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트럼프 한마디에 롤러코스터…미국장 투자자는 날마다 ‘오징어 게임’[트럼프와 나]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특집3-미국 주식 투자 세태

갑자기 폭락하거나 폭등 종종 있어…“황당하지만 재미있다”

코인 가격 하락에 물타기 해도 손해…전문가 “분산투자 해야”

코인 투자자인 40대 양모씨가 3월 28일 경기 광주의 자택에서 올해 코인 투자로 인한 손실액을 살피고 있다. / 이재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간경향]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씨(46)는 900만원을 미국 주식에 투자했다. 절반은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설계하는 ‘엔비디아’에, 나머지는 미국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QQQ, QLD, TQQQ 등에 넣었다. QQQ는 1배짜리 상품이지만, QLD와 TQQQ는 각각 2배, 3배짜리 ‘레버리지 상품’이다. 예컨대 나스닥100이 10% 상승하면 QQQ 가격은 10%(1배), QLD는 20%(2배), TQQQ는 30%(3배) 오른다. 반대로 나스닥100이 10% 하락하면, QQQ는 -10%, QLD는 -20%, TQQQ는 -30%가 된다. 레버리지 상품은 상승장에서는 상당한 이득을 얻지만, 하락장에서는 큰 손실을 본다.

“트럼프 1기 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식, 주식, 주식’만 얘기했단 말이죠. 당선되면 주가를 또 띄우려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작년 이맘때부터 트럼프 당선 가능성을 보고 주식을 열심히 샀죠.”

실제로 트럼프 취임 다음날인 1월 21일(현지시간) 미국 증시가 일제히 상승했다. 전부터 예고했던 관세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취임 첫날 나오지 않았다는 게 증시에서는 큰 호재였다. 또 취임사에서 “화성에 성조기를 꽂겠다”고 했고, 첫날부터 전임 정부의 각종 행정명령(알래스카·북극해 등에서 석유·가스·천연자원의 개발을 제한하는 조치, AI 기업이 안전한 AI를 만들도록 ‘AI 안전성 테스트’를 의무화했던 조치 등)을 철회했다. 이에 우주, 에너지, AI 관련 주가가 크게 올랐다. 박씨의 미국 주식 수익률은 10%를 찍었다.

이모씨(66)도 이즈음 미국 주식시장에서 AI와 원전 관련주를 샀다. AI로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는 헬스테크 기업인 ‘템퍼스AI’, 소형모듈식원자로(SMR) 개발 회사인 ‘뉴스케일 파워’와 ‘오클로’ 등에 5000만원 이상을 투자했다. 트럼프는 취임 다음날 백악관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과 함께 미국 내에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이에 AI와 전력산업이 성장할 것으로 보고 관련주 투자를 결정했다. 1월 말 1주당 30달러 수준이었던 오클로 주식은 2월 중순에 55달러까지 뛰었다. 같은 기간 템퍼스AI 주가도 1주당 50달러 수준에서 89달러까지 올랐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허니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주식이 ‘게임’ 같아”…“앞으로도 계속 투자”

2월 트럼프 발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주가가 뚝뚝 떨어졌다. 트럼프가 2월 27일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서 “(캐나다와 멕시코 상대로) 3월 4일 발효될 예정인 관세는 예정대로 발효될 것이고, 그날 중국도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받게 될 것”이라고 하자 나스닥이 2% 이상 하락했다. 일주일 뒤 트럼프가 “나는 시장을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하자 또다시 2% 이상 빠졌다. 엔비디아, 팔란티어, 테슬라, 메타 등 개별 주식은 하락 폭이 더 컸다. 사흘 뒤 트럼프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내가 할 일은 강력한 국가를 만드는 것”이라며 “주식시장을 너무 신경 써서는 안 된다”고 하자 주가가 또 떨어졌다. 이씨는 템퍼스AI, 오클로, 뉴스케일 파워 등의 주식을 팔았다. 수익을 낸 건 뉴스케일 파워 정도였다

박씨의 수익률은 ‘마이너스’가 됐다. 3배 레버리지 상품인 TQQQ는 하락장이 이어지자 녹아버렸다. 예를 들어 나스닥이 첫날 10% 오르고, 다음날과 그다음날 10%씩 하락했다고 가정해보자. 100만원짜리 QQQ는 첫날 110만원(100Χ1.1), 다음날 99만원(110Χ0.9), 그다음날 89만1000원(99Χ0.9)이 된다. 반면 같은 금액의 TQQQ는 첫날 130만원(100Χ1.3)까지 올랐다가 다음날 91만원(130Χ0.7), 그다음 날은 63만7000원(91Χ0.7)까지 떨어진다.

박씨는 ‘물타기’를 했다. 매수한 주식의 가격이 하락했을 때 추가로 매수해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는 전략이다. 예컨대 10만원에 10주를 매수했는데 주식이 7만원으로 하락하는 경우, 7만원에 10주를 추가로 사들이는 식이다. 평균 매입 단가가 10만원에서 8만5000원으로 낮아지니까 주가가 8만5000원만 넘기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물타기 전 수익률은 -30%지만, 물타기 후 수익률은 -17.65%로 올라간다. 장기적으로 유망한 주식이라면 저점 매수 효과가 있지만, 계속 주가가 하락하면 손실이 더 커지고 ‘손절’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박씨는 “나도 (엔비디아 등의 주식에) 물타기를 해서 수익률을 마이너스 1% 수준까지 올려놨다”며 “물타기를 하다가 시드(종잣돈)까지 날리는 이도 많다”고 말했다.

박씨는 미국 주식 투자를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갑자기 주가가 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3월 24일이 그런 날이었다. 트럼프가 이날 “나는 많은 국가에 (상호관세) 면제를 줄 수도 있다”며 “그것은 상호적이지만 우리는 그것(상대국의 관세)보다 더 친절(nice)할 수 있다”고 말하자 주가가 반짝 상승했다.

지난 3월 12일 홍콩의 한 암호화폐 거래소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거래소 광고판에 코인을 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미지가 띄워져 있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씨가 말했다. “계속 하락하다가 이런 일이 한두 번씩 일어나요. 자고 일어나서 미장(미국 주식시장)을 확인했는데 수익률이 갑자기 ‘플러스’가 된 거예요. 황당하면서도 뭔가 재밌는 거죠. 내년 미국 중간선거까지는 이런 식으로 갈 것 같아요. 그러니까 주가가 확 떨어졌다는 판단이 들 때 들어가서 어느 정도 수익을 내면 바로 팔고, 또 들어가고 다시 팔고···. 이제는 ‘게임’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씨도 “요즘은 치고 빠지는 투자 스타일이 조금 더 수익률이 높은 것 같다”고 했다. “내 지인도 미국 코인거래소 관련 주식에 투자했다가 2000만원 손해를 봤거든요. 그런데 테슬라 주가를 2배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디렉션 데일리 테슬라 2배 ETF)을 사서 하루 만에 만회하고 싹 정리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의 ‘개미’들이 AI, SMR, 레버리지 ETF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에 대해 미국 자산운용사인 아카디안은 지난 3월 7일 ‘오징어 게임 주식시장(The Squid Game Stock Market)’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공격적인 투자 성향이 있는 한국 개인 투자자들이 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게임 참가자들이 규칙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위험한 게임에 뛰어들듯, 한국 투자자들도 빠르게 부자가 되기 위해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며 “‘오징어 게임’에서 최선의 선택은 아예 게임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간경향이 만난 몇몇 ‘미장’ 투자자 중에는 ‘테슬라’ 주식을 ‘저점 매수’ 전략으로 계속 사 모으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3월 22일 서울 여의도의 ‘미국 주식 스터디 모임’에서 만난 현모씨(43)는 “앞으로 올 로봇, AI, 자율주행 시대에서 테슬라만큼 준비된 기업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장기 투자 목적으로 테슬라 주식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 주식 시장이 지금은 좋지 않지만,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주주 가치를 보장하는 성숙한 시장”이라며 “앞으로도 미장에 계속 투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수혜 코인 샀는데마이너스 600만원”

경기 광주에 사는 양모씨(43)는 작년 초부터 코인(암호화폐)에 투자했다. 양씨는 “미국 주식을 할까, 코인을 할까 고민을 좀 했는데, 미국 주식은 재미없어서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양씨는 처음에는 리플(XRP), 수이(SUI), 헤데라(HBAR) 등 코인 600만원 어치를 사고 팔며 수익을 냈다. 암호화폐 규제 완화를 공약했던 트럼프가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하자 양씨는 1000만원을 추가로 투자했다.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코인 투자로 412만원을 벌었다.

양씨는 올해 2월 초 ‘온도(ONDO)’ 코인에 투자했다. 온도는 트럼프 일가의 암호화폐 투자회사인 ‘월드리버티파이낸셜’이 사들인 코인 중의 하나로, 트럼프 수혜 코인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올해 들어 트럼프의 관세 관련 발언이 이어지면서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제 성장 둔화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코인 같은 위험자산을 팔려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온도 코인 가격이 하락하자 양씨는 300만~400만원씩 추가로 사들이는 ‘물타기’에 나섰다. 그렇게 총 1883만원을 온도에 투자했지만, 3월 28일 기준으로 그가 보유한 온도의 가치는 1288만원에 불과하다. 두 달이 조금 못 되는 기간에 595만원이 사라졌다.

“원래는 ‘마이너스 700만원’까지 갔다가 (3월 24일 트럼프의 상호관세 면제 가능성 발언 이후) 좀 올라온 거예요.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몰라요. 트럼프가 한마디 할 때마다 변동이 심하거든요. 속상하지만 어디 하소연도 못 해요. 제 친구들은 이번에 코인 투자로 수천만원을 날렸거든요.” 양씨는 “이제는 코인이라면 보기도 싫다”면서 “가격이 좀 오르면 바로 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안전자산인 ‘금’에 투자한 이도 있다. 30대 윤모씨는 지난해 12월 보유하고 있던 엔비디아 주식(4000만원어치)을 모두 팔고, 그 돈으로 한국거래소(KRX) 금 현물 계좌를 통해 금을 사들였다. 윤씨는 “트럼프가 작년 11월 당선돼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고, 그럼 인플레이션 압력이 있을 것이고, 경기 침체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며 “미국 증시가 그동안 너무 많이 올랐고, 이제 박살이 날 것으로 생각해 금에 ‘몰빵’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제 여건이 좋지 않고 불확실성이 높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염승환 LS증권 이사는 “지금 미국 주식시장에서 2~3배 레버리지 상품 등에 투자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며 “한다면 1배짜리로, 혹은 배당을 잘 주는 주식을 고르되 꼭 미국 주식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 주식보다 미국 채권이 더 좋을 수도 있어요. 트럼프는 채권 금리를 낮추길 원하는데, 그렇게 되면 채권값이 오르니까 채권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거든요. 또 독일이 돈을 풀고 있어 유럽 투자하기에 좋고요. 일본도 이제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니까 엔화도 오르고 일본 증시도 괜찮을 겁니다. ‘안전자산’ 금은 관련 상품이 많아 투자하기도 쉽고요. 반드시 분산해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놓으셔야 합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주3일 10분 뉴스 완전 정복! 내 메일함에 점선면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주요 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