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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관세전쟁 각본된 ‘마이런 지침’…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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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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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미국인들이여, 오늘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해방의 날입니다.”



2025년 4월2일(현지시각) 백악관의 장미정원에 들어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는 수십 년간 미국은 적국뿐 아니라 우방국에도 “약탈당하고, 강탈당하고, 유린당했다”라며, 향후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기본관세를 매기고,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보는 나라에 대해서는 흑자 규모에 따라 최대 49%에 이르는 ‘상호관세’를 추가로 부과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날을 “우리가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만들기 시작한 날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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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트럼프 당선 직후부터 예정된 정책 노선이기는 했지만, ‘수위’가 예상을 훌쩍 넘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말까지도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재무장관, 케빈 해셋(Kevin Hassett) 국가경제회의(NEC) 의장 같은 트럼프의 핵심 경제참모들은 대부분의 나라들은 새 정책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고, 10~15개국만이 관세부과 대상에 오르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실상 세계 모든 나라가 관세부과 대상국 명단에 올랐다. 대체 트럼프의 ‘막가파’식 정책은 무엇을 의도한 것이며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예상을 뛰어넘는 트럼프의 관세전쟁의 기원은?





이 질문과 관련, 트럼프가 대통령직 당선 직후인 지난해 11월 발간된 ‘글로벌 무역체계 재편을 위한 사용자 지침’(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 이하 ‘지침’)이라는 논문이 주목받고 있다. 저자 스티븐 마이런(Stephen Miran)은 2010년 하버드대에서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 지도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주로 학계 바깥에서 활동했다. 이 논문을 낼 당시에도 그는 허드슨 베이(Hudson Bay)라는 투자사의 수석전략가였다. 그런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으로 발탁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동시에 위 ‘지침’도 향후 펼쳐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정책의 나침반으로 여기지고 있는 듯하다.



‘지침’에서 마이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문제삼는 데서 논의를 시작한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미 달러는 세계경제의 기축통화다. 모든 나라가 국제결제 등을 위해 달러를 원하니 고평가될 수밖에 없다. 달러가 고평가되면서 미국산 상품의 대외경쟁력이 떨어지고, 미국의 무역적자가 증가한다. 이는 곧 미국 제조업을 망가뜨릴 것이지만, 대신에 금융업은 과잉 호황을 누리게 된다. 사실 여기까지는 많이들 하는 얘기다. 이른바 ‘제국의 과잉확장’이라는 것으로, 다른 논자들은 이를 근거로 미국의 쇠락, 중국으로의 헤게모니 교체 등을 이야기했다.







고평가 달러는 미국의 쇠락을 부른다고? 마이런의 질문





마이런은 달랐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는 이런 불균형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이런은 사태의 원인을 달러 고평가에서 찾았으므로 이를 필요한 수준까지 약화시키면 적자 문제도 해결되고, 제조업 부활의 기반도 마련될 것이다. 하지만 무슨 수로? 더구나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은 세계경제에서 ‘헤게몬’으로서의 지위까지 내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 이는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미국의 대외불균형을 시정하고 제조업을 되살리면서도 미국을 계속해서 위대하게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



마이런이 꺼내든 무기가 바로 관세다. 관세는 수입품의 가격을 높이므로 국내산 상품의 생산·소비를 촉진하고 무역불균형 해소에 기여할 수 있지만, 동시에 국내 소비자가 값싼 해외 상품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 결과적으로는 자국민의 후생을 줄이기도 한다. 이런 후자의 성격 때문에 2차대전 이후 세계경제에서는 자유무역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래도 강대국은 약소국을 이를테면 특정 저부가가치 산업에 특화하도록 강제함으로써, 또는 국제대부 등 금융적 방식을 통해 착취한다는 ‘종속이론’ 등의 문제제기가 꾸준히 있었는데, 그간 자유무역 체제 아래서도 약소국들이 자국 산업의 보호・육성을 위해 관세를 수단으로 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용인되었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였다. 미국도 한때 고율의 관세정책을 쓰기도 했지만, 그것은 미국이 지금과 같은 지위를 갖기 전이다.







안보와 결합한 관세 정책





마이런의 관세 제안이 독특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오늘날 정부는 대개 국내 산업의 보호 등 국내정책의 수단으로만 관세를 쓴다. 그러나 세계 최강대국에 의해 쓰일 때, 그것은 독특한 성격을 부여받는다. 관세는 안보라는 글로벌 필수재와 조합되어 국제적 전략협상을 위한 강력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이때 지렛대의 위력 극대화를 위해 세율을 나라별로 차등하는 게 중요하다. 이제 관세는 미국이라는 커다란 시장에 접근하고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 아래 들어가기 위한 ‘입장료’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미국이 이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고 보며, 그가 적국과 우방국 모두로부터 미국이 약탈당해 왔다고 한 것은 그래서다. 물론 입장료가 너무 높으면 들어가지 않는 쪽을 선택할 나라도 나올 것이다. 또한 마이런에 따르면, 관세부과는 수입국에서 일정한 비효율을 낳지만, 그로 인해 해당 상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 그 균형가격이 떨어지면 결과적으로 수입국 소비자의 후생을 높일 수도 있다. 요컨대, 미국의 관세가 동맹국들을 자국의 안보 우산 아래 효과적으로 붙잡아두면서도 자국 소비자의 후생은 해치지 않을 수 있는 미국에게 ‘최적 세율’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침’에서 마이런은 그 최적 관세율을 20% 안팎으로 추정한 연구를 인용하고 있다. 이쯤 되면, ‘지침’이 트럼프 정부의 정책지침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2일 발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라는 명목으로 나라마다 상이한 관세율을 적용했고, 그에 따라 미국의 실효관세율이 종전 2% 수준에서 24%로 올랐으니(영국 이코노미스트 분석) 말이다.







달러 저평가 위험도 힘으로 방어…마러라고 합의로 나아갈까





한편, 이상의 방법으로 무역불균형이 시정되면, 그에 비례해 달러의 매력도도 떨어질 것이다. 달러가 매력을 잃으면, 위의 관세체계가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의 대외부문 적자와 함께 미국을 짓누르는 또 하나의 적자, 곧 재정적자 압박을 강화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정부가 매년 지급해야 하는 이자액은 국방비를 넘어선 탓에 특단의 조처가 필요한 상태다. 여기서 마이런이 내놓은 대안은 미 국채를 100년 만기의 초장기채로의 전환이며 이를 강제하기 위해 꺼내든 수단은 안보를 제시한다. 관세 말고도 또 미국이 다른 형태의 입장료를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이는 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 출신의 분석가 졸탄 포자르(Zoltan Pozsar)가 먼저 내놓은 제안이긴 하다. 마이런은 이를 과거 미국이 일본을 압박해 달러화 헤게모니 유지를 시도했던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를 본 따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라고 명명했다. 마러라고는 플로리다 팜비치에 있는 리조트로, 1985년부터 트럼프 대통령 소유였다.



결국, 마이런의 ‘지침’은 글로벌 무역체계뿐 아니라 미국 헤게모니 연장을 위한 물적 토대의 강화까지도 시야에 두고 있다. 국제무역·환율·통화체제에 대한 마이런의 제안은 국내적으로 인플레이션과 같은 문제를 동반할 수 있다. 그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긴밀한 공조를 주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중앙은행 독립성까지도 도마에 올린다. 실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미 연방준비제도를 압박하고 있으며,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그의 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은 불확실성이 커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 간에도 의견 불일치가 감지되고, 관세부과에 반발해 중국·유럽연합·캐나다 등에서 강경 대응 입장이 나오고 있으며, 지난 주말을 거치며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손 떼’(hands off) 시위가 전국적으로 폭발하고 있어서다. 마이런과 그 동료들은 마러라고까지 갈 수 있을까?



김공회 국립경상대 교수(경제학)



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부 부교수. 서울과 런던의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형성과 작동에 대한 사상사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와 언론사에 재직하면서 경제의 현황과 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썼으며,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경상남도 도정자문위원회 등에서 중앙정부 및 광역정부에 정책자문을 했다. 저서로 ‘기본소득, 공상인가 환상인가’(2022), 역서로 ‘세금이란 무엇인가’(2020)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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