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미국과 협상 타결 국가 나올 듯”
“모든 시나리오 완벽히 준비해야”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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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제시한 25%의 관세를 낮추기 위해 모든 시나리오별로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며 “미국산 에너지 구매계획, 자동차 환경기준 완화, 한국 기업의 대미투자 계획, 첨단산업 제도협력 등을 패키지로 미국에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전 본부장은 이날 경향신문과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앞으로 2~3개월, 혹은 몇 주 내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한 국가들이 나온다. 느긋한 상황이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른 나라들이 먼저 협상할 경우 새로운 기준점이 생겨 불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이끌었던 유 전 본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이 지연되면 관세 등 조치부터 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 성향을 고려해 “(트럼프와 만나기 전) 실무급, 각료급이 미국의 의중을 완벽하게 파악한 상태에서 만반의 협상 준비가 끝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관세는 트럼프가 깊게 관여하고 직접 의사결정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채널이 닿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유 전 본부장은 한국 정부가 미국과 협상에서 양보할 건 하더라도 옥석은 가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예를 들어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추가 개방이나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투자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으리라고 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에 25% 상호관세···FTA 체결국 중 가장 높아
- 미국이 한국에 매긴 상호관세율 25%는 높은 편인가.
-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최악 국가’라면서 자동차·쌀 수입 문제를 콕 찍어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 말에 일희일비할 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쌀 관세 50%는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숫자다. 미국산 쌀 수입 쿼터 물량 내에서는 관세가 5%에 불과하다. 그런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다만 트럼프에 빌미를 준 한국 정부의 환경 관련 자동차 규정 등 비관세 장벽은 우리도 이 기회에 개선하는 계기로 삼는 게 좋다.”
- 한·미 FTA는 이미 무력화된 건가.
-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할까.
“그렇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한·미 FTA 재협상은 국회 비준과 공청회 등을 거쳐 법적인 시간이 소요되는 절차다. 게다가 지금 미국과 협상하고 싶어 하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주요국 통상 장관들은 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나 상무장관을 만나려 할 텐데, 굳이 많은 시간과 공이 드는 FTA 재협상을 요구하겠나. 이번 상호관세처럼 행정명령 등 일방조치로 사실상 FTA를 무력화할 수 있다.”
미 소고기 추가 개방 시 신뢰 하락 우려 미국에 설득해야
“세계화, 자유화 시대는 이제 끝났다. 미국이 문을 닫고 요새화하고 있다. 톨게이트를 막아놓고 요금을 낸 국가만 미국 시장에 들여보내주겠다는 식이다. 지금 우리가 얻어올 수 있는 건 미국 시장에 자유롭게 진입하는 것이다. 정부는 유럽이나 일본 기업보다 한국 기업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관세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 검토할 수 있는 ‘양보 카드’는?
“전체 패키지딜을 준비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 규모가 미국보다 작아서 하나하나 파편적으로 협상하면 우리 카드가 별 게 아니게 된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줄여주기 위한 미국산 에너지 구매계획, 자동차 환경기준·자동차 관련 규정 개선,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계획, 첨단산업 제도협력 등을 패키지로 미국에 제시해야 한다.”
“한·미 FTA는 이미 미국에 가장 유리한 소고기 시장을 열었다. 한국 최대의 농산물 수입국이 미국이다. 미국이 일본, 중국보다 한국에 더 많이 소고기를 수출한다.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있기에 여기까지 온 거다. 30개월령 이상 소고기를 개방하면 한국 내 미국산 소고기 소비가 위축될 수도 있다. 우리는 미국 정부뿐 아니라 미국 농민단체, 농촌을 지역구로 둔 미 의회 의원들에게도 이런 점을 잘 설득해야 한다.”
- 미국이 한국에 알래스카 LNG 투자를 요구하는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미국산 원유 등 다른 에너지 수입을 늘려서 무역수지 적자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면 모를까, LNG 개발 투자는 현 정부뿐만 아니라 다음 정부까지 이어지는, 장기간 영향을 주는 의사결정이다. 그 사업이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지, 과연 사업성이 있는지, 미국 정부는 그 대가로 어떤 지원이나 약속을 하는지 세부 내역을 철저히 따져서 판단해야 한다.”
“협상 늦을수록 미국이 더 높은 조건 요구할 수도”
- 협상의 적기는 언제인가?
“가장 효과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적기에 협상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내 물가인상 등으로 상호관세에 대한 우려는 고조되고, 수십개 국가와 동시다발적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으나 성과는 부진한 시기 등에 협상안을 제시하면 실제보다 몇 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다만 느긋한 상황은 아니다. 앞으로 몇 주 내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한 국가들이 나올 거다. 협상이 늦을수록 앞서 타결 국가들이 제시하는 기준이 기준점이 돼서 미국은 우리에게 그보다 더 높은 조건을 요구할 수도 있다.”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못 하고 있는데.
“정상 간 케미스트리(사람 사이의 호흡)라는 게 있다. 정상 간 우호적 관계가 형성되면 실무 협상에 큰 도움이 된다. 트럼프는 1기 땐 한·미 FTA 협상 세부 내역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2기 땐 다르다. 관세는 트럼프가 깊게 관여하고 직접 의사결정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채널이 닿는 게 중요하다.”
- 한·미 정상회담은 빠를수록 좋은가?
“그렇다. 다만 정상 간 통화만 하거나 만나기만 한다고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실무급, 각료급이 상대국의 의중을 완벽하게 파악한 상태에서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협상 시나리오를 준비한 상황이어야 한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상황에서 기회가 되면 정상회담을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 2018년 한·미 FTA 재협상 당시 트럼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인내심이 짧은 편이다. 판을 뒤엎으려 할 수도 있다. 보통 FTA 1차 협상을 하면 2차 일정을 한두 달 후에 잡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2-3주 단위로 답을 달라고 재촉했다. FTA 개정 2차 협상이 거의 끝나갈 때는 ‘협상이 길어지니 폐기하겠다’고 해서 양측이 다시 속도를 낸 적이 있다. 그렇기에 협상의 시계가 돌아가기 전 한국 정부가 모든 시나리오별로 상대방이 이렇게 나오면 우린 저렇게 하겠다고 점검해야 한다. FTA보다 관세 협상이 더 절박할 수 있다. 당장 관세가 부과되면서 협상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관세 조치를 발표하면서 준 기간이 며칠 안 된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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