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MT리포트] 1987을 넘어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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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이룰 절호의 기회"···'87체제' 종언 위해 넘어야 할 산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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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식 겸 제418회 국회(정기회) 개회식에서 의원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2024.9.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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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던 개헌을 성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대통령의 의지라는데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여야 간 타협과 국민 공감대 형성도 개헌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됐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9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1987년 이후 역대 개헌을 이야기했던 대통령들을 보면 당선 전 공약으로는 내걸지만 정작 당선되면 개헌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임기 말로 개헌 과제를 미뤄오곤 했다"며 "대선 후보 중에서도 정작 당선이 유력시되는 이들도 개헌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 부분이 그동안 개헌이 이뤄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동안 개헌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 꼽혀왔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국회에서 선출하는 책임총리제 등이 대안으로 거론됐었다. 현재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거나 또는 쥘 것이 확실시되는 세력에서는 현행 권력구조 개편을 중점 내용으로 하는 개헌에 마뜩잖을 수밖에 없는데 이 지점이 개헌의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이 의지를 갖췄다 하더라도 여야 간 원만한 합의 없이는 개헌이 불가능하다.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려면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실제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 2018년에 헌법 개정안을 직접 발의했지만 여야 합의를 얻지 못해 당시 개헌은 실패로 돌아갔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국회에서 개헌을 위한 협치가 이뤄지려면 여야가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이익을 생각해 한발씩 물러나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라며 "정치 엘리트들이 민의의 변화, 환경 변화를 수용해 건설적으로 발전하겠다는 선의와 그래야만 '윈윈'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갖고 개헌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가 모두 민감할 수 있는 권력구조 개편에 관한 사항은 잠시 미뤄두고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사안부터 접근하는 것도 개헌을 위한 협치를 이끌 방법이 될 수 있다. 난제보다는 쉬운 문제부터 접근하자는 것이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원포인트' 개헌이 거론된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우리 사회가 현재 성장의 한계에 봉착해있다는 것은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 아닌가. 그런 점에서 개헌은 꼭 필요하다는 데 여야 모두 동의한다"며 "대한민국 복지 시스템 전반을 바꾸는 문제, 사회 갈등을 줄여나갈 수 있는 방안 등등 사회가 정말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한 것부터 개헌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개헌이 꼭 필요하다는 국민 공감대를 키우는 것도 개헌을 이루기 위한 과제다. 대통령과 국회가 민의를 대변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국민들로부터 개헌 동력이 커진다면 정치인들도 개헌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어서다. 개헌 필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확산하고 개헌에 대한 이해 증진을 위한 교육과 홍보, 다양한 토론회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개헌에 의지를 가졌던 국회의장들은 다양한 토론회, 공청회 등을 기획했었다.
전문가들은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커진 지금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채진원 교수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국민들이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당리당략에 밀려 개헌을 포기할 게 아니라 개헌을 이룰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누가 집권하든 대승적 양보가 필요하다. 개헌은 격변의 시기 타협물이다.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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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새 2번 개헌...대통령 비상권·임기·연임 횟수 다 줄인 나라,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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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국가들의 주요 개헌 사례 비교/그래픽=김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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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대선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개헌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해외 국가들의 개헌 사례에 관심이 쏠린다.
9일 한국법제연구원이 발간한 '2008년 프랑스 헌법개정에 관한 연구' 등에 따르면 프랑스는 1958년 헌법을 제정하면서 대통령(외치)과 총리(내정)의 권한을 분담하는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했다.
이후 2000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이고, 2008년 개헌에선 연임 기간도 최대 5년으로 제한, 장기집권 우려를 해소했다.
또 대통령의 국가비상권·사면권 등 권한도 축소했다. 반면 의회의 입법·통제 기능은 확대했다. 2000년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은 국민투표를 거쳤지만 2008년 헌법 개정은 상·하원 합동회의(콩그레)에서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이뤄졌다.
프랑스의 헌법 개정은 대통령 중심의 권력 구조에서 벗어나 의회와 야당의 권한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뒀다. 1958년 제5공화국 출범 이후 대통령에게 권력이 쏠리는 반면 야당의 권한은 약하단 비판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헌 방향은 최근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의 헌법 개정은 1987년이 마지막이다. 이후 사회·정치 환경이 급변하면서 법 체계와 현실 간 괴리가 커졌단 지적이 나온다.
독일의 개헌은 해외에서도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헌법개정 절차의 합리적 개선 방안'에 따르면 독일의 헌법 격인 기본법은 1949년 제정 이래 총 67번의 개정을 거쳤다.
기본법 제정을 통해선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을 분리하고 총리 중심의 내각책임제를 확립했다. 바이마르 헌법(1919년)에서 대통령 권한이 지나쳐 발생했던 정치적 혼란을 방지하는 차원이다. 이후에도 △동독 5개 주의 연방 편입을 위한 연방 가입 조항 수정(1990년) △재정준칙 도입(2009년) △인프라·국방 투자 특별기금 신설(2025년) 등의 개정을 단행했다.
독일의 기본법이 수차례 개정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법 79조 조항 덕분이다. 이 조항은 기본법의 개정 절차와 한계를 규정한다. 기본법을 개정하더라도 문구를 변경하거나 보충하는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연방주의를 훼손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미국은 1789년 헌법 제정 이후 27차례 헌법을 개정했다. 개헌은 먼저 의회에서 개헌안을 제안하고 양원(상·하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시켜야 한다. 이밖에도 각 주에서 4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비준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개헌 사례로는△ 권리장전(수정헌법 1~10조·1791년) △노예제 폐지(수정헌법 13조·1865년) △금주법(수정헌법 18조·1919년) △여성 참정권(수정헌법 19조·1920년) △대통령 임기 제한(수정헌법 22조·1951년) 등이 있다.
일본은 1947년 헌법(평화헌법)을 시행한 이래 한 번도 개정하지 않았다. 개헌이 이뤄지지 않은 요인으로는 중의원·참의원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국민투표 과반 찬성 등 까다로운 개정 요건, 평화헌법에 대한 국민적 애착과 전쟁에 대한 반감 등을 들 수 있다.
김일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개정 절차의 합리적 개선 방안' 제하의 보고서에서 1987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개헌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로 정국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정치세력들의 일방적 추진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가들의 헌법개정에 관한 규범과 현실을 살펴보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찾는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유재희 기자 ryu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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