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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터는 끝났다” 산불로 타버린 영덕 ‘송이 주산지’ 주민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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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화마가 덮친 경북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에서 지난 13일 만난 이상범씨(55)가 잿더미로 변해버린 자신의 송이산을 바라보고 있다. 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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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송이로 먹고 살았는데 막막하죠. 이제 공사판 막일이라도 해야 하나 걱정이에요.”

‘역대 최대규모 산불’이 덮친 경북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에서 지난 13일 만난 이상범씨(55)는 검게 타 죽은 소나무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송이를 캐며 3대째 지켜온 삶의 터전은 산불로 한순간 ‘잿더미’가 됐다.

이씨는 “평생을 살면서 이런 산불은 처음본다”며 “의성에서 난 불이 영덕으로 넘어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불길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온 산이 불바다가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나는 그나마 젊어서 다행”이라며 “이제 애들을 대학에 보내야 하는 이웃들은 걱정이 태산이고,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죽을 날만 기다린다’며 하소연한다”고 말했다.

의성에서 시작해 지난달 25∼26일 영덕으로 확산한 산불은 영덕읍·지품·축산·영해면 일대 송이산 4137㏊를 태웠다. 영덕지역 전체 산불 피해면적(8050㏊)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경향신문

산불 화마가 덮친 경북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에서 지난 13일 만난 이상범씨(55)가 잿더미로 변해버린 자신의 송이산을 바라보며 허탈해하고 있다. 김현수 기자


특히 송이 주산지인 지품면과 영덕읍 화천리 일대 산림이 모두 피해를 봤다. 피해를 입은 송이산은 영덕 송이 채취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영덕은 국내 송이 채취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최대 송이 주산지다.

임산물, 재난지원대상 포함 안돼…보상 막막


퇴직 후 고향인 영덕으로 귀촌한 김영수씨(71)도 날벼락을 맞았다. 김씨는 “강원 동해안 산불이 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 지역 산에는 송이가 자라지 않는다”며 “송이가 다시 나는 데 50년은 걸린다고 하는데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신두기씨(70)도 마찬가지다. 신씨는 송이 채취량을 늘리기 위해 지난해 3억5000만원을 대출받아 송이산을 추가로 임대했다. 그는 “집은 다시 지을 수 있지만 내 일터는 끝난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산나물 등 임산물은 산불 피해를 봐도 재난 지원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수확량을 예상할 수 있는 사과·배 등 과수(농작물)와 달리 임산물은 수확량 예측이 쉽지 않아 피해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산불은 임산물 채취로 생계를 이어오는 주민들에게는 ‘재앙’이다. 2022년 발생한 울진·삼척 산불로 송이산을 잃은 이운영씨(52)는 현재 공동주택 경비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노후를 책임져 줄 산이 불에 타버려 먹고 살려고 취업했다”며 “이번 산불을 보며 마음이 아파 딸들과 함께 성금을 냈다”고 말했다.

경북 의성군 야산에서 지난달 23일 발생한 산불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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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는 울진·삼척 산불 당시 국민성금이 송이농가 460곳에 지급된 전례가 있어 이번에도 성금을 활용한 송이농가 보상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까지 모금액은 11일 기준 1328억원이다. 울진·삼척 산불 당시에는 약 830억원의 성금이 모였다. 경북도는 행안부에 제출하기 위해 송이 피해 현황을 집계하고 있다.

다만 피해규모가 큰 만큼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도 나온다. 영남지역 산불 피해 신고액은 1조4000억원을 넘겼고, 이에 따른 복구비는 2조800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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