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세전쟁이 격화하면 원화가치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정부‧국회‧민간이 지혜를 모을 통상 대응 협의체를 구성해야 할 때다.[사진|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상 전략은 병 주고 약 주는 식이다. 처음에 아주 큰 것 100을 내놓으라고 심하게 겁박한다. 상대방은 물론 주변국과 국제사회도 너무 심하고 엉뚱하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밀어붙인다.
그러다가 밀고 당기며 통첩 시한에 임박하거나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뒤 양보하거나 크게 인심을 쓰듯 '절반만 가져갈 테니 내놓으라'고 한다. 상대방은 '우리가 애써 절반을 지켰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국제 법규와 관례를 무시한 무례한 요구를 한 트럼프를 원망하기는커녕 되레 고마워하면서.
이번 상호관세 부과 계획도 마찬가지다. 지구촌 70여 국가를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매기겠다고 윽박질렀다. 그러다가 정착 발효 당일인 9일,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는 90일간 유예하고 10%의 기본관세만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원래 없던 관세 10%를 부과하는 것임에도 많은 국가들이 24~46%의 상호관세를 당분간 피하게 됐다며 안심했다.
트럼프는 상호관세 부과 발효 전날까지 "건강해지려면 쓴 약도 들어야 한다"며 강행할 태세였다. 미국 내에서 트럼프더러 국정에서 "손을 떼라(Hands Off)"고 외치는 시위가 벌어지는 등 반발이 심했다. 미국은 물론 주요국 주가와 통화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러다가 발효 당일 90일 유예가 발표되자 미국과 세계 주요국 증시가 반등했다. 통화가치도 회복됐다. 한국 증시와 원·달러 환율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의 관세정책과 통상협상 전략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등 국제 통상질서를 우롱하며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나 2기 행정부나 당초 자신이 부과하려는 관세율보다 훨씬 높게 발표한 뒤 협상 과정에서 깎아줌으로써 시장과 상대국을 안심시키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중국이 미국에 맞서 관세율을 34%에서 84%로 끌어올리자 트럼프는 대중對中 관세율을 145%로 높였다. 이에 맞서 중국도 대미 對美 관세율을 125%로 끌어올렸다.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끌어내리며 환율 전쟁도 불사할 태세다. 중국이 보유해온 미국 국채를 집중 매각하자 미 국채 수익률이 치솟았다. 관세 전쟁이 환율·금리로 번지면서 미중 대결이 오래 격화할수록 원화 가치도 악영향을 받는 구조다.
한국도 당초 예고된 상호관세 25% 대신 90일간 10%를 적용받게 됐다. 일단 한숨 돌렸지만, 미국과의 협상 과정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트럼프가 관세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연계시키는 패키지 딜 의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의 통화에서 "원스톱 쇼핑(One Stop Shopping)은 아름답고 효율적인 과정"이라고 말했다. 통화를 마친 뒤 "거대하고 지속 불가능한 흑자, 관세, 조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대량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투자, 그리고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대규모 군사보호에 대한 비용 지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구상대로라면 한미 간 협상 범위는 통상 현안과 기업 투자를 넘어 남북관계와 군사안보, 산업·자원 협력 등을 아우른다. 한국으로선 우선적으로 해결하고픈 관세 문제가 되도록 피하고 싶은 주한미군 방위비 문제와 연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중 관세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사진은 2019년 G20 정상회담에서 만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사진|뉴시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나마 국가별 상호관세의 다음 발효 시점이 21대 대통령선거일(6월 3일) 이후로 잡혀 차기 정부 출범 이후까지 협상 시간을 갖게 돼 다행이다. 한덕수 대행 등 현 정부로선 대미對美 협상을 차기 대통령과 정부가 주도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해 보인다. 미국과 협상 의제와 일정을 조율하는 한편 정부·국회·민간이 지혜를 모을 통상 대응 협의체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저작권자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