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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6 (일)

세계의 식탁 된 방콕… 어떤 미식을 상상하든 최고를 맛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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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글로벌 음식 수도

태국 방콕 미식 기행

더 스탠더드 방콕 76층에 있는 ‘오호’의 생선구이.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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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타이, 솜땀, 똠얌꿍….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태국 음식은 한국인에게도 친숙하다. 하지만 태국의 수도 방콕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식 도시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세계 베스트 레스토랑 50(W50B)’에는 방콕 소재 식당 4곳이 선정됐다. 전통적인 미식 수도인 프랑스 파리와 함께 가장 많았다. 세계 외식·미식계 전문가 1000여 명의 투표로 최고의 식당을 가리는 W50B에 포함된 서울의 식당은 올해 미쉐린 가이드 3스타로 올라선 모던 한식당 ‘밍글스’ 한 곳뿐이다.

방콕의 식탁에는 태국 음식만 오르지 않는다. 세계 정상급 프랑스·중국·인도·멕시코 요리도 맛볼 수 있다. W50B 9위로 아시아 소재 식당 중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가간’은 태국식이 아닌 인도 음식점. 23위에 오른 ‘슈링’은 독일 출신 쌍둥이 형제 셰프 토마스·마티아스 슈링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독일 파인 다이닝(고급 외식)을 선보이며 미쉐린 별 2개를 받았다.

방콕이 글로벌 미식 수도로 성장한 비결은 뭘까. 인도 뭄바이 출신으로 지난해 방콕에 ‘인디’를 연 사친 푸자리 셰프는 “방콕은 세계적 관광 도시다.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이 찾기에 인도 음식을 널리 맛보일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미쉐린 1스타 프랑스 식당 ‘메종 뒤낭’ 오너셰프 아르노 뒤낭 소티에는 “14세 때부터 수련해 온 프랑스 요리 기술로 아시아의 맛과 식재료를 해석하는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W50B에도 올랐던 자신의 멕시코시티 식당을 접고 방콕으로 옮겨온 프란시스코 파코 루아노 셰프는 “구할 수 없는 식재료가 없을 만큼 풍부해 미각적 상상력에 제한이 없는 곳”이라고 했다.

4월 조선일보가 기획한 ‘방콕 미식 기행’에서 방문할 태국·프랑스·인도·중국·멕시코 음식점 7곳을 미리 다녀왔다.

◇복합적인 맛의 화음, 태국 요리

태국 요리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운 호주 출신 셰프 데이비드 톰슨은 “태국 요리는 복잡한 화음(和音)과도 같다”고 했다. “표면은 매끄럽지만, 그 밑에서는 어떤 난리가 벌어져도 상관없죠. 태국 요리에서 절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요소가 있다면 단순함일 겁니다.” 톰슨이 말하는 태국 음식의 복합성은 동남아의 중심인 지리학적 요소와 오랜 교역 역사, 태국·라오스·미얀마 등 인접 국가에서부터 인도·중국·프랑스 등 먼 외국까지 가리지 않고 음식 문화를 배척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태국 요리는 최초의 통일 왕국 수코타이 시대(1249~1438년)에 기본 틀이 잡혔다. 끓이고·섞고·두드리고·끓이는 네 조리법을 활용해 단맛·짠맛·신맛·매운맛의 조화를 추구했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갈수록 간이 세고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하는 건 한국과 같다.

여기에 외국 식문화가 활발하게 섞였다. 다양한 향신료 쓰는 법은 인도에서 배웠다. 서양 식문화는 포르투갈이 1511년 처음 외교 사절단을 보내면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포크와 숟가락은 1897년 라마 5세(재위: 1868~1910년)의 유럽 순방 후 서구화 정책의 일환으로 보급됐다.

방콕 ‘쏨분 시푸드’의 뿌팟퐁커리. 게살을 볶아 커리 가루·달걀·코코넛 밀크를 섞은 부드럽고 감칠맛 진한 소스에 버무린다.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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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태국 요리에 큰 영향을 미친 나라로는 중국이 꼽힌다. 태국을 대표하는 음식 ‘뿌팟퐁커리’는 중국에서 웍과 볶음·튀김 조리법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탄생할 수 없었다. 뿌팟퐁커리는 커리 가루·달걀·코코넛 밀크를 섞은 부드럽고 감칠맛 진한 소스에 튀긴 게(뿌)를 버무려 볶은 요리. 현재 중국계는 태국에서 둘째로 큰 민족 집단으로, 총인구의 10~12%를 차지한다. 뿌팟퐁 커리를 개발했다는 방콕의 해산물 전문점 ‘쏨분 시푸드(Somboon Seafood)’ 주인도 중국계 태국인이다.

외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도 태국 요리의 정체성을 유지한 바탕은 기록의 힘이다. 2023년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르두(Le Du)’ 오너 셰프 톤(Ton)은 “태국에서는 세상을 떠난 사람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모아 추억록(Memorial Book)을 만든다”고 했다. “고인이 평소 즐기거나 만들던 요리 레시피도 포함됩니다. 어떤 음식이 언제 개발됐는지, 과거 어느 왕이 즐겨 먹던 음식인지 찾을 수 있어요.”

재료를 앞세워 계절감을 살린 태국 레스토랑 '르두'.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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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음식의 원형을 되살려낼 수 있는 태국 요리 기록 문화의 힘은 ‘수코타이 방콕 호텔’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태국 최초 통일 왕국에서 이름을 딴 유서 깊은 호텔로, 대표 레스토랑인 ‘셀라돈(Celadon)’에서는 전통 태국 음식을 7코스로 낸다. 왕실부터 평민까지, 북부부터 남부까지 태국의 계층과 지역을 아우른다.

호텔 관계자는 “두 번째 코스인 새우 요리(Pra Tud Lom Jam Ta Ling Ping)는 라마 5세 재위 기간 왕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했다. “왕이 드시던 음식은 특별히 돌에 새겨서 기록으로 남깁니다. 셀라돈에서 내는 거의 모든 음식의 역사를 아는 이유지요.”

라이스 페이퍼에 새우를 올리고 돌돌 말아서 튀겼다. 씹으면 ‘바삭’하고 경쾌하게 부서지면서 신선한 새우의 향과 맛이 입안에 가득 찼다. 향신료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과일 ‘빌림비’를 잼으로 만들어 찍어 먹도록 곁들였다. 특유의 새콤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튀긴 라이스 페이퍼·새우와 절묘하게 어울렸다.

수코타이 방콕 호텔 태국 식당 ‘셀라돈’.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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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요리는 젊은 요리사들의 창조력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프랑스, 미국 등 해외에서 배우고 일하면서 세계 요리 트렌드를 몸으로 익히는 동시에 전통과 토종 식재료를 재해석해 알리는 데 적극적이다. 첨단 태국 요리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르두’는 태국어로 계절을 뜻한다. 오너 셰프 톤은 “제철 식재료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자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태국에서는 언제나 제철이 중요했어요. 하지만 양념과 조리가 과해지면서 식재료가 가려지는 음식이 많아졌죠. 저는 식재료를 앞세워 계절감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르두는 미쉐린 1스타를 받았고, 2023년에는 아시아 레스토랑 1위로 선정됐다.

◇프랑스·인도·중국·멕시코… 세계의 식탁

방콕은 자석처럼 세계적 요리사들을 잡아당긴다. 아르노 뒤낭 소티에(Sauthier)는 프랑스 최고 식당에서도 탐낼 재능과 이력을 지녔다. 열네 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조르주 블랑, 마크 베이라 등 프랑스 대표 셰프들 밑에서 경력을 쌓았다. 10여 년 전 세계적 호텔 그룹 만다린 오리엔탈 방콕 지점에 있는 ‘르 노르망디’ 총주방장으로 스카우트됐다. 소티에는 2017년 처음 발간된 미쉐린 가이드 방콕편에서 2스타를 따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소티에 셰프는 방콕에 거주하며 문화적 다양성에 눈을 떴고, 클래식한 프렌치뿐 아니라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음식으로 손님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졌다. 2022년 르 노르망디를 떠나 자신의 이름을 건 ‘메종 뒤낭(Maison Dunand)’을 열었고, 바로 다음 해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

메종 뒤낭은 소티에가 경험한 다양한 나라·문화의 음식을 접시에 담아내지만 기초는 탄탄한 클래식 프렌치다. 메인으로 나온 돼지고기 요리가 전형적이었다. 고향인 프랑스 사부아 옆 지역인 캉탈(Cantal)산 돼지고기를 가볍게 구워 냈고, 곁들인 소스는 동남아 꼬치 구이 사테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테 소스는 땅콩과 타마린드로 고소하면서 새콤한 맛을 내는데, 소티에는 새콤하고 고소한 맛은 유지하되 프랑스에 흔한 카시스(까치밥나무 열매)와 호두로 타마린드와 땅콩을 대체했다. 앞서 나온 대구 구이는 프랑스 고전 소스인 뵈르 블랑을 일본 다시와 섞어서 감칠맛이 폭발적이었다.

프랑스 레스토랑 '메종 뒤낭'.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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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골목에 숨은 ‘인디(Inddee)’는 인도를 통째로 맛보게 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코스 메뉴에 담았다. 카슈미르에서 채취한 모렐 버섯, 히말라야 산맥에서 키운 양고기, 뭄바이 머드크랩 등 최고의 산지에서 구한 식재료와 향신료로 인도 아대륙을 순서대로 맛보게 한다. 전통 케밥에 프랑스 푸아그라로 맛을 더하는 등 사친 푸자리(Poojary) 셰프만의 재해석도 흥미롭다.

푸자리 셰프는 인도를 대표하는 호텔 타지마할 주방을 18년간 책임졌고, 일식당 ‘와사비’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그는 “타지마할에서 인도 음식의 정통을 익혔고, 일식에서 재료의 중요성과 돋보이게 하는 법을 깨쳤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인도 향신료 풍미가 있으면서도 양고기·닭고기·생선 등 원재료의 식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지난해 오픈하자마자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

인도 아대륙을 통째로 맛보게 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코스에 담은 인도 음식점 '인디'.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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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시즌스 호텔 ‘유팅유안(Yu Ting Yuan)’은 전통적 맛을 세련되게 업데이트한 광둥식 중식을 낸다. 홍콩에서도 이만한 맛을 찾기 어려운 수준이다. 새끼 돼지를 껍질은 바삭하고 살은 촉촉하게 훈제한 중국식 바비큐와 베이징덕 등 구이류를 대표 메뉴로 내세우지만, 섬세한 딤섬부터 화려한 후식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았다. 쌀국수에 나온 피시볼(어묵)은 마시멜로보다 부드러우면서도 탱탱한 식감과 새우 페이스트로 맛을 낸 깊은 우마미(감칠맛)가 환상적이다. 망고 모양으로 파낸 접시에 담아내는 망고 디저트는 떠 먹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다.

광동식 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포시즌스 호텔 '유팅유안'.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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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레스토랑 '오호'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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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파코 루아노(Ruano)는 ‘라틴 아메리카 베스트 레스토랑 50’ 12위에 오른 알칼데(Alcalde)’의 오너셰프. 이미 대단한 성취를 이룬 셰프가 왜 방콕에 다시 식당을 열었을까. “멕시코 음식을 아시아에 알릴 수 있어 기뻐요. 도착했을 때부터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요. 멕시코시티처럼 미친듯한 복잡함과 활기가 넘쳐서(웃음).”

루아노 셰프가 운영하는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오호(Ojo)’는 더 스탠더드 방콕 76층에 있다. 방콕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식당으로, 발 아래 펼쳐지는 도시 전경이 장관이다. 다만 직접 구운 토르티야에 숯불 그릴에 구운 와규 등심, 아보카도로 만든 과카몰레, 겉을 슬쩍 태운 고추와 함께 싸서 입에 넣을 땐 멕시코로 순간이동하는 기분이다.

멕시코 식당답게 멕시코 국민 술 테킬라와 메스칼을 50가지 이상 보유했다. 테킬라와 메스칼은 모두 아가베를 증류해 만든다. 차이라면 메스칼은 어떤 아가베건 사용할 수 있지만, 테킬라는 블루웨버 품종의 아가베만 써야 한다. 테킬라·라임·소금·콜라를 섞은 ‘바탄가’, 맥주·라임·핫소스·비밀 소스를 혼합한 ‘미켈라다’ 등 멕시코 칵테일도 5가지 있다.

방콕 미식 기행: 4월 2~6일(3박 5일), 문의 (02)717-2510

[방콕=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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