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지난달 10일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배치돼 있는 지대공 유도 미사일 패트리엇(PAC-3). 이날부터 한반도 방어를 위한 정례 한미연합훈련인 '자유의 방패'(FS·프리덤실드) 연습이 시작됐다. 평택=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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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 약소국이 아닌 적이 없었던 한민족의 역사에서 위정자가 국제 정세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잘못된 외교안보 전략을 수립하면 백성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는 정규 교과 과정을 거친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역사에서 위정자의 잘못으로 백성들은 영문도 모르고 전화(戰火)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고, 삼천리 금수강산이 초토화된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우리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선거에서 뽑혀 권력을 잡은 사람들, 그리고 이들이 임명하는 임명직 공무원들은 ‘역사를 잊지 않은 국민’이 뽑은 사람들이 정말 맞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황당한 외교안보 전략을 펴고 있다.
미 국방장관 "북한 위협 억제 역할은 동맹국에 맡길 것"
지난 3월 31일, 국방부는 미국이 북한 등의 위협 억제 역할을 동맹국에 맡길 것이라는 국내외 언론 보도에 대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주한미군의 역할에는 변함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주한미군의 최우선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는 것이 주한미군의 가장 큰 역할이고, 그것은 변함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최근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잠정 국가 방어 전략 지침'에 대해서는 “미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 나오거나 확인된 사항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 국방장관이 일선에 하달한 ‘공식 지침’에 대해 한국 국방부 대변인이 “미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3월 중순 배포된 미 국방장관 지침의 핵심은 ”미군의 최우선 과제는 미국 본토 방어“라는 것이다. 미군은 본토 방어를 가장 우선하되, 러시아·이란·북한 등의 위협에 대해서는 동맹국이 억제 역할을 맡도록 하겠다는 것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기본 전략이다. 미국의 핵심 이익 보호를 위해서는 차순위 대상의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이 미 국방장관의 생각인데, 한국정부 관료들이 ‘미국의 최우선순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한미동맹은 안타깝게도 트럼프 행정부에는 ‘차순위’였던 모양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2월 13일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브뤼셀=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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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잠정 국가 방어 전략 지침 "미군의 최우선 과제는 본토 방어"
미국이 핵무장 완성을 앞두고 있다고 평가되어 온 이란에 대한 군사 조치 준비에 들어간 것은 지난 3월 하순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최고지도자에게 핵 협상에 대한 친서를 보냈고, 하메네이가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겠다고 밝힌 직후 대규모 미군 전력이 중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필자는 이 시기, 주한미군의 이상 징후를 포착했다.
한국시간으로 3월 28~29일 미 본토에서 날아온 13대의 C-17A 대형수송기가 오산공군기지에 착륙한 뒤, 여기서 무엇인가를 싣고 서쪽으로 날아간 ADS-B 신호가 확인됐다. 이 수송기들의 행선지는 바레인의 이사(Isa) 공군기지였는데, 3월 31일까지 오산에서 이사로 날아간 수송기 숫자는 20대에 달했다. 중동 지역과 미군 안팎 소식통들에 따르면 해당 수송기들이 실어 나른 화물은 지대공 미사일, 정확히는 패트리엇 PAC-3와 사드(THAAD) 요격탄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리고 이 첩보는 4월 1일, 미국 NBC의 코트니 쿠베 기자의 미 국방부 취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쿠베 기자는 이날 자신의 SNS와 기사를 통해 ”패트리엇 2개 시스템과 사드 1개 시스템을 아시아 지역에서 반출해 중동으로 옮기는 것이 확인됐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4월 4일, 한국 정부도 주한미군 방공 시스템 반출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달 말 주한미군 지대공 미사일 중동 지역으로 반출
주한미군은 제8군 작전통제를 받는 방공부대로 제35방공포병여단 예하에 패트리엇 2개 대대와 THAAD 1개 포대를 배치해 놓고 있다. 미군이 사용하는 패트리엇 시스템은 PAC-3에 해당하는 장비로, 탄도미사일에 대해 사거리 55㎞·요격고도 25㎞의 ERINT 미사일과 사거리와 요격고도 각각 40㎞ 수준인 MSE 미사일을 주력으로 사용한다. 해당 요격 미사일들은 우리 군의 천궁-II보다 사거리와 요격고도가 1.5~2배 가까운 수준이어서 미군기지는 물론 주요 도시 방공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자산이다.
THAAD는 사거리 200㎞, 요격고도 150㎞에 달하는 자산으로 우리 군에는 없는 종말단계 상층 방어 능력을 제공하는 핵심 자산이다. 유사시 북한의 대규모 탄도미사일 공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1기도 아쉬운 요격 미사일이 포대 단위로 대량 반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3월 말,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 국방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는 것이 주한미군의 가장 큰 역할이고 그것이 변함 없다는 황당한 입장을 내놨다. 이는 우리 외교안보당국이 미국의 안보전략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2018년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한 사드 포대가 수송기에서 이동하고 있다. 오산공군기지 유튜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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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상 징후는 주한미군 방공자산 반출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대규모로 감축하거나, 최악의 경우 철수에 준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곳곳에서 보내고 있다. 지난해 미국은 주일미군에는 F-35A와 F-15EX 등 최신 전력을 대거 증강 배치하고, 주한미군 공군력은 축소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주일미군 미사와·가데나 기지에는 F-35A 48대, F-15EX 36대가 배치되지만, 주한미군에서는 A-10C 공격기가 철수·퇴역한다. 이 A-10C의 공백은 군산기지의 F-16 일부를 오산으로 이동 배치하는 것으로 메우기로 했다. A-10C 철수에 따라 90여 대에 달했던 주한미군 전술기 숫자는 70여 대 수준으로 무려 4분의 1이 날아가게 됐다.
미국 "주한미군 감축할 수 있다" 시그널
주한미군 지상전투부대도 철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원래 주한미군 지상전투부대는 중무장 부대인 기갑여단전투단(ABCT)이었지만, 이제는 신속대응부대인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SBCT)이 순환배치되고 있다. 현재 주둔 중인 제2보병사단 1여단은 오는 7월 임무 종료되는데, 이들과 임무 교대할 부대 역시 스트라이커여단인 제4보병사단 1여단이다. 문제는 미국이 이러한 해외 전개 지상전투부대를 대거 감축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2사단·한미연합사단 스트라이커 여단 장병들이 지난달 경기 파주시 도시지역작전 훈련장에서 한미 연합 도시지역작전 훈련을 하고 있다. 파주=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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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일, 미국 밀리터리닷컴은 3명의 펜타곤 관계자를 인용해 미 육군이 무려 9만여 명의 병력을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2025년 4월 현재 미 육군 병력은 약 45만 명인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감축안은 최소 3만여 명에서 최대 9만여 명을 날리는 엄청난 수준의 감군 계획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행정부 때도 대대적인 병력 감축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미 지상군이 이처럼 쪼그라드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대등한 적(Near-peer competitor)’과의 전면적 재래식 전쟁에 대비해 작전 수행 구조를 군단·사단 중심으로 바꾸고 재래식 군사력을 대폭 증강한다는 기존 바이든 행정부 군사전략을 완전히 뒤엎는다는 의미로, 트럼프 대통령이나 헤그세스 장관이 거듭 밝혀오던 동맹의 역할 확대 요구가 더 강해질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당연히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는 한국에 배치된 지상군은 최우선 감축·철군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 뼈아픈 주한미군 방공자산 반출
세계 각국은 이미 트럼프 당선 이전부터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해 국방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징병제를 다시 도입하는 등 재무장 작업을 진행해 왔다. 유럽 일부 국가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2% 수준에 불과하던 방위비 지출을 GDP 대비 3~6%까지 확대하고 옆 나라 일본도 반세기 넘게 유지하던 ‘GDP 대비 1% 국방비’라는 원칙을 깨고 내후년까지 GDP 대비 2%를 방위비로 지출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3년,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군비 경쟁에 무관심한 사실상 유일한 선진국이다. 우리나라의 올해 국방예산은 전년 대비 3.6% 증액됐지만, 방위력 개선비는 고작 2.4% 증액됐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2.3%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국방비를 삭감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제 정세는 물론, 대만을 비롯한 동아시아 정세가 점점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이번 주한미군 방공자산 반출은 대한민국 안보 재앙의 서막일 수도 있다. 우리 위정자들이 상황을 직시하고 외교안보 전략 수정과 방위비 증액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번 을사년 역시 120년 전의 을사년과 비슷하게 흘러갈지도 모른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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