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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만곳 늘어나는 태양광, 3개월 동안 불 17번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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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피해는 작년 전체보다 더 커

지난 9일 오후 2시 7분쯤 전남 강진군 도암면의 한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불이 나 소방 당국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저장실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전남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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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폭탄을 이고 사는 거 같아요.”

최근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화재가 잇따르면서 인근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16일 소방청에 따르면, 올 들어 전국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는 총 17건(지난 8일 기준)이다. 발생 건수 자체는 작년(99건)보다 적지만 재산 피해 규모는 12억6218만원으로 이미 작년(7억1490만원) 한 해보다도 크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전국의 태양광 발전 시설은 총 14만6077곳(작년 말 기준)이다. 생산한 전기를 한전에 팔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매년 2만곳 이상씩 늘어나고 있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진경


전문가들은 화재 피해가 커지는 원인으로 ESS(에너지 저장 장치)를 꼽았다. ESS는 태양광 패널에서 생산한 전기를 모아두는 배터리다. 방선배 전기안전공사 전기재해연구센터장은 “최근 발생하는 태양광 발전 시설 화재는 대부분 ESS 화재라 한번 불이 붙으면 열 폭주(배터리 연쇄 폭발) 현상 때문에 손을 쓰기 어렵고 재산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는 일부에 불이 붙더라도 전체를 다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9일 전남 강진군 도암면의 한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난 화재도 ESS 저장실에서 시작됐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신고를 받고 24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는데 510㎡(약 154평) 크기의 ESS 저장실 안에 흰 연기가 가득했다”고 했다. 불은 순식간에 번져 철골조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저장실을 전부 태웠다. 그 안에 있던 배터리 3850여 개가 불타 100억원 이상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고 소방 당국은 추정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강진 사고 피해액까지 확정되면 올해 태양광 시설 화재로 인한 재산 피해는 역대 최대 규모가 된다”고 했다. 소방 당국은 당시 소방관 123명과 소방차 등 31대를 동원했지만 불길을 잡는 데 10시간 이상 걸렸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배터리 수천 개가 잇따라 폭발하는 열 폭주 현상으로 진압에 애를 먹었다”며 “배터리가 대부분 불탄 뒤에야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소방관 1명이 얼굴과 허벅지 등에 1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강진군은 주민들에게 ‘외부와 차단된 실내로 대피해달라’는 긴급 재난 문자를 보냈다. 화재가 산불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헬기 1기를 투입해 시설 주변에 계속 물을 퍼 날랐다.

도암면 주민들은 “뿌연 연기와 화염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며 “불이 민가와 산으로 번질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소방 당국은 배터리 과열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이 태양광 발전 시설은 17만7504㎡ 규모로 민간 사업자가 2017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발전 용량은 10MW로 ESS는 국내 업체 제품이라고 한다.

지난달 21일 오후 2시 53분쯤 충남 천안시 목천읍의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도 ESS에서 불이 나 5억5606만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당시에도 배터리 열 폭주 현상 때문에 불을 끄는 데 7시간가량 걸렸다. 이 시설은 민간 사업자가 25억원을 들여 2만4000㎡ 부지에 건설했다. 2018년부터 발전을 시작했다. ESS는 국내 업체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22년 ‘ESS 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했지만 그 이전에 지은 발전 시설은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정부는 배터리를 과도하게 충전하지 못하게 충전율을 제한하고 ESS 저장실에 격벽을 설치하도록 했다.

방선배 센터장은 “과거에 지은 시설들은 스프링클러 등 안전 설비를 갖추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ESS는 언제든 과충전으로 불이 날 수 있어 주기적으로 체크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강진, 천안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는 관리자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강진 화재의 경우 다른 지역에 있던 관리자가 ‘배터리 온도가 높다’고 처음 신고했다”며 “태양광 발전 시설 상당수가 보안 카메라나 온도계 등을 이용해 원격으로 ESS를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정우식 전 한국태양광산업협회 부회장은 “친환경 에너지 비율을 높이기 위해선 태양광 시설을 계속 보급해야 하는데 ESS의 안전성을 개선할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열 폭주

배터리가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현상. 전기차나 태양광 발전 시설의 ESS(에너지 저장장치)에 주로 쓰는 리튬이온배터리는 한 번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온도가 2000도까지 치솟고 연쇄적으로 폭발한다. 일반 소화기로는 진압이 어렵다. 전지를 통째로 이동식 수조 등에 빠뜨리는 방식으로 끈다.

[김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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