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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7 (월)

러시아가 기회의 땅이 됐다, 거기서 '버틴' 한국 기업들은 이제?[경제적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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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경제적본능'은 CBS 유튜브 채널 경제연구실에 오후 6시마다 업로드되는 경제 전문 프로그램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우리의 경제적 본능을 인정하며 우리 경제를 둘러싼 조건을 탐구하고 실용적 지침까지 제안해 드립니다. 해당 녹취는 러우 종전 국면에서 냉엄한 국제정치의 실상, 지경학의 비정한 현실을 분석한 제성훈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 일부로, 전체 내용은 경제연구실 '경제적본능'에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방송 : 유튜브 CBS 경제연구실 '경제적본능'
■ 진행 : 윤지나 기자
■ 대담 :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

젤렌스키가 놓친 2번의 종전 기회

◇ 윤지나> 미국이 "단일 패권국 유지하는 데 돈 많이 드는 건 이제 안 하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된 이후 러우 종전이 빠르게 진행됐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요.

◇ 제성훈>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의 요구를 바로 들어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두 번 정도 놓쳤어요. 첫 번째는 2022년 2월 전쟁 발발 직전까지 민스크 협정을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전혀 표명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CBS 경제연구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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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동부의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내전이 벌어졌어요. 이를 수습하기 위해 체결된 게 민스크 협정인데, 두 개 주를 우크라이나 내에 두되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었어요. 이를 위해선 헌법과 법률을 개정해야 했는데, 우크라이나가 이행하지 않았죠. 러시아의 침공 명분 중 하나가 바로 이 협정 불이행과 친러 주민들에 대한 학살이었습니다. 만약 그때라도 이행 의사를 밝혔더라면 타협의 여지가 있었을 겁니다.

두 번째 기회는 전쟁 발발 한 달 후, 2022년 3월 말 이스탄불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종전 협의를 했던 때입니다. 당시 합의 내용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 강대국이 안전을 보장하고,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은 안전 보장의 대상에서 제외하며, 영토 문제는 향후 협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러시아가 반대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포함됐죠.

◇ 윤지나> 영토도 뺏기고 광물자원도 뺏기고 사실상 패전국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 되는 지금 종전 조건이랑 비교해보면 엄청 괜찮은 조건인데요.

◇ 제성훈> 그런데 합의 직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입장을 바꿉니다. 전쟁을 계속하기로 한 거죠.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였습니다. 존슨 총리는 푸틴과 어떤 합의도 하지 말라고 했고,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장담했죠. 미국도 바이든 시절이니까 여기에 깊이 개입했죠. 그러다 보니 젤렌스키 대통령 입장에서는 "너희가 싸우라고 했고, 도와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이러냐?"라고 할 수도 있는 거예요.

◇ 윤지나> 트럼프가 젤렌스키에게 "너에겐 카드가 없어"라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버티는 이유가 있었군요. "우리는 카드놀이를 하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지만, 실제로는 더 나빠진 상황에서 협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미국이 전략를 바꾸자 유럽은 충격, 대만·한국은요?

CBS 경제연구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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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나> 지금은 미국이 러시아 편에 서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바이든 행정부 때는 우크라이나를 그렇게 도와주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러시아와 협상하는 모양새가 됐어요. 유럽도 충격을 받았겠지만, 대만이 특히 놀랄 것 같아요.

◇ 제성훈> 대만은 확실히 미국의 태도를 주시할 겁니다. 미국이 경제적 이익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동맹국도 포기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확인했거든요.

◇ 윤지나> 그럼 한국은요? 주한미군은 중국 견제용으로 쓰일 테고, 미국이 "우리가 이렇게 많이 써주니까 우리 거 많이 사주든가" 이런 태도를 보일 수도 있겠어요.

◇ 제성훈> 그래서 단순히 한미 동맹만 바라볼 게 아니라 외교적인 옵션을 넓히는 전략이 필요해요.

◇ 윤지나> 당장 지금 우리 기업들에게 기회가 열린 것은 그동안 편 들었던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미국이랑 같은 편처럼 느껴지는 러시아예요.

CBS 경제연구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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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성훈> 러시아에서 버틴 기업들은 앞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푸틴 대통령이 "버틴 기업에는 이익을 주겠다"고 명확하게 밝혔어요. 반대로 서방 기업들은 러시아에 다시 진출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사태 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한국 기업들은 떠나지 않았어요. 이 때문에 러시아에서 "한국 기업들은 신뢰할 수 있다"는 이미지가 형성됐죠.

러시아의 지금 이제 전쟁 제재 상황에서 매출이 많이 줄고 이제 굉장히 어려워지긴 했지만 그 엘지나 이제 삼성 같은 경우 백색 가전 시장을 거의 장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버틴 겁니다. 우리는 97년에 외환위기가 있었고 러시아는 98년에 있었지만 한국 기업 떠나지 않았습니다.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을 때도 현대차를 비롯해서 거길 지켰습니다. 그렇게 지킴으로써 브랜드 이미지가 각인이 됐고 그다음에 이제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일본이나 유럽의 이런 이런 브랜드 같은 경우에는 쉽게 잘 떠나는데 한국 기업 특유의 뚝심이라고 생각해요. 소비재의 경우
네슬레나 다농이나 서방의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지만 다 떠난 자리에 우리 기업들은 되레 확장을 한 거죠. 금융 같은 경우에도 서방 은행들이 대부분 철수를 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은행 중에 한국계만 남은 거고요.

◇ 윤지나> 러시아 입장에서는 전쟁 동안 고립되면서 자국 기업 경쟁력을 키웠을 테니까 종전 됐다고 들어오는 게 더 달갑지 않을 거 같아요.

◇ 제성훈> 푸틴 대통령이 뭐라고 명령을 내렸냐, 지금 이 서방 기업들이 떠난 자리에 러시아 기업들이 어렵게 경쟁력을 갖추고 지금 있는데 다시 이 서방 기업들이 들어와서 이 기업들이 타격을 입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하라'고 했습니다.

◇ 윤지나> 버틴 한국 기업 입장에선 호재군요.

우크라가 핵 넘겨서 저리 됐잖아, 우리도 핵 갖자는 주장에 대해

◇ 윤지나> 우크라이나 사례를 보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게 현명했다"는 말이 많이 나와요. 그래서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 제성훈> 핵을 갖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적죠. 하지만 핵을 가져서 생기는 비용을 같이 얘기하면 답변이 달라질 겁니다. 일단 핵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고요. 둘째, 북한에 가해지는 모든 제재가 우리에게도 적용될 겁니다.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국민들이 핵무장에 찬성한다 해도, 그 대가를 충분히 알고 내리는 결정일지는 의문이에요.

CBS 경제연구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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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나> 결국 강대국들이 핵 확산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네요. 지금 핵을 갖고 있는 나라는 핵확산을 막겠다는 규범이 만들어지기 전 상황이고, 이 시점에서는 결코 용납 받지 못할 것이라는.

◇ 제성훈> 강대국들은 핵 확산을 막는 데 이미 합의한 상태고, 이를 위반하면 전방위적인 압박이 들어올 겁니다. 그래서 이런 주제가 논의될 때 외교는 한 때 지도자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지속적인 전략이 되어야 합니다. 국민들의 합의가 필요한 거죠.

지속가능한 외교는 권위주의 정권에서만 가능한가

CBS 경제연구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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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나>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게 외교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라고 하셨는데요. 그런데 그런 합의가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곳이 권위주의 정권이잖아요. 그래서 좀 화가 나기도 해요. 러시아나 중국을 보면 몇십 년에 걸쳐 일관된 정책을 유지하는데,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요동치는 느낌이랄까요?

◇ 제성훈> 러시아가 중국과의 관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도 사실 그 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미국은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달라지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죠. 그러면 약속의 신뢰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 윤지나> 중국은 100년 단위로 정책을 계획한다고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보면 장기적인 국가 전략을 수립하는 데는 권위주의 체제가 유리한 것 같기도 하고요.

◇ 제성훈> 하지만 권위주의 체제가 가진 리스크도 큽니다. 그런 체제는 정권이 무너졌을 때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요. 반면, 민주주의 국가들은 외교 정책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를 기반으로 하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합리적인 외교 정책은 특정 지도자나 엘리트 그룹이 아닌, 국민적 합의 속에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 윤지나> 트럼프는 동맹국이고 뭐고, 돈 되는 거래만 한다는 비즈니스적 사고방식과 결정들을 이어나가겠죠. 이걸 명심하고 우리도 대응에 나서야겠고요. 가치외교란 게 윤석열 정부의 키워드였는데.

◇ 제성훈> 가치 외교냐, 실용 외교냐의 문제를 떠나서, 결국 중요한 건 국익입니다. 국익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장기적인 외교적 방향성을 설정해야 합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외교적 원칙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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