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크리스티 놈 미 국토안보부 장관이 애리조나주 노갈레스의 마리포사 국경 검문소에서 노갈레스 국경 장벽을 따라 둘러보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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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갱단을 추방하겠다며 18세기에 제정된 ‘적성국 국민법’(Alien Enemies Act) 법률 권한을 발동하자, 미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만약 이민자들을 추방시키려 태운 비행기가 있다면 즉시 미국으로 회항할 것도 요구했다. ‘적성국 국민법’은 미국과 전쟁 중인 국가에서 온 사람들을 즉결 추방할 수 있도록 하는 준 전시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트렌 데 아라과’(TdA·Tren de Aragua) 카르텔에 소속된 사람들 중 미국에 거주하면서 합법적 시민권을 갖지 않은 모든 14살 이상 베네수엘라 국민을 체포·구금·추방할 것을 선포한다”는 행정 명령에 서명한 것을 백악관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국제 마약 밀매 집단인 트렌 데 아라과는 지난달 미국 국무부가 ‘외국 테러 단체’(FTO)로 지정한 갱단 8곳 중 하나다. 포고문은 트렌 데 아라과가 미국을 포함해 미주 지역의 민주주의 국가들을 불안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지원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비정규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방 등 권한의 발동 근거로 제시한 적성국 국민법은 1798년 제정된 것으로, 1812년 영국과의 전쟁, 제 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등 실제 전쟁 중에 딱 세 차례 발동됐다. 적성국 국민법에 따라 체포한 대상자는 이민 법원의 심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추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연방법원의 사전 제동에 막혔다. 대통령 행정 명령 공개 불과 몇시간 전, 연방법원의 제임스 E. 보아스버그 판사는 청문회에서 적성국 국민법 발동의 법적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이민자들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로 이송시키는 행위를 즉시 중단하라는 판결을 발표했다. 이 법원은 인권단체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이 트렌 데 아라과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5명의 베네수엘라 남성을 대신해 제기한 소송을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 명령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되자, 변호인단이 원고 등의 추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긴급 청문회를 사전 요청했던 것이다. 이날 긴급 청문회에서 판사는 “정부가 반박하지 않은 정보에 따르면 항공편이 활발하게 출발하고 있다”며 항공편을 회항시킬 것을 명령했다.
미국의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베네수엘라 추방자들을 태운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기 2대가 이날 텍사스 주의 한 공항에서 각각 엘살바도르·온두라스를 향해 이륙했으며, 보아스버그가 중단 명령을 내렸을 때 목적지 근처를 비행 중이었다”고 이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적성국 국민법을 이용해 이민자들을 추방하겠다고 공약해 왔다. 법학자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민자들의 망명 신청 권리를 거부해 추방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적성국 국민법’을 발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지 메이슨 대학교의 일리야 소민 법학 교수는 “외국의 침략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에 적성국 국민법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만약 트럼프 행정부의 법 해석이 유지된다면, 궁극적으로 행정부는 법원 심리 없이 14살 이상의 다른 이민자를 추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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