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가해자 86%가 부모
가정밖 감시자들 제 역할 못 해
"아동사망검토제도 도입해야"
2020년 10월 13일, 생후 16개월, 입양된 지 8개월 만에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의 묘소.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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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학대로 숨진 아동은 2020년 43명, 2021년 40명, 2022년 50명, 2023년 44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망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202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15∼2017년 아동 변사사건 1,000여 건의 부검 결과를 분석했더니 최대 391명에게서 학대 정황이 나왔다. 같은 기간 정부가 파악한 아동학대 사망(90명)의 4배가 넘는다.
한국은 아동학대 발견이 늦고 낮은 나라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3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발견율(0~17세 인구 1,000명당 아동학대로 판단된 피해 아동 수)은 2020년 4.02‰, 2021년 5.02‰, 2022년 3,85‰, 2023년 3.64‰에 그친다. 미국 8.1‰(2021년), 호주 12.4‰(2019년)와 비교해 현저히 낮다.
아동의 일상생활에서 학대 징후를 포착·진단하는 주변의 시선이 느슨했거나 아예 작동하지 않는 탓에 여전히 신고되지 못한 사례가 상당수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로 신고자 10명 중 6명은 부모(30.5%)와 아동 본인(24.9%)이고, 가정 밖 감시자 역할을 하는 이웃·친구는 6.7%, 친인척은 1.5%로 극히 적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대응 시스템이 미비해서가 아니라, 신고자 신원 노출, 보복 우려, 불이익 때문에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은 공동체 붕괴와 신뢰 훼손,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회 분위기가 아동학대를 방치하고 은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대피해아동 연령을 보면 0세 1.5%, 1~3세 7.5%, 4~6세 10.9%, 7~9세 17.7%, 10~12세 24.2%, 13~15세 26.3%, 16~17세 12%로, 나이가 올라갈수록 비중이 커진다. 스스로 피해를 인지하거나 신고할 수 없는 영유아 학대가 잘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신고자 중 의료인(1%), 보육 교직원(0.4%), 유치원 교직원(0.4%)의 비중이 낮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문제다. 의료인의 신고율이 높은 미국(12.2%)과 영국(14.4%)에서는 한국과 반대로 영유아 학대 발견율이 가장 높고,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발견율이 낮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영유아는 사망 위험이 커 특히 조기 발견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이주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동학대·방임의 실태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신고자의 익명성 보장을 강화하고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통해 발견된 사항이 신고로 원활히 연계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신고는 늘고 있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 건수(중복신고 및 일반상담 제외)는 2020년 3만8,929건에서 2023년 4만5,771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방임과 정서학대가 증거 부족으로 아동학대로 분류되지 않았을 가능성, 단순 오인 신고 등 여러 이유로 실제 아동학대로 판단된 비율은 절반이 조금 넘는다(56.2%).
그래픽=신동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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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행위자 85.9%가 부모이고 발생 장소 82.9%가 가정이라는 통계에서 보듯,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는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복지부는 예방접종 미접종, 장기결석, 아동수당 미신청 등 44가지 사회보장 정보를 기반으로 위기 아동을 찾아내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11만1,511명을 발굴했고 지자체 방문 조사를 거쳐 2만7,710명이 복지서비스로 연계됐다. 아동학대 의심 사례도 43건 찾아냈다.
하지만 강지영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위기 아동 발굴 시스템으로는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발생하는 학대는 찾기 어려울 수 있다”며 “아동보호시스템은 상당히 발전했지만, 현장에서 위험 징후를 충분히 확인하고 점검할 수 있는 여건이 더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예방적 지원이 강화돼야 사망도 막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아동사망검토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아동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어떤 위험이 있었는지 심층 분석해 유사 사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미국, 영국, 일본, 대만 등은 이미 시행 중이다. 복지, 의료, 교육, 사법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전문 위원회나 기구를 설치해 사망 사례 검토, 사건보고서 작성, 실태 조사는 물론 제도 개선 권고까지 맡기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현재 국회에 관련 법률안 2건이 발의돼 있지만, 후속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정선욱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제도의 목적은 안타까운 죽음으로부터 다른 아동을 살리기 위한 배움을 얻어 현장에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데 있다”며 “아동사망검토제도가 영유아 사망을 막고 정책 변화, 법·제도 개선을 촉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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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법이 개정되어 부모라도 아동을 체벌할 권리는 없으며, 아동에게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 등을 하면 최대 10년 이하 징역 등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112에 신고하고, 아동 양육·지원 등에 어려움이 있으면 129(보건복지상담센터)와 상담하십시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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