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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6 (금)

    [카페 2030] ‘지구의 배꼽’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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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뿌리는 ‘지리산 반달가슴곰’과 ‘백두산 호랑이’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할아버지는 실향민이었다. 반달가슴곰일 가능성은 작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황해도 연백군에서 밭매다 피란을 왔다”고도 했다. 백두산은 한반도 최북단 양강도에 있다. 황해도는 서쪽이니 백두산 호랑이와도 거리가 멀다. 제3의 동물은 아닐까. ‘백령도 점박이물범’ ‘한탄강 수달’ ‘소백산 여우’처럼 ‘연백군 어쩌고’도 있진 않을까.

    엉뚱한 생각은 출장차 방문한 호주에서 시작됐다. 한 원주민 볼에 그려진 삼지창 모양 무늬가 계기였다. 조류의 발바닥처럼 보였다. “혹시 타조?”라고 묻자 “라이어버드(Lyrebird·금조)”라고 한다. 오직 호주에만 사는 새, 국조(國鳥) 중 하나다.

    새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발바닥 모양을 찍었을 리는 없었다. 이유를 물으니 “모계의 ‘토템(Totem)’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들에게 ‘토템’은 대대로 숭배해 온 자연물이자 조상을 의미한다. 고목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한국의 ‘당산나무 신앙’이 떠올랐다. 그러나 호주 원주민들은 자연물에 조상신(神)이 ‘깃들어 있다’고 보기보다 자연물을 ‘조상 그 자체’로 여기는 개념이 강하다고 한다. 숭배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김씨네 후손인지, 박씨네 후손인지 등을 유추할 수 있다고 하니 일종의 ‘자연계 족보’인 셈이다.

    호주에는 ‘지구의 배꼽’으로 불리는 거대한 사암 바위 ‘울룰루(Uluru)’가 있다. 울룰루 등반은 인기 있는 관광 코스였으나 6년 전부터 전면 금지됐다. “가파른 경사 때문에 사고 위험이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바위를 타고 오르지 말아 달라”는 원주민들 호소 때문이기도 했다. 이 지역에는 바위를 여러 조상이 변한 형태의 집합체로 여기는 부족이 있다고 한다. “무생물 아니냐” 싶겠지만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쓰레기와 소변으로 뒤덮이는 일이 사라졌다.

    호주 원주민에게 자연은 공존의 주체였다. 자연물 훼손은 누군가의 뿌리를 해하는 일에 비견된다. 섣불리 시도하지 않는다. 신성한 존재로 여기며 숭배하지만 대상에게 “소원을 빈다”는 개념도 희박하다. 대신 땅과 자연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경외심을 표현한다.

    줄곧 수도권에서만 살았던지라 토테미즘적 사고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나고 자란 곳이 다르기에 우리 사회에 적용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자연을 소비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요즘 자연을 존중하고 조심스레 대하는 감각을 조금은 닮고 싶다.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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