모르겠다.

출처가 어딘지 모를 정보도 쏟아진다. "○○○ 재판관이 의견을 막판에 바꿨다고 한다." "○○○ 재판관이 ○○○ 재판관과 함께 평의를 주도하고 있다." "○○○ 재판관이 홀로 각하 결정을 내렸단다." "8 대 0, 인용이다." 확신에 찬 이 말들이 진짜라면 헌재는 도청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못 믿을 얘기가 난무하고, 욕망의 예측이 이성을 흔들지만, 어쨌거나 재판관들 판단은 끝났다. 이제 그 결과를 마주하고 각자의 방식대로 호응만 하면 된다. 분개하든 안도하든 또 냉소하든, 법 테두리 안에서라면 그건 자유다.

탄핵심판 당사자인 윤 대통령도, 어쩌면 최대 수혜자가 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말을 여태 하지 않았다. "차분히 결정을 기다리겠다" "승복은 윤석열이 해야 한다"는 말만 들린다. 대신 불안감만 커진다. 윤 대통령은 거리로 뛰쳐나가 '함께 싸우자'는 격문을 다시 뿌릴지 모를 일이다. 이 대표도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했듯 재판관들을 겨냥해 "몸조심하라"는 발언을 쏟아낼 것 같다. 정치인이 되는 순간, 그들은 '수긍, 승복'이란 단어를 지워버린 듯하다.

여당과 야당은 헌재를 공격하고 겁박하더니, 이젠 광장에 진을 치고 앉았다. 철야 농성에 들어간 민주당 의원들, 그 앞에서 릴레이시위를 펼치는 국민의힘 의원들. '목숨을 걸라'는 그들 선동에 양측 지지자들은 폭풍 전야 속 비장함이 넘친다. "폭력만은 안 된다"고 사정해도 그들은 정당한 저항권이라며 흘려듣기만 한다.

'나이 들어 멀리할 사람'으로 '양비론자'를 첫손에 꼽는다. 'A도 옳고 B도 옳다'는 양시론자와 도긴개긴이지만, 지금 대한민국 정치를 생각하면 난 분명 양비론자다. 룰(법)을 지키며 심판(헌재와 사법부)의 통제 아래 링(정치판) 위에서 국민을 대신해 싸우라고 뽑은 이들의 행태를 보면 말이다. 링을 벗어나려는 그들에게 정치는 없다. 그래서 오늘 이후 미래는 어둡다. 기자란 직업이, 내 머릿속이 환멸로 가득해서가 아니다. 정치는 분명 멈췄다. 제대로 싸우라고 뽑은 그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와 우리에게 싸우라고 부추기는 비정상이 일상에서 벌어진다.

당연히 폭풍은 지나간다. 2017년의 그날도 그랬다. 다만 이 한마디는 전해야겠다. 어느 쪽이든, 어느 영화 대사처럼 "그래도 춤은 추지 마라"는 부탁이다. 2025년 4월 4일, 어쨌든 우리에게는 부끄러운 날 아닌가.

남상욱 엑설런스랩장 thoth@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주요 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