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기계와 로봇에 밀려
일자리가 사라진다
서울 노량진에 있는 무인 곰탕집. 서빙 직원 없이 운영돼 그릇에 밥과 국물을 담고, 반찬을 놓아 나르는 모든 과정을 손님이 직접 해야 한다. 결제는 키오스크가 담당한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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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키오스크와 로봇이 자리 잡은 식당, 헬스장, 반찬 가게, 정육점 등에서 대면(對面) 서비스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 발전이 가져온 인력 시장의 변화는 가게 종업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2월, 미국 오픈AI 본사 앞에서는 “급속도로 발달하는 AI 기술이 고급 노동자의 일자리마저 대체하고, 통제할 수 없는 위협이 될 것”이라며 범용 인공지능(AGI) 개발을 중단하라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AI가 ‘불의 발견’처럼 세상을 바꿀 기술로 여겨지는 가운데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 ‘무인 사회(無人社會)’의 명암을 살핀다.
◇감정 없고 지치지 않는 ‘훌륭한 직원’
일본 도쿄 시부야의 레스토랑 ‘페퍼팔러’에서는 사람의 감정을 읽는 로봇 ‘페퍼’가 접객을 한다. 테이블에 1명씩(사실은 1대씩) 배정된 전담 서버는 식사하는 손님과 수다를 떨다가 노래 부르고 춤을 추기도 한다. 자리를 안내하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로봇 ‘서비’와 매장을 청소하는 ‘위즈 아이’도 엄연한 직원. 이 식당은 일본 소프트뱅크의 자회사 소프트로보틱스가 2019년 ‘로봇과 사람의 공존’을 내세워 문을 열었다. 식당 근무 경험을 쌓은 페퍼는 2023년 나이트클럽 ‘클럽 더 페퍼’에 취직했다. 오늘 밤에도 페퍼는 춤을 추며 공연할 예정이다.
일본 도쿄 시부야에 있는 ‘페퍼팔러’ 레스토랑에서는 테이블마다 로봇 종업원 1명씩이 배치된다.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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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사람을 대신하는 로봇이 흔해졌다. 서울 명동 헨나호텔 로비에서는 동그란 얼굴의 로봇이 서서 고객을 맞는다. 체크인은 고객이 키오스크로 직접 해야 하지만 물품이나 음식은 로봇이 객실로 배달해준다. 서울 성수동의 로봇 카페 라운지엑스는 바리스타 업무와 계산, 주문받은 음료를 내어주는 것까지 로봇이 혼자 처리한다. 이 지치지 않고 화도 내지 않는 직원 덕분에 24시간 영업한다. 2018년 최저임금이 1년 만에 16.4% 오른 뒤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24시간 영업으로 유명하던 기사 식당과 노포들이 영업시간을 대폭 단축한 것과는 정반대 풍경이다.
커피를 내리고 고객에게 전달하는 모든 과정을 로봇 팔이 담당하는 서울 성수동의 카페.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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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만 먹이면 군소리 없이 밤낮 거뜬히 일하는 기계와 로봇에 가게 운영을 맡기는 곳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소방청에 따르면 작년 3월 기준으로 국내 무인 점포는 6323곳이 운영되고 있다. 아이스크림 판매점(2011곳)이 가장 많았고 세탁소(1975곳), 스터디카페(967곳), 사진관(708곳), 밀키트 판매점(662곳) 순이었다.
◇노동 가치 경쟁… 탈락자는 ‘인간’
코로나 기간 실직한 가장들이 대거 나섰던 배달 기사도 이제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다.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최근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로봇 배달’에 나섰다.
이 변화에 대해 점주들은 “인건비 절감과 인력 관리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항변한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2024년 키오스크 같은 무인 주문기 평균 구입 비용은 스탠드형 대당 350만원, 테이블형은 130만원. 유지 관리 비용도 1만원 남짓(스탠드형 기준)으로 적은 반면, 이를 도입한 가게는 평균 1.2명의 종업원을 줄여 한 달에 138만원의 인건비를 아꼈다고 답했다.
이를 뒤집어 보면 기계가 가게당 1명 이상의 일자리를 줄이고, 누군가 가져갈 수 있는 수입 138만원을 꿀꺽 삼켰다는 이야기다. 국내에 1만대 이상 보급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빙 로봇도 저렴한 비용으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 “다리가 아프다”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다” “손님이 막말을 해서 못 해 먹겠다” 같은 불만도 휴식도 없다는 것이 또 다른 장점.
한 뷔페 식당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쌀국수 조리 로봇'. /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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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때문에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불만도 나온다. 지난 8일 외식 업계 최초로 면 조리 로봇과 접시 회수 로봇을 도입했다는 한 뷔페 식당에서는 고객들이 연신 테이블에 있는 벨을 누르고 있었다. 접시 회수 로봇을 호출하는 것. 2대뿐인 접시 회수 로봇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20개 이상 되는 테이블을 호출 순서대로 찾아가다 보니 오히려 시간이 더 걸렸다.
손님 강희경(65)씨는 “테이블 위에 로봇 말고 직원을 직접 부를 수 있는 벨은 없었다. 물티슈를 더 달라고 하기 위해 직접 직원을 찾아 나서야 했다”며 “가격은 예전보다 더 비싸졌는데 서비스는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줄어든 인력을 대체할 순 있어도, 아직 서비스 마인드와 융통성까지 장착한 로봇이 보급되진 못한 셈.
그래도 이득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뷔페 운영사는 로봇 도입 전인 2019년엔 직원 급여로 1236억9300여 만원을 썼지만 2023년엔 이를 320억원 이상 줄였다. 같은 기간 최저임금이 15.2%나 올랐는데, 인건비는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인간은 로봇과 AI 같은 기계와 더 치열하게 경쟁할 숙명이다. 로봇이 가게 직원의 손발을 대신하는 것을 넘어 창작자의 머리나 오랜 공부로 학습한 기술마저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드저니 같은 AI 이미지 서비스가 웹 디자이너의 자리를, 번역 애플리케이션 딥엘이 번역가의 자리를 대신한다. 녹내장 검진과 흉부 촬영 영상 판독도 의사 대신 AI가 맡는 세상이다.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인식하고 사용하는 ‘포노 사피엔스(smartphone+homo sapiens)’ 시대에 정치권에서는 ‘AI 대박론’이 부상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한국형 엔비디아’를 만들자고 하면서 “(지분의) 70%는 민간이, 30%는 국민 모두가 나누면 굳이 세금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시작된 대박의 꿈. 인간의 노동에 기반하지 않고, 기술이 일해 먹고사는 세상이 가능할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AI 시대, 대한민국 새로운 길을 찾다' AI강국위원회 주관 토론회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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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이 대표를 위원장으로 내세운 ‘AI 강국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미 로봇과 기계에 일자리를 뺏긴 인간은 당장 세금 내기도 힘든 상황이다. 대박의 꿈 앞에서는 “AI 기술의 발달이 저숙련 노동자의 실질임금과 노동 소득 비중을 감소시킨다”(디지털경제사회연구)같은 냉철한 지적이 외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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