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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4 (일)

    [청계광장]지브리 스타일로 바꿔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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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니투데이

    이병철 문화평론가(시인).



    '챗GPT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생성이 유행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는 귀여운 호기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지브리'에 열광하는지 궁금해진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오랜 반일감정에서 예외적으로 벗어난 자리에 있다. 서사의 흥미와 이미지의 미학성이 뛰어나다는 점만으로는 다 해명되지 않는다. 특히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은 가족애를 강조하고 자연친화적인 낭만세계를 그려내 한국인들의 정서와 감성에 부합했다.

    지브리 작품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웃집 토토로' '반딧불의 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작품들이 보여준 서정적이며 평화로운 세계는 IMF 국가부도 사태 이후 사회적 불안 속에 성장한 젊은 세대에게 심리적 안식처가 돼주었다. 이번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유행 역시 비슷한 집단적 심리의 반영이다. 현실의 불안과 고통 속에 있는 나를 지브리라는 아름답고 무해한 이상적 세계로 잠시나마 데려다놓고 싶은 것이다. 경쟁과 혐오가 없고 인간과 동물이 서로 정다우며 사랑과 연민이 가득한 지브리의 세계는 현실을 대체하는 이상적 현실을 구축한다.

    사랑과 안전, 평화와 공존, 무해함과 느긋함에 대한 강한 결핍이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의 유행을 불러온 것 아닐까. 장기화하는 경제적 불확실성, 주거불안, 취업난, 계층 양극화는 한국 사회 고통의 기본값이다. 게다가 지난 서너 달을 돌아보면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정국,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경북 산불 등으로 우리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한국 사회가 지닌 고유한 불안과 젊은 세대의 감성적 욕구가 결합하면서 온 세상이 지브리가 됐다.

    이 유행도 금방 지나갈 것이다. 아니 이미 지나갔다. 한편으로는 현대인들이 표피적이고 피상적인 도취에만 몰입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 몰입이라는 것도 지극히 찰나적이다. '지브리 스타일'로 이미지를 변환한 사람 중엔 지브리 애니메이션 원작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이도 많다. 원본의 아우라는 희미해지고 복제된 이미지가 오히려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면서 원본 대신 '지브리 스타일'이라는 집합적 아우라가 재구성됐다. 고유한 의미가 탈각되고 대중적이고 상징적인 스타일만 남아 외피만 소비된다. 구체적 원본이 사라지고 지브리의 느낌만 남은 것이 '지브리 스타일'인데 여기서 사라진 원본은 지브리 원작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기도 하다.

    너도나도 '지브리 스타일'로 바꾼 프로필사진에선 커다란 눈망울과 환한 미소를 지녔다. 그런데 거기엔 지브리만 남아 있고 고유한 개인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내면의 욕구보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 즉 외부로부터의 승인을 원하며 행동한다.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유행에 동참한 사람들은 단지 개인적 취향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를 선택함으로써 집단 내에서 인정받고 연결감을 얻고자 한다. 유행은 집단의 공통된 감정을 대변한다. 개인은 유행에 참여함을 통해 집단으로부터 소속감과 공감이라는 사회적 승인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보다 집단적 취향에 스스로를 맞추고 점점 개성과 정체성을 잃어간다.

    SNS에서 공감받는 콘텐츠에 대한 집착은 자신을 끊임없이 외부에 맞추는 현대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지브리 스타일'이란 안전하고 보편적인 취향을 선택함으로써 타인의 인정을 쉽게 확보하고 현실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진짜 자신을 평화로운 하이퍼리얼리티 세계의 이미지 뒤에 감춘다. 사회적 불안에서 도피든 타인에게 승인받고 싶은 인정욕구든 자기 위안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니 이미지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들이 어딘지 슬퍼 보인다. 내 모습도 그렇다.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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