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준 RPA 건축연구소장 |
메타버스 안에서는 복수의 아바타만큼이나 소통 채널도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따라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의식이 생겨날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주된 요소는 같은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면서 기억과 교육을 통해 형성되는 공동의 가치와 소통의 정체성이다. 과거의 커뮤니티는 거리라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다.
전남도, CES 2025에서 AI·메타버스 기술 선보여 |
오랫동안 인류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이웃끼리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공동체적 생활을 했고, 그 안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의식을 만들어왔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활발한 온라인 소통을 통해 물리적 거리 개념을 극복함으로써 더욱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가 생겨났다. 하지만 이 또한 소통 방식이 제한적이었다. 현재 사람들이 활발하게 사용하는 소통 수단인 SNS는 텍스트와 이미지, 동영상 등 2차원의 평면적 디지털 소통만 가능하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화와 성향을 공유할 것이다. 또한 현실 세계보다 더욱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디지털 공동체가 생겨날 것이다.
정치 사상적 이슈, 인종적 이슈, 문화적 이슈 등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벽도 뛰어넘을 것이다. 심지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개념의 새로운 가상의 국가나 공동체도 탄생할 수 있다.
메타버스 기반 대테러 훈련 |
개인을 대리하는 복수의 아바타 덕분에 인류는 메타버스에서 새로운 즐거움과 기회를 경험하게 된다.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단단한 결속력도 다진다. 그런데 아바타는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존재는 아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가 10개, 20개로 복수가 되면서 발생할 충격과 혼란도 간과할 수 없다.
메타버스의 세계에서 개인은 자신을 대리하는 여러 아바타를 통해 과거와는 다른 다중적 생활을 하게 된다.
가장 큰 문제로 인간 자아와 정체성의 혼란을 들 수 있다. 메타버스 속에서 나를 대신할 복수의 아바타는 단지 외모만 제각각인 것이 아니다.
아바타의 능력이나 특성, 성격까지도 각각 다르다. 메타버스 안에서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수많은 나와 만나면서 결국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게다가 이러한 자아 정체성의 혼란은 커뮤니티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인류의 보편적 커뮤니티였던 국가와 민족은 물론이고, 그 안에서 사회적 위치, 정치 성향 등의 성격과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야 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현실 세계보다 메타버스의 세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는 주객이 전도돼 현실의 세상은 잠시 쉬어가는 정거장 역할을 한다.
그 결과 현실의 공간과 사람들, 그리고 그 안의 나는 점점 방치되고 소외될 수도 있다. 가상 세계가 우리의 주된 활동 무대가 된다면 현실 세계는 결코 현재와 같은 의미를 갖지 못한다.
가상 세계 속에서 비즈니스와 교육, 사교와 취미 등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한다면 현실의 세상은 단지 먹고 자는 등 생존을 위한 일시적인 공간이 될지도 모른다.
초등학생 오버워치 이용 제한 안내문 |
한국의 피시방을 떠올려보자.
그곳에서 온종일 게임에 열중하는 일부 사람은 마치 피시방 외의 다른 공간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고 식사까지 해결한다.
기본적인 생리 현상도 피시방 안에서 해결하며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자거나 심지어 며칠을 씻지도 않는 이도 있다. 이들에게 외부 세상은 피시방 안에서 필요한 것을 가져오기 위해 잠시 들르는 공간일 뿐이다.
이 이야기가 너무 극단적인 예시일 수도 있겠지만, 미래의 메타버스 전성시대는 이와 매우 유사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보다 더한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메타버스에서는 게임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일상의 거의 모든 활동이 가능하기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메타버스를 벗어나 현실 세계로 돌아올 이유가 없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메타버스로 만들어낸 가상 세계는 거대한 도시 스케일의 피시방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메타버스가 발달하고 그 안에서 일상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인간의 실체적 존재는 결국 현실에 있다. 피시방 게임 속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무사로 활약하다가 현실 세계에서는 부모님의 호통에 훌쩍이는 소심한 고등학생이 돼야 하는 상황은 현실에 대한 괴리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제 겨우 메타버스의 첫걸음을 떼는 시점에 이러한 염려는 기우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미래 메타버스를 설계할 때 만에 하나 발생할지도 모를 다양한 문제를 예측하려면 이런 문제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유토피아가 메타버스 세상에서 열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 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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