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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비상계엄 몰락 자초… ‘강골 검사’서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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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파면] 롤러코스터 같은 정치 역정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9수 끝에 늦깎이 사법시험 합격… 대선 자금-기업 비자금 수사 두각

2013년 ‘국정원 댓글’ 상부와 갈등… 한직 맴돌다 ‘국정농단’ 수사 맡아

文정부 檢총장→보수 구원투수로

조국 장관 수사로 文정권과 대립… 정치 입문 9개월만에 대통령 당선

총선 패배뒤 野와 대치, 계엄 선포… 현직 대통령으론 첫 체포-구속

2022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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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의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는 개혁의 목소리이고,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3월 10일 20대 대선 당선 인사에서 국민들이 자신을 뽑아준 의미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4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로 2년 11개월만에 헌정 사상 두 번째로 파면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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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검사 출신’ ‘첫 서울대 법대 출신’ ‘첫 서울 출신’ 등 정치사에 여러 기록을 갖고 당선되면서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던 윤 전 대통령은 롤러코스터 같은 정치 역정을 밟았다. ‘강골 검사’에서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보수 구원투수로 정치에 입문한 지 9개월 만에 대통령에 당선돼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초유의 12·3 비상계엄 선포로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하며 몰락의 길을 자초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 ‘9수’ 끝에 사시 합격… 늦깎이 검사에서 총장까지

2019년 7월 청와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부터 검찰총장 임명장을 받은 후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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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고를 졸업한 윤 전 대통령은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사법시험에 도전했지만 계속 낙방했다. 9번째 도전 끝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1994년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04년 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2002년 대선 자금 수사, 2006년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비자금 사건 등을 수사했고 특별수사의 핵심 요직인 대검 중수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을 지냈다.

‘강골 검사’로 이름을 날린 건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으면서다. 국정원 압수수색 등을 놓고 상부와 갈등을 빚던 윤 전 대통령은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상부의 외압을 폭로했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은 뒤 좌천돼 3년 가까이 지방에서 한직을 맴돌다 2016년 12월 국정농단 특별검사 수사팀장으로 복귀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발탁됐다. 윤 전 대통령은 이른바 ‘적폐 청산’에 앞장서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 국정원 특활비 의혹 등 수사를 이어갔고 2019년 7월 문재인 전 대통령은 또 한 번 기수를 뛰어넘어 윤 전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했다.

● 文정부와 각 세우다 보수 후보로 대권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13년 10월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외압을 폭로하고 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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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대통령이 ‘우리 총장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신임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총장 임명 직후부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시작으로 정권과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조 전 장관 일가 수사를 포함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를 밀어붙이면서 정권의 압력도 거세졌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2020년 11월 급기야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했고 문재인 정부에 맞서는 이미지가 굳어진 윤 전 대통령은 이듬해 3월 총장직에서 사퇴한 뒤 6월 말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한 달 뒤 국민의힘에 입당한 윤 전 대통령은 입당 98일 만에 대선 후보로 선출되며 보수 진영의 ‘구원투수’로 나서게 됐다. 잦은 말실수와 공감능력 부족 등 ‘정치 신인’의 면모와 ‘김건희 리스크’ 등 약점에도 불구하고 윤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 경쟁자인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감 등을 파고들었다. “국민이 불러낸 윤석열” “공정과 상식” 등 슬로건을 내건 그는 0.73%포인트 차로 2022년 3월 20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 ‘용산 이전’부터 파면까지

올해 1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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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드리겠다는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두고 논란이 거세게 일었고 ‘검찰 편중 인사’, 이준석 당시 당 대표 징계 논란, 뉴욕 순방 중 비속어 논란 등의 여파로 윤 전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임기 첫해부터 20∼30%대에 머물렀다.

이듬해 제3자 변제안 등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합의를 꾀하면서 한일관계를 복원했고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케미’를 과시하며 한미동맹을 강화한 점은 외교 분야 성과로 꼽혔다. 하지만 2023년 말 김건희 여사 디올백 수수 의혹과 지난해 4월 총선 패배 등을 계기로 출범 2년도 되기 전에 윤석열 정부는 급속도로 국정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총선 패배 이후 거대 야당과의 대치는 더 극심해졌다. 야당은 방통위원장을 포함한 줄탄핵에 나섰고 윤 전 대통령은 22대 국회 개원식과 시정연설 등에 불참하는 등 야당과의 소통도 단절됐다. 디올백 수수 사건과 공천 개입 의혹 등 김 여사 문제와 의정 갈등 해법을 둘러싸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갈등도 커졌다.

윤 전 대통령은 결국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몰락을 자초했다. 내란 혐의로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체포돼 구속됐다가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됐다. 그는 탄핵심판 과정에서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고 강변했지만 결국 헌재는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며 4일 오전 11시 22분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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