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보호, 거래소 자율에만 의존…구속력 전혀 없어
현행법 없어 대응 불가…당국, 2단계 가상자산입법 추진
"규제로 틀어막을 게 아니라 룰 만들어 제도권 편입해야"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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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업계에 따르면 업비트는 지난 4일 투자자가 보유한 디지털자산을 담보로 비트코인, 테더, 리플을 빌릴 수 있는 코인빌리기 서비스를 시작했다. 담보금액의 20~80% 한도에서 최대 5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고 상환 기간은 30일이다. 신청 시 0.05%, 8시간마다 0.01%의 수수료가 붙는다. 같은 날 빗썸은 기존 렌딩을 확대한 ‘코인대여(렌딩플러스)’를 내놨다. 직전월 거래금액이 1000만원 이상인 고객만 쓸 수 있고, 멤버십 등급별로 최대 5억원까지 빌릴 수 있다. 하루 이용 수수료는 0.05%이며 강제 상환 시 추가 수수료가 붙는다.
핵심 구조는 주식 공매도와 같다. 투자자는 거래소에서 코인을 빌려 시장에 팔고 시세가 떨어지면 다시 사서 갚아 차익을 얻는다. 반대로 가격이 오르면 손실은 무한대로 커진다. 주식은 상하한가가 있지만 가상자산은 제한폭이 없어 급등락 위험이 더 크다. 예컨대 주식은 상하한가 덕에 하루 30% 이상 오르거나 떨어질 수 없지만, 코인은 새벽에도 50% 이상 급등할 수 있다.
업비트 관계자는 “투자자들의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투자수단으로 코인빌리기를 내놨다”며 “가격 변동에 따른 강제 상환 위험이 있다는 점을 사전 안내하고 별도 유의사항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나친 과열을 막기 위해 투자금액 한도도 두고, 당사 소유 코인만 대여물로 쓰기 때문에 법적 리스크를 줄였다”며 “소비자 보호를 위한 추가 장치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업비트는 국내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회원은 1000만명 이상으로 추산한다. 빗썸은 약 500만명 회원을 보유하며 월간 거래액은 약 10조원 규모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국내에서는 현물만 가능해 레버리지나 공매도를 원하는 투자자가 해외 거래소로 빠져나갔다”며 “이제 국내 거래소도 파생시장에서 경쟁을 본격화한 셈이다”고 말했다.
문제는 투자자 보호 장치가 구속력이 전혀 없는 거래소 자율에만 의존한다는 점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렌딩과 공매도 구조는 위험성이 큰데 현행법상 불건전 영업행위를 규제할 조항이 없다”며 “막거나 시정명령을 내릴 근거가 없어 권고 외에는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2단계 가상자산 입법에 공매도와 렌딩 같은 거래를 직접 규율할 체계를 담고 마케팅 등 영업행위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무조건 금지보다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국내 맞춤형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바이낸스도 마진거래를 통해 레버리지·숏포지션 투자를 지원하지만 최소 담보비율, 강제 청산 시스템 등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다만, FTX 파산은 과도한 레버리지와 내부 통제, 자산 혼용 등을 결합한 결과였기 때문에 레버리지 상품이 안전장치가 있어도 규제와 관리가 허술하면 투자자 피해가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할 수 있다.
윤민섭 디지털소비자연구원 이사는 “코인빌리기 서비스는 무차입 공매도가 아니라 거래소가 보유한 자산을 빌려주는 차입공매도에 가깝다”며 “공매도가 주식시장에서 논란이 된 건 빌리지 않고 파는 무차입 공매도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레버리지나 차입거래는 해외 어디에나 존재하는 정상적인 파생상품인데 한국은 이게 없어 투자자가 무풍지대인 해외로 빠져 나갔다”며 “정부가 규제로만 틀어막을 게 아니라 거래소와 단계적으로 룰을 만들어 제도권에 편입시켜야 실질적 소비자 보호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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