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복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 단장 |
필자가 일하고 있는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은 지난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등 4개 부처가 함께 출범시킨 기관이다. 지난 3일 사업단은 '2025 서울모빌리티쇼'가 열리는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자율주행사업 1단계 성과공유회' 전시를 열고 기술 시연을 진행했다.
전시에서는 사업단이 지난 4년여간 공공·민간 기업과 함께 연구·개발해 온 8개 분야, 70여종의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였다. 전시관에서는 높이 약 20㎝의 계단을 네 바퀴를 이용해 스스로 오르내리는 자율주행 순찰 로봇(SPR)을 선보였다. 로봇은 폭과 높이가 50㎝ 정도였지만 좁은 곳도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는 성능을 보여줬다.
로봇은 또 카메라와 레이더, 라이더 센서를 갖추고 이륜차 단속이나 보행자 횡단 지원, 포트홀 검지 등 다양한 지원 업무를 하는 성능도 갖췄다.
국토부 자율주행 시범운행 |
사업단의 성과 중 하나인 심야 자율주행 버스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버스는 지난해 10개 노선으로 확대되는 등 점차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처럼 일상 곳곳에 자율주행 기술이 들어오고 있지만, 무서운 속도로 기술이 발전해 가는 미국과 중국 등 자율주행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든다.
테슬라는 자율주행 데이터센터에만 수십조원을 투자했고, 600만대 이상의 실제 차량으로 데이터를 학습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정부가 민간의 자율주행기술에 대한 정책과 기술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는 상황이다.
사실상 학습량의 차이에 따라 기술 격차가 벌어지고 있어 정부 지원과 기업의 투자 확대가 필요한 시기다. 돌이켜보니 선진국의 과거 사례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딥 러닝이 아닌 독일의 자율주행 자동차
지난 1986년 독일 뮌헨 분데스베어 대학교(Bundeswehr University Munich) 에른스트 디크만스 교수와 연구팀은 '바모스'(VaMoRs)라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이 프로젝트는 자율 이동성과 컴퓨터 비전 실험 차량을 개발하는 연구다.
바모스 프로젝트 차량 |
이 차량은 카메라 중심의 비전 기반 시스템으로 자율주행을 시도했다. 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 중형 밴을 개조해 실시간 영상처리와 제어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터를 탑재했다.
연구팀은 지금의 AI 딥러닝이 아닌 모델 기반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카메라 영상에서 도로의 기하구조, 차선, 장애물 등을 실시간으로 모델링하고, 다른 차량의 움직임을 예측해 차량의 주행 경로를 조정했다.
또한 자차의 위치, 속도, 방향을 정확히 추정하고 최적 경로를 실시간으로 계산해 노이즈를 줄인 후 예측 정확도도 높였다.
연구팀은 독일 뮌헨 주변 실제 도로와 캠퍼스 인근 테스트 구간에서 완전 무인 자율주행 상태에서 약 10∼20㎞로 저속 주행하며 도로에 놓인 장애물 등을 회피하면서 실제 도로에서 성능을 검증했다. 이후 연구팀은 메르세데스-벤츠와 S클래스 세단 차량을 개조해 'VaMP'(Vision-based Autonomous Mercedes Platform) 자율주행 차량을 개발했다.
VaMP는 1994년 10월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 인근 A1 고속도로에서 열린 'PROMETHEUS'라는 프로젝트의 시연 행사에 참여해 일반 교통 상황에서 약 1천㎞를 자율주행했다. 시속 130㎞까지 속도를 내며 차선 변경, 추월 등 다양한 주행 기술을 선보였다.
또한 VaMP은 1995년 독일 뮌헨에서 덴마크 코펜하겐까지 왕복 1천758㎞를 자율주행했다. 차량은 시속 175㎞ 이상의 속도를 기록했으며, 평균적으로 약 9㎞마다 한 번씩 인간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했다.
PROMETHEUS 프로젝트는 1987년부터 1995년까지 8년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13개국 30개 기관이 약 4억 유로의 예산을 지원받아 유럽의 교통사고 증가, 혼잡,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된 사업이다.
◇ 1990년대 초 한국도 참여한 자율주행 프로젝트
우리나라도 한민홍 고려대 교수가 1990년대 초에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하고 시범 운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 교수는 1980년대 미국에서 자율주행 잠수정 개발에 참여하며 인공지능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1988년 한국으로 돌아와 자율주행 연구를 선도했다. 한 교수는 1993년 서울 도심에서 자동차가 스스로 도로를 주행해 장애물을 피하고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했다.
실제로 시범 운행에 성공했고, 1995년에는 비 오는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로 달리는 자율주행과 야간 주행까지 개발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가이드하우스는 매년 전 세계 자율주행 기업의 전략적 방향성과 실행 역량 등을 평가해 자율주행기술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2024년 순위에서는 미국의 웨이모(Waymo)가 1위를 차지했고, 중국의 바이두(Baidu)와 모빌아이(Mobileye)가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오토노머스에이투지(Autonomous a2z)가 11위를 기록했다.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2018년 현대차 출신의 연구진이 설립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51대의 자율주행차를 운행하며 약 57만㎞의 누적 주행거리를 달성한 기업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대기업의 이름은 현대차 앱티브 합작법인인 모셔널이 15위를 기록한 것 이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세계는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자율주행 기술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자율주행기술은 AI, 센서, 데이터 등 다양한 첨단 분야의 융합이 필요하다.
이를 개발하고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와 시간이 요구된다. 많은 국내 대기업은 전통적인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집중하고 있다. 자율주행기술은 단순히 운전을 자동화하는 기술을 넘어 산업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이끄는 핵심기술이다.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은 자율주행을 국가전략 기술로 지정하고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하고 있다. 자율주행기술은 AI, 반도체, 로봇 등 기술의 집약체로 이 분야에서의 우위는 곧 첨단 기술 국가로서의 위상을 좌우할 것이다.
앞으로 자율주행기술은 미래 모빌리티의 혁신이자 산업 구조를 뒤흔드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2021년부터 약 1조원을 투입해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이제는 국내 대기업의 기술개발 참여와 전략적 투자가 절실한 시점이다.
정광복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 단장
▲ 도시공학박사(연세대). ▲ 교통공학 전문가·스마트시티사업단 사무국장 역임. ▲ 연세대 강사·인천대 겸임교수 역임. ▲ 서울시 자율주행차시범운행지구 운영위원. ▲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자율주행 자문위원. ▲ ITS 아시아 태평양총회 조직위 위원.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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