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사진 no. 107
당시 신문 기사를 읽기 쉽도록 다시 구성해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그런데 추가 자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사진 속 앞줄 오른쪽에 있는 작은 소녀가 현재 한국 주요 정치인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한 씨의 가정. 1925년 4월 1일자 동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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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볕이 돌이라도 녹일 듯 내리쬐던 재작년, 서울을 비롯한 온 나라가 의열단 사건으로 들끓었고 김한 씨는 그 격랑 속에서 5년의 형기를 선고받고 차디찬 감옥에 갇혔습니다. 기자는 김한 씨의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서울 시외 공덕리 224번지 허름한 초가집. 남은 가족들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등불을 밝히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습니다.
김한 씨의 노모 이씨는 예순여덟입니다. 백발이 성성했으나 여전히 꼿꼿했고, 젊은 시절의 고운 자취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녀의 곁에는 며느리 배 씨가 있었습니다. 올해 서른여덟, 남편보다 한 해 아래입니다. 배 씨는 두 딸을 품에 안고, 그리움을 삼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큰딸 원정(元貞)은 이화학교 보통과 6학년에 다니고, 작은딸 예정(禮貞)은 아홉 살입니다.
늙은 어머니 이 씨는 그런 며느리를 애처롭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조석으로 조밥을 지으며 어린 손녀들을 돌보았습니다. 작은딸 예정은 학교에서 공부를 배우면서도 때때로 아버지를 찾으며 울곤 했습니다. 원정이는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던 딸이었습니다. 두 달에 한 번 오는 면회와 편지는 이들의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김한 씨가 동경으로 증인으로 불려간 후 소식이 끊긴 지도 오래입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가 조선으로 돌아와 다시 면회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궁한 우리를 찾아주어 고맙소. 늙은 몸이 그날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며느리를 생각해서라도 하루라도 더 버텨야지요. 가끔 가슴이 미어질 때도 많지만, 참고 또 참습니다. 어린 손녀들이 아버지를 찾으며 우는 모습을 보면, 이 원수 같은 세상을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이토록 가난하고, 이토록 외로운 가정. 하지만 그들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이름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사진 속 막내딸 김례정 씨는 어린 시절부터 모진 시간을 견뎌내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201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 남측 최고령자(당시 96세)로 참석해 다시 한번 역사에 등장했습니다.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는 순간, 그녀의 눈에는 100년 전 어머니와 할머니가 흘렸을 눈물, 어린 시절 아버지를 그리며 보낸 긴 밤들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 갔을 것입니다.
그녀의 아들은 우원식 현 국회의장입니다. 100년 전 신문 사진 속 가족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도 살아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주 백년 사진에서는 한 가족의 사진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들의 표정과 눈빛, 그리고 사진 속에 담긴 삶의 무게가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다가왔나요? 댓글로 생각을 나눠주세요.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진을 찾아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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