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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272) 춘일(春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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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유자효 시인


춘일(春日)

정훈(1911∼1992)

노랑 장다리 밭에 나비 호호 날고

초록 보리밭 골에 바람 흘러가고

자운영 붉은 논둑에 목매기는 우는고

-꽃시첩(1960년 6월 30일)

아름답고 잔인한 4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그려낸 시조다. 장다리는 무나 배추의 꽃줄기다. 그 노란 밭 위에 나비가 호호 난다니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보리가 익어가는 밭에 바람이 흘러가니 보릿고개도 얼마 남지 않았겠구나. 자운영이 붉게 핀 논둑에는 아직 코뚜레를 꿰지 않은 어린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은 이렇게 노래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망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었다”

-황무지

엘리엇은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도 찾아오는 자연의 봄을 오히려 아파했지만, 세기의 호화 여객선 타이태닉호가 침몰해 1500여 명의 승객이 사망한 사고도 1912년 4월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만 명이 숨진 제주 4·3사건, 많은 희생자를 낸 4·19 혁명, 수학여행 학생들을 비롯해 300여 명이 숨진 세월호 전복 사고가 2014년 4월이었다. 거기에다가 또다시 대통령의 파면까지 겪게 됐으니, 우리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이 되고 말았다.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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