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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1 (목)

    [투데이 窓]악(惡), 어디까지 겪어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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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니투데이

    박동우(무대미술가, 홍익대공연예술대학원교수)



    "혼자서 어디까지 가봤니." 서울의 어느 남자고등학교 예술수업 시간에 교사가 던진 질문이다. 그날 나온 가장 멀리 간 학생의 대답은 "엄마 차가 고장 나서 학원까지 혼자 갔다"였다. 놀랍다. 그 학생들의 사회적 면역력은 어느 정도일까. 엄마가 시키는 대로 판검사, 의사가 되면 어떤 판단과 행동을 하게 될까.

    면역이란 우리 몸에 침입한 병원체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 다음에 같은 침입에 대해 저항력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 따르면 유라시아 대륙의 인간은 가축과의 빈번한 접촉으로 인수공통 전염병에 걸려 고생하는 동시에 면역력을 가지게 됐다. 반면 신대륙의 인간은 상대적으로 가축이 희소해서 면역력을 키울 수 없었기에 그들에게 구대륙에서 온 인간들은 세균병기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면역력은 신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적 면역력도 가져야 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각급 학교에서 부딪치고 다치고 다투고 울면서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요즘 학부모가 들으면 기겁할 말이겠지만…. 그런데 그 정도론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직접 경험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병균을 간접적으로 접촉하면서 면역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예술이다. 이 중 가장 효과적인 백신주사는 '지금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연극이다.

    셰익스피어는 '맥베스'라는 백신주사로 우리에게 악에 대한 항체를 생성하게 한다.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는 동료 뱅쿠오와 함께 반란군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녀들을 만난다. 마녀들은 예언한다. "맥베스는 코더의 영주가 되고, 왕이 될 것이다. 그리고 후일 뱅쿠오의 아들도 왕이 될 것이다." 예언을 전해들은 부인은 왕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자고 맥베스를 부추긴다. 그들은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성을 방문한 국왕 덩컨을 교묘하게 죽인 후 증거를 없앤다. 왕자들은 위험을 피해 국외로 도주하고 맥베스는 자연스럽게 왕이 됐다.

    왕위를 찬탈한 그들에게는 걱정이 남아 있다. 뱅쿠오의 아들이 미래의 왕이 된다는 예언 때문이다. 그들은 영구집권을 위해 자객을 보낸다. 그러나 뱅쿠오만 죽이고 그 아들은 놓친다. 불안해진 그들은 마녀들을 찾아가 예언을 듣는다. "맥더프를 조심하라. 그러나 여자가 낳은 자는 맥베스를 죽이지 못한다." 맥베스는 맥더프의 처와 자식들을 모두 죽인다. 그 자리에 없었던 맥더프는 군사를 일으켜 맥베스를 공격한다. 마녀의 예언을 믿고 대항하던 맥베스는 '제왕절개로 태어난' 맥더프의 손에 죽고 왕위는 순리대로 왕자에게 계승된다.

    충분히 악하다. 하지만 맥베스만 봐서는 부족하다. 우리의 현실은 더 악하기 때문이다. 맥베스 부부는 양심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 그래서 덩컨 왕을 죽인 후 맥베스는 "더이상 잠을 잘 수 없다. 맥베스는 잠을 죽였다"는 환청에 시달린다. 그리고 부인은 "아직도 피비린내가 난다. 이 작은 손의 악취를 어떻게 없앨 수 있단 말인가"라며 끊임없이 손을 비비면서 괴로워한다.

    맥베스가 채워주지 못하는 또 다른 면역을 위해 '오셀로'를 보자. 흑인이지만 혁혁한 전공을 세워 베네치아 귀족의 딸 데스데모나와 결혼한 오셀로는 부하 이아고에 의해 파멸한다. 이아고는 사악한 거짓말로 오셀로를 속여 그로 하여금 데스데모나를 죽인 후 자살하게 만든다. 이아고는 주위의 모든 사람을 속이고 이용한다. 엄청난 악행에 비해 이아고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별로 크지 않다. 하지만 이아고는 악 그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또한 타인의 고통을 통해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악을 행한다. 오셀로의 칼에 찔리고도 "피는 나지만 죽지 않는다"고 낄낄댄다. 차원이 다른 악인이다.

    이 두 연극을 보면 악에 대한 면역이 어느 정도 생긴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는 '맥베스'라는 백신에 '오셀로'라는 백신까지 맞아야 하는 사회에 살게 됐을까.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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