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략적 유연성 강화 시도 속
“北, 가장 강력한 전략적 위치”
남북·한중관계 동시 악화 경계
8일 오전 경기 파주시 임진각이 안보여행에 나선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파주=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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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담론이 20여 년 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중심 축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당시엔 미국의 탈냉전시대 세계 전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분법적 논란에 갇혔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의 글로벌 전략이 중국 견제·포위에 맞춰져 있음이 명확한 만큼 적어도 국익을 판단할 기준선은 그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전략적 유연성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방위는 한국군이 담당하고, 주한미군은 미국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역내·외 현안에 집중하는 역할분담을 전제로 한다. 우리 입장에선 적잖은 시간이 지난 만큼 진전된 수준의 타협점을 만들어낼 필요가 크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인사들이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 체제 운용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공개 발언을 잇따라 내놓는 것으로 미뤄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노무현 정부가 2006년 1월 한미 고위급 전략대화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전격 합의 직후 사회적 논란이 상당했다. 하지만 한미 상호방위조약과의 상충 여부, 사전협의 조항 누락, 국회 동의 절차 패싱 등 우리 내부에서 제기됐던 쟁점들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같은 해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두고 벌어진 극심한 분열상은 전략적 유연성 논란을 명쾌하게 매듭짓지 못한 후과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과 전략적 유연성,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민감한 현안들을 모두 거론했다. 아직까지는 분명치 않지만, 이들 현안을 연계할 뿐만 아니라 상호관세 협상과도 엮을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 우리 사회 내부의 한미동맹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와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맹목적인 두려움이 정부의 협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경계해야 할 상황은 남북관계와 한중관계가 동시에 삐걱거리면서 ‘한반도 리스크’가 급격히 상승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가시화하면 생산적인 한중관계를 장담하기 어렵다. 미국은 본토 방어와 함께 중국의 대만 점령 저지를 국방분야의 최우선 전략으로 상정함으로써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여기는 양안 문제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유사시 주한미군이 투입된다면 한반도는 전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남북관계는 긴 호흡으로 새로운 중장기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북한이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것은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의 종언을 의미한다. 대신 북러 밀착, 미중 패권 경쟁, 북미회담 가능성, 북중 교류협력 등을 두루 감안하면 북한은 미중러 3국과의 주고받기를 통해 전략적 가치를 높일 기회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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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미국 국방정보국(DIA)은 ‘2025년 세계 위협 평가’ 보고서에서 “북한이 수십 년 만에 가장 강력한 전략적 위치에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이전과 달리 남북관계를 특별한 돌파구로 여길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이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통일 기조에서 전쟁 방지와 리스크 관리라는 보다 현실적인 정책 목표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미 국민들의 의식은 전쟁위협 해소와 평화공존을 향해 있다. (본보 6월 7일자 13면 <尹정부 남북관계 파탄... 평화공존으로 한반도 리스크 관리를>) 트럼프 측에서도 북미회담이 성사된다면 군축회담이 될 거란 얘기가 나온다.
양정대 선임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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