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푹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
정일천 가톨릭관동대 초빙교수·전 국정원 국장 |
미국 에너지부(DOE)가 동맹국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포함시킨 이유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국내에서 제기된 핵무장론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지만 DOE 산하 연구소에서 한국인 직원의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 유출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핵기술 유출과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핵무기 개발에서 앞서 있던 미국이 짧은 기간에 소련에 따라잡히게 된 데는 미국에 침투한 소련 스파이들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독일 태생의 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다. 그는 나치를 피해 영국에서 유학하며 영국의 핵개발 프로젝트 ‘튜브 알로이스’에 참여해 국적까지 취득했다. 하지만 뼛속까지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소련 정보총국(GRU) 스파이가 됐다. 그는 영국과 미국의 핵개발 프로젝트가 통합되면서 미국에 파견돼 DOE 산하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우라늄 농축 연구와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플루토늄 폭탄 제조 등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핵 관련 기밀을 소련에 넘겼다. 그의 스파이 행적은 1949년 소련의 핵실험을 계기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결국 징역 14년을 선고받은 뒤 1959년 모범수로 조기 석방돼 동독으로 추방됐다.
조지 코발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그는 대공황 시기에 소련으로 이주했다. 모스크바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군 복무 중 정보총국 공작원으로 선발됐는데, 미국 국적의 엘리트라는 점이 작용했다. 1940년 암호명 ‘델마르’를 얻어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신분 세탁을 위해 미 육군에 자원 입대했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군에서 우수 인력으로 선발돼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후 미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 근무하면서 핵물질 생산 정보 등을 빼돌렸으며, 특히 그가 입수한 핵시설 및 설비 관련 정보는 소련 핵 연구시설 구축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존재는 사망 이듬해인 2007년 러시아의 영웅 칭호 수여로 세상에 알려졌다.
영국 공산당원이면서 소련 스파이로 활동한 멜리타 노우드도 있다. 이 여성은 1930년대부터 영국 핵개발 프로그램 자문위원회 간부의 비서로 근무하며 40년간 핵 관련 정보를 소련에 제공했다. 노우드는 은퇴와 함께 스파이 활동을 중단한 지 20년이 지난 80세의 나이에 스파이였음이 밝혀졌다.
정일천 가톨릭관동대 초빙교수·전 국정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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