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다양성 광풍]
백설공주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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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백설공주 패러디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2021년 6월 라틴계 미국 배우 레이철 지글러를 캐스팅한 이후로 4년간 구설수가 끊이질 않았던 디즈니 영화 ‘백설공주’가 19일 개봉했다. 구릿빛 피부의 백설공주에, 왕자는 온데간데없다. 왕자와의 로맨스 대신 사악한 여왕에 맞서 빼앗긴 왕국을 되찾는 성장 서사로 비틀었다. 뼈대만 남은 줄거리와 캐릭터의 의상을 제외하곤 원작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1937년작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디즈니는 물론 애니메이션 역사에서도 의미가 큰 작품이다. 세계 최초 총천연색으로 만들어진 극장용 만화 영화로, ‘디즈니 프린세스’ 전성시대를 열었다. 디즈니는 첫 번째 공주를 88년 만에 실사화하면서 제작비 약 2억7000만달러(약 3920억원)를 투입했으나, 개봉 전부터 원작 훼손 논란에 휘말렸다. 예고편부터 ‘싫어요’가 100만개 이상이 쏟아지는 등 반발이 커지자 영국 런던에서는 이례적으로 시사회를 취소하고 배우들의 언론 접촉도 최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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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을 의식해 개봉일까지 꼭꼭 숨겨온 백설공주가 베일을 벗었다. “눈처럼 하얀 피부”라는 원작의 설정은 “거친 눈보라를 뚫고 태어난 아이”로 바뀌었다. 주연인 지글러는 피부색은 차치하더라도 짙은 눈썹, 각진 얼굴, 이를 악물고 아래턱을 내밀며 연기하는 습관 때문에 초반부터 억세고 강인해 보인다. 원작의 동글동글하고 해맑은 백설공주와는 딴판이다. 지글러는 “가장 중요한 건 백설공주가 의지 있고 강인한 인물로 보여야 한다는 점이었다”고 했다. 그게 목표였다면, 성공이다. 공주가 물에 빠졌다가 헤엄쳐 나오는 장면이나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에선 정글을 누비는 타잔까지 떠오른다.
원작에서 백설공주는 우물가에서 “진실한 사랑을 찾고 싶다”고 소원을 빈다. 2025년 공주의 소원은 담대하고 용감해져서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는 것. 왕자는 사라졌고, 여왕에게 맞서는 도적단의 대장과 사랑에 빠진다. 백설공주가 지도자로 성장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각본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재해석은 필요하지만, 모든 공주가 진취적이고 용감한 영웅이 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주연인 지글러는 과거 인터뷰에서 원작에 대해 “시대에 뒤떨어졌다. 자신을 스토킹하는 왕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고 해 원작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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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서사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마법 거울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묻는 여왕의 질문에 “백설공주는 마음속 진정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며 동문서답하고, 여왕은 “내면의 아름다움 따윈 쓸모없다”고 노래하면서 백설공주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영화 ‘원더우먼’으로 잘 알려진 배우 갈 가도트만큼은 사악한 여왕 역을 맡아 원작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길이 6m 넘는 망토에 400여 개의 보석을 휘감고 나와 위험하지만 매혹적인 악역으로 변신했다.
‘500일의 썸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등을 만든 마크 웹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숲속의 사랑스러운 동물들과 역동적인 연출로 눈이 즐거운 장면도 더러 있다. 원작 애니메이션을 아예 모르는 아이들이라면 영화를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알라딘’ ‘라라랜드’ 등에 참여한 저스틴 폴과 벤지 파섹 작곡가 듀오가 음악을 맡아 재치 있는 가사와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준다. 레이철 지글러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3만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스타. 깨끗하고 청아한 음색과 시원시원한 가창력으로 노래만큼은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하지만 대부분 새로 작곡한 노래로, 원작에서 가장 사랑받은 OST였던 ‘Someday my prince will come(언젠가 나의 왕자님이 오실 거야)’는 들을 수 없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강조하며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혐오 표현을 바로잡으려는 사회운동을 뜻한다.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려는 취지로 시작됐으나, 과도하게 PC를 강조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이 커졌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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