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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4 (일)

    [한입 우리말]이름 때문에 오해받는 큰 소, 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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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옛 이름은 한쇼다. 우리말에서 ‘한’은 크다 또는 많다를 뜻한다. 한쇼는 큰 소란 의미다. 어느 날 사람들이 나를 황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멋진 누런 황금빛 털옷을 입은 건 사실이지만 겉모습만 보고 지레짐작으로 황소라고 부르는 것 같아 살짝 아쉽다. 누런색 털옷 때문에 그렇게 여길 수도 있겠으나 황은 한자 黃과는 다른 우리말에서 비롯되었다.

    ‘한’은 참으로 신기한 글자다. 원형 그대로 활발히 활동하기도 하지만 나처럼 ‘황’ 또는 ‘할’로 다양하게 변주하며 우리말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한숨은 길게 몰아 크게 내쉬는 숨을 말한다. 슬프거나 답답할 때 자기도 모르게 큰 숨을 쉬게 된다. 그게 한숨이다. 한바탕, 한걸음, 한밭도 크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나와 ‘성’이 같은 황새도 마찬가지다. 황새를 보고 누런 새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황새의 옛 이름은 한새이고, 이는 큰 새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새 중 하나가 황새 아닌가. 예나 지금이나 나와 성이 같은 황새를 생각하면 나, 황소도 누런색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듬직한 큰 소임을 알 수 있을 듯하다.

    가끔 나도 헷갈린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할’도 예전에는 ‘한’이었다는 사실이 그렇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원래 ‘한머니’ ‘한아버지’였다. 큰 어머니, 큰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 한머니, 한아버지다. ‘크다’란 말인 ‘한’이 ‘할’로 바뀌어 뜻이 쉽게 와닿지 않지만 어머니나 아버지보다 더 큰어른이란 의미로 사용했다. 한머니, 한아버지보다 발음하기 쉽고 듣기에도 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도 ‘한’은 ‘황’으로, ‘할’로 다양한 모습으로 움직이면서 우리말 속에 스며들어 있다. 비록 내 이름이 한쇼에서 황소로 바뀌었지만 옛 이름 속에 담겨 있던 ‘크다’란 의미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부디 나를 단지 그저그런 누런 소가 아닌, ‘크고 듬직한 기운’을 품은 소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황소걸음이다. 비록 느리기는 하나 착실하게 무언가를 꾸준히 이루어 나가는 사람을 제일 좋아한다.

    김선경 교열부 선임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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