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강선우 여가부 장관 전 후보자.(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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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고규대 기자]이재명 대통령이 분노했다.
최근 전남 나주의 한 벽돌 생산 공장에서 화물에 결박된 채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조롱당한 외국인 노동자의 영상이 SNS에 화제가 되었다. 이 대통령은 SNS에 “영상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고 적었으며, “세계적 문화 강국이자 민주주의 모범국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소수자, 약자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자 명백한 인권유린”이라고 지적했다.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2025.07.24. 보도)
이렇듯 노동자들은 항상 심각한 ‘갑질’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비단 ‘절대 을(乙)’의 자리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끼리도 갑을관계는 항상 존재하며, 갑질의 사례는 검색엔진을 찾아보면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온다.
지난 5월 17일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는 “국가 정책을 수립할 때 수도권과 지방을 똑같이 대하는게 아니라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신으로 재정을 배분해서 지방도 소외되지 않고 함께 성장 발전하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억강부약.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운다는 뜻이다. 이는 지난 2022년 대선 때 이재명 후보의 슬로건이기도 했다. 이번 7월 한 달간 온 나라가 새 정부의 장관 임명 때문에 시끌시끌했었다. 결과론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두 후보자모두 유임되지 않았다. 이진숙 전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무능과 본인 자녀의‘내로남불’ 교육으로 문제가 됐다면,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갑질의 의혹으로 문제가 되었다.
본인과 보좌진 사이의 진실 공방은 둘째치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강선우의 갑질 의혹이 성토되자마자, 즉각 엄호 및 변호에 나섰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억측이라고 했으며, 정청래 당 대표 후보 또한 강선우는 적극 변호했다.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을, 갑이 갑을 감싸는 것은 어찌 보면 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 여론, 국회 내 익명 제보 및 고발 창구인 페이스북 ‘여의도 옆 대나무숲’, 그리고 국회 보좌진과 청년 정치인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서는 하루에도 몇 개씩 강선우의 과거 갑질에 대한 제보와 한탄 및 자조 섞인 글이 올라왔다. 국회의 폐쇄성을 고려해보면 아무리 익명이 보장되었다고는 하나 이렇듯 많은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회 보좌진의 절대다수는 바로 청년이다. 이렇게 국민적 여론과 당 내부에서도 잡음이 있는 인물을 장관 임명 강행하는 것은, 여러 기대를 하고 정당활동 그리고 선거에 불철주야 열심히 뛰었던 청년 정치인들과 정치 꿈나무들의 의지를 꺾는 형국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청년 우대’ 기조를 자조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청년을 우대한다고 떠들며 정작 가장 중요할 때는 청년을 외면하는 모순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당 지도부와 대통령실의 입장은 ‘갑질’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여러 갑질 제보와 정황이 나왔던 강선우의 임명을 국민이 이해해달라고 했다. 이는 오판이다.
천만다행으로 강선우 후보자의 자진사퇴로 인해 이 화두는 일단락되었다. 강선우 후보자는 이 모든 의혹과 제보가 잘못되었다면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고 본인의 무고함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주장해야 했다. 그가 SNS에 올린 사퇴문에는 대통령과 국민에 대한 사과는 있었지만, 문제가 된 보좌진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끝까지 아쉽다.
강선우 의원은 만약 이 수많은 갑질 정황이 사실이라면, 본인의 행보는 잠시 접어두고 진정어린 사과부터 해야 한다. 새 정부 또한 대선 때 내세웠던 ‘경청’의 초심과 가치, 그리고 ‘억강부약’이라는 슬로건을 다시 한번 되새겨봄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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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형민 피아니스트=베토벤 국제콩쿠르 우승자 출신으로 글로벌 활동을 하는 국내 손꼽히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서형민 피아니스트는 각국을 오가면서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고 인식해 다문화와 관련된 글로 ‘동거동락’(同居同樂)이라는 미래를 함께 꿈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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