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가 1980년 6월10일 작성한 ’제초작업(안)’ 표지. 진실화해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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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배 소탕’을 명분으로 사람들을 잡아와 군부대로 보낸 삼청교육대의 최초 입안계획으로 추정되는 보안사(국군보안사령부, 현 국군방첩사령부) 문건이 발견됐다. ‘제초작업(안)’이라는 제목으로 부정축재자 처리와 폭력배의 국토건설사업 투입방안을 담은 이 문건은 비상계엄이 전국 확대 됐던 1980년 6월10일자로 작성된 것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잡초를 뽑아 죽인다’는 뜻의 ‘제초’를 국가가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계획 이름으로 삼은 셈이다. 진실화해위는 이 문건을 바탕으로 계엄 때라도 인권준칙을 지킬 방안을 강구하라는 권고를 추가했다.
진실화해위는 최근 삼청교육 피해사건 조사를 위해 자료수집을 하는 과정에서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에 있던 이 문건을 찾아냈다. 진실화해위는 8일 오후 열린 제104차 전체위원회에서 고 김아무개씨 등 28명이 강제적인 삼청교육과 구타 및 가혹행위, 삼청교육 퇴소 후 사후관리에 따른 2차 피해 등 인권침해 피해에 대한 회복을 주장하며 신청한 ‘삼청교육 피해사건(8)’을 진실규명(피해 확인)으로 의결했는데, ‘제초작업(안)’ 문건은 이 사건 보고서에 언급됐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2022년 6월7일부터 올해 1월21일까지 7차례에 걸쳐 삼청교육과 관련된 총 647건의 피해를 진실규명한 바 있다. 이번 진실규명으로 대상자는 총 675명으로 늘었다. 삼청교육 사건을 조사한 조사5과는 이상훈 상임위원과 정영훈 조사2국장이 지휘한다.
삼청교육대 훈련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
삼청교육은 1979년 12월12일 군사반란에 성공한 전두환이 이듬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하고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인 8월1일부터 ‘불량배 소탕’을 명분으로 사람들을 군부대로 보내 훈련과 강제노동을 시킨 일이다. 이는 계엄사령부의 계엄포고 제13호에 따른 것으로, 12월29일까지 6만755명이 끌려가 이 중 3만9742명이 순화교육의 고통을 당했으며 1만16명은 근로봉사, 7578명은 별도의 보호감호 처분까지 받았다.
한겨레가 진실화해위로부터 입수한 이 문건은 손글씨 한자(漢字)로 된 A4용지 9쪽이며 △목적 △부정축재자 처리 △폭력배의 국토건설사업투입방안 순서로 구성돼 있다. 부정축재자는 처벌한 뒤 재산을 환수하고 폭력배를 국토건설사업에 투입해 사회풍토를 쇄신한다는 목적 아래, 그 구체적인 실행방법을 담고 있다. 작성 날짜는 1980년 6월10일로 돼있다. ‘폭력배 국토건설사업 투입방안’ 등이 담긴 삼청교육 관련 문건 중에 가장 앞선 것으로 보인다. 삼청교육은 2개월 뒤 발표된다.
보안사가 1980년 6월10일 작성한 ’제초작업(안)’. ‘폭력배의 국토건설사업투입방안’이 담겨있다. 진실화해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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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건에 담긴 ‘폭력배 국토건설사업 투입방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특히 “군법회의에서 처벌한 후 폭력배만 별도 수용하는 교도소를 설치하고 동 교도소에서 강제노역을 시키는 방안”이 눈에 띈다. 이들은 실제로는 군법회의가 아닌 계엄포고령 13호에 따라 3만9742명이 한 달여 간 군부대에서 순화교육을 당한 뒤 이중 1만16명은 각 군부대에서 근로봉사를 했으며, 7578명은 사회보호법 부칙에 따라 법원 재판 없이 사회보호위원회 처분만으로 별도의 교도소에 감금되어 강제노역했다. 그 교도소가 바로 청송보호감호소(현 경북북부교도소)다. 청송보호감호소는 삼청교육 이후 짓기 시작해 피해자들은 임시로 화천 27사단 등 군부대의 보호감호대대에 수용된 채 노역을 하기도 했다. 순화교육·근로봉사중 도주자는 군법회의, 보호감호 중 도주자는 일반 법원, 보호감호 중 소요사건 관련자는 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았다.
문건을 보면, 또 “폭력배를 재판 없이 일정 기간 국토건설사업에 투입하는 대통령 긴급조치의 선포”라는 에이(A)안과 “군법회의에서 처벌한 후 폭력배만 별도 수용하는 교도소를 설치하고 동 교도소에서 강제노역을 시키는 방안”을 비(B)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보안사는 문건에서 △긴급조치 선포에 대한 비난 가능성 △재판 없는 폭력배 선별에 대한 비난 △강제적 국토건설사업 투입으로 사업의 실효성 저하 △과거의 예 실패 등 에이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비안을 건의했다. ‘과거의 예’란 박정희가 5·16 쿠데타 직후인 1962년 2월 국토 개발을 명분으로 창단한 국토건설단이다. 국토건설단은 폭력배들까지 검거해 울산공업단지·소양강댐 등에 투입해 군대식으로 운영했으나 부상자 속출과 반발로 그해 12월 해체했다.
보안사는 비안에 무게를 두며 “폭력배는 군법회의에서 처벌할 수 있고 현행 행형법에 의하여 대통령령으로 국토건설사업에 투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건설사업의 실효성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행형법(형집행법)에서는 재소자 노역이 가능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삼청교육에 끌려간 3만9742명의 순화교육 대상자 중 1만7594명(근로봉사, 보호감호소 수감 포함)이 바로 나오지 못하고 ‘국토건설사업’을 빙자한 강제노역에 동원돼야 했다.
보안사가 1980년 6월10일 작성한 ’제초작업(안)’. “폭력배를 군법회의에서 처벌한 뒤 별도 수용하는 교도소를 설치하고 동 교도소에서 강제노역을 시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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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는 이러한 문건을 새롭게 확인한 점을 고려해 삼청교육에 대한 진실규명 권고안에서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의 조치 외에 “계엄 시에도 인권 준칙을 지키라는” 권고를 추가했다. “현행 계엄법 제9조(계엄사령관의 특별조치권)에 따르면, ‘군사상 필요할 때’에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는바, ‘특별한 조치’의 내용과 한계를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비상사태하에서도 계엄업무가 국제적 인권 기준에 부합하여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화해위 한 조사관은 ‘제초작업’ 문건과 관련 “‘제초’는 노상원 수첩에서 나온 ‘수거’와 같은 말이다. 권력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안 것”이라며 “12·3 비상계엄이 왜 44년 만에 재발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과거청산 과정에서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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