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8 (목)

    ‘레시피’ 없다던 정관스님이 책을 낸 사연 [.txt]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스위스대사관에서 사찰음식의 대가로 손꼽히는 정관스님의 첫 책 ‘정관스님 나의 음식’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책을 짓는 데 함께한 (왼쪽 두번째부터 오른쪽으로) 정관스님, 저널리스트 후남 셀만, 사진작가 베로니크 회거가 모두 참석했다. 윌북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스님의 ‘정관스님 나의 음식’ 북토크가 지난 7일 종로구 스위스대사관에서 열렸다. 이번 북토크에는 독보적인 사찰음식 수행의 실천으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정관스님, 스님과 함께 책을 집필한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후남 셀만, 여러 달에 걸쳐 수록된 사진을 찍은 포토그래퍼 베로니크 회거까지 세 사람이 함께했다. 국내외의 여러 관객들이 참석하여, 책의 완성을 향해 같이한 시간에 대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한옥을 모티프로 지어진 종로구 송월동의 스위스대사관 앞뜰에서 열린 북토크는 그릇 하나에도 한국의 사계절과 미각을 담아내는 명장, 정관스님의 책 출간을 기념하기에 무척 잘 어울리는 자리였다. 주한스위스대사관 다그마 슈미트 타르탈리 대사의 따뜻한 환영 축사로 시작된 행사는 2시간여의 북토크, 정관스님의 사진과 식재료 세계를 감각적으로 전시한 사진전 ‘소일’(SOIL) 개막, 정관스님이 손으로 한겹 한겹 직접 펼치는 연꽃잎차 제조 시연, 정관스님이 나누는 음식의 시식으로 다채롭게 이어졌다. 정관스님과 사찰음식을 하나의 인연으로 한 세계의 내외빈과 시민들이 자유롭게 어울려 대화하는 활기 있는 시간이었다.



    정관스님은 책 출간에 얽힌 사연과 음식 수행에 대한 소신을 생기 있는 입담으로 들려주었다. 내장산 자락에 자리한 백양사 천진암의 암주 정관스님은 ‘표고버섯 조청 조림’ ‘구운 두부 산초 장아찌’ ‘피망과 비트를 갈아넣은 사찰식 김치’처럼 사찰음식의 격조와 전통을 이으면서도 창의적인 요리로 유명하다. 넷플릭스 다큐 등을 통해 자연을 존중하는 한국 사찰음식 고유의 문화를 널리 알리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정관스님에게는 책을 써달라는 부탁이 늘상 쇄도했지만, 이전까지 한 번도 책을 출판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사시사철 따라 더하고 덜해가며, 손과 마음이 가는 대로 음식을 하는 자신에게는 ‘레시피’를 글로 남기는 것이 적절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고 여겨서였다. 그런 스님이 자신의 이야기와 음식 레시피를 담은 책을 출판하게 된 것은 먼 곳에서 찾아와 몇 년에 걸쳐 함께한 후남 셀만 작가의 설득과 노력, 진정성 때문이었다. 작업에 걸린 시간과 정성에 걸맞은 정관스님의 정수가 이번 책에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겨레

    정관스님이 연꽃잎차 제조 시연을 하고 있다. 윌북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책 기획을 성사시키고 실질적으로 집필을 도맡은 후남 셀만 작가는 스위스에서 25년 넘게 활동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다. 1970년 파독 간호사로서 유럽에 처음 이민한 그의 한국 이름은 박후남이다. 철학, 독문학, 예술사를 공부해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후로는 스위스의 주요 일간지에 한국 문화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그가 정관스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7년 무렵 천진암으로 스님을 찾아가 취재를 하게 되면서였다. 철학을 전공했고 불교와 사찰 문화에 관심이 깊었던 그는 정관스님의 수행 방식에 매료되었다. 천진암에 오래 머물며 스님의 일을 돕는가 하면 해외 언론에 정관스님과 사찰음식을 알리는 글을 쓰기도 했고, 마침내는 스위스 출판사와 협업하여 정관스님을 인터뷰하고, 사진작가 베로니크 회거와도 의기투합해 3년에 걸쳐 책을 완성했다.



    한겨레

    정관스님 나의 음식 l 정관스님·후남 셀만 지음, 베로니크 회거 사진, 윌북, 2만4800원


    책에는 정관스님의 음식과 삶, 천진암의 사계절을 섬세하게 담아낸 백여 장의 사진들이 풍성하게 수록되어 있다. 책을 펼치면 전남 내장산 안자락에 있는 백양사 천진암의 아름다운 풍경과 스님이 밭에서 채소를 수확하고 사람들과 함께 장과 김치를 담그는 모습이 펼쳐진다. 정관스님 곁에서 지내며 사진을 찍은 회거 작가도 스님과의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웃음을 띠며 풀어놓았다. 다큐, 예술, 패션 등 여러 분야에서 명성을 쌓은 사진 작가인 그는 정관스님과의 작업을 위해 처음으로 한국에 오면서 작업 기간을 ‘넉넉히’ 한 달로 잡아두었다고 한다. 남도의 작은 암자를 찾아가 정관스님과 만나 계획을 이야기하자 스님이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그래요… 한번 두고 봅시다.” 결과적으로 회거 작가는 천진암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보냈다. 천진암의 경내 청소, 요리, 채마밭 경작, 명상 등으로 눈 뜨고 있는 시간 내내 ‘엉덩이 붙일 일이 없는’ 없는 스님 곁에서 회거 작가가 으레 생각해왔던 ‘집중적인 촬영시간 확보’는 어림도 없었다. 꼬박 한 해를 동고동락하며 생활하고 부엌일과 밭일을 도우며 그는 마침내 정관스님 사진 찍는 법을 터득했다. 한창 채마밭에서 오이를 따다가도 지금이다 싶으면 “스님, 제가 계속 따긴 딸 건데, 딱 3초만 그대로 있어주세요, 지금 빛이 너무 좋으니까…” 사정하며 틈틈이 찍고 모았다. 정관스님과 후남 셀만, 베로니크 회거 작가 모두 이렇게 긴 시간을 천진암에서 함께했다. 인연은 함께 작업한 책으로 결실을 맺었고, 여전히 소중한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최혜리 윌북 편집장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