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호 국군 소위는 1951년 5월 강원도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붙잡혔다. 북한으로 끌려간 그는 국군 포로로서 43년간 강제 노역 등의 지옥살이를 견뎠다. 대한민국은 조 소위 구출은커녕 남한에 있는 그의 가족이 그의 탈출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으나 한중 관계 눈치로 방관했다. 언론에서 이를 보도하여 여론이 악화되자, 그제야 받아들였다.
386 대학가는 국군 포로를 멸시했고 대한민국은 ‘평소’ 국군 포로 송환에 소홀했다. 그래서 이 나라에는 진정한 좌파 정부도 우파 정부도 없는 것이다. 좌파든 우파든 정상 국가(正常國家)라면 마지막 단 하나의 국군 포로까지 구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두 혈통’을 칭송하는 저 나치보다 사악한 것들도 조창호 소위 덕에 저럴 수 있는 거다. 북한에서는 남한 드라마 봤다고 청소년들이 공개 처형 당하고 있다. 리인모 조창호 둘 다 역사 속에서 제 신념과 운명 때문에 고생이었지만, 내가 ‘빚을 진’ 이는 대한민국 육군 조창호 소위다. 인민군이며 지하당 조직원 리인모가 아니다. 계산은 정확히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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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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