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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 (화)

돈 떼일 염려 없는 대출, 이자 장사…땅 짚고 헤엄친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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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한국경제 발목잡는 부동산금융(下)

[편집자주] 한국경제 역동성이 떨어지고 잠재성장률이 계속 하락하게 만든 '숨은' 주범으로 부동산금융이 지목된다. 4000조원이 넘는 돈이 부동산으로 쏠리면서 혁신기업은 성장의 자금줄이 말랐고, 가계부채로 시달리는 가계는 소비여력이 바닥이다. 나랏돈으로 정부가 '묻지마' 보증을 남발한 것도 부동산금융을 키운 요인이다. 부동산금융의 부작용과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정부 보증으로 키운 '좀비' 중소기업…대출 대신 투자 늘려야


(서울=뉴스1) =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티몬·위메프 정산지연 피해업체에 대한 유동성지원 프로그램 접수 첫 날인 9일 오전 서울 중구 신용보증기금 남대문 지점을 방문, 상담직원을 격려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2024.8.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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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지역신용보증재단 등 정부 보증기관으로부터 80~90%의 보증을 받아 손쉽게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은행들이 엄격한 심사 대신 보증기관에 기대 '묻지마 대출'을 하면서 좀비 중소기업만 양산하고 있다. 혁신성·성장성이 있는 중소기업을 선별해 에쿼티투자(지분 투자)로 공적인 재원을 활용하고 은행도 여기에 맞춰 지분투자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27일 신보, 기보, 지신보 등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기준 신용보증기금의 일반보증액·유동화회사보증·소상공인보증 합계는 79조5000억원에 달했다. 기술보증기금 보증액은 32조 6000억원, 전국 17개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 잔액은 89조9000억원으로 파악됐다. 이중 신보가 지난해 은행 대출시 보증한 일반 보증액은 21만7000여개 기업, 총 62조5000억원에 달한다.

중소기업들은 보증기관의 보증서를 발급 받아 은행에 대출을 받는다. 은행은 대출액의 대부분인 80~90%에 대해서 '돈 떼일 염려'가 없기 때문에 엄격한 심사보다는 '묻지마 대출'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소기업들은 혁신성이나 성장성 미래 가능성보다는 과거 실적 등에 기대 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말 은행, 상호금융, 저축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중 보증부 대출의 96.5%는 은행에서 취급됐다.

보증기관의 보증서에 기댄 중소기업 대출은 장기적으론는 보증기관에 부담이 될 뿐 아니라 혁신적인 중소기업엔 자금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공적보증의 재원이 한정적인 만큼 현재의 보증부 대출 방식에서 벗어나 혁신기업에 대한 지분투자로 정부 지원과 은행의 자금 지원 방식이 180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KDB산업은행이 검토중이 50조원 규모의 첨단산업전략산업기금이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다. 기금은 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인공지능(AI)·로봇 등 첨단전략산업 분야 업체에 지분 투자 위주로 자금을 지원한다. 공적인 기금이 후순위 보강의 투자를 하면 국제 금융규제상(바젤) 은행이 해당 기업에 지분 투자를 해도 위험가중치가 종전 400%에서 100%로 4분의1로 줄어든다. 보증부 대출 위주의 중소기업 자금 지원이 지분투자 방식으로 대전환할 수 있는 모델이 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도 취임 이후 줄곧 부채를 자본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기업 분야에선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산업 분야에선 정부 지분 투자 등 정책이 도입됐다. 정부가 보증서 발급 위주의 중소기업 지원이 아닌 지분투자 방식으로 공공재원을 활용하면 민간 금융회사의 보증부 대출 위주의 손쉬운 영업도 바뀔수 있다는 지적이다.


가계부채 불안 키운 정책성 대출… 덕분에 땅 짚고 헤엄친 은행


머니투데이

2025년 1·2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세부 현황/그래픽=이지혜


최근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의 약 80%가 정책성 대출이었다. 사실상 정부가 나랏돈으로 가계부채를 늘리는 꼴이다. 소득 2억원 부부도 정책성 대출을 받아 갈 수 있어 서민을 돕자는 당초 취지도 무색해졌다. 대출 심사 능력이 뛰어난 은행은 혁신적인 기업을 발굴할 생각보다는 손쉬운 정책성 대출로 이자 장사에 몰두한다. 서민·중저신용자 대상으로 정책성 대출 범위를 좁히고 정책성 대출 취급 금융기관을 서민이 주요 고객층인 2금융권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27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주담대 증가액은 3조5000억원이다. 이 중에서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성 대출로 인한 증가액은 2조9000억원이다. 전체 주담대 증가액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디딤돌은 주택 구입, 버팀목은 전세자금을 위한 정책 대출 상품이다. 금리가 시중은행 상품보다 낮아 대출 수요를 빨아들였다. 올해도 약 55조원의 정책성 대출이 공급될 예정이다.

대출 요건이 너무 완화돼 무주택 서민을 돕자는 정책성 대출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저출생 극복 등 다른 정책 목표가 개입되면서 정책성 대출의 자격 요건이 지속적으로 완화됐다. 대표적으로 '신생아 특례' 디딤돌 대출은 연 소득 2억원인 맞벌이 부부도 2년 이내 자녀를 출산했다면 최고 5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정부는 연소득 요건을 2억5000만원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정책성 대출을 취급하는 은행은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다. 정책성 대출은 조건만 맞으면 거의 자동으로 대출이 진행된다. 디딤돌 대출이나 보금자리론은 은행이 별도로 심사하지도 않는다. 디딤돌 대출을 은행 재원으로 취급하면 일반 주담대와의 금리 차이를 정부가 0.99%P(포인트)까지 이차보전을 해준다. 0.99%P를 넘어서지 않으면 은행으로선 손해 보지 않는 장사다. 이에 은행들은 자체 상품보다 정책성 대출을 더 많이 취급하게 됐다. 정부가 주도해 금융시장의 상품 구조를 왜곡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대출심사 능력이 뛰어난 은행은 정책성 대출 취급을 제한하고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2금융권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책성 대출은 수탁 금융기관이 까다롭게 심사하지도 않아서 2금융권의 심사 역량 부족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서민과 중저신용자를 돕자는 2금융권 설립 취지와 맞기도 하다.

반면 금융업권에서 대출 심사 역량이 가장 뛰어난 은행권은 담보와 보증 위주의 대출영업에서 벗어나 혁신기업이나 첨단기업 위주로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하자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 등도 충분히 정책성 대출을 취급할 수 있고, 큰돈이 되진 않겠지만 2금융권 이미지 개선이나 신뢰성 회복 등 부수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다만 지점 수가 은행보단 부족해 방문 신청 등에선 소비자 편의성에 한계가 있을 순 있다"고 말했다.


이창용·김병환·이복현, 작심하고 부동산금융 '끝장토론'


(서울=뉴스1) =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복현 금감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김병환 금융위원장. (기획재정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2.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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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제·금융을 이끄는 수장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다음달 3일 '끝장토론'에 나선다. 주제는 4100조원으로 불어난 '부동산금융'이다. 한은 총재와 금융당국 수장 두명이 나란히 공개 토론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부동산금융 쏠림문제가 시급한 현안이라는 방증이다.

'부동산 신용집중: 현황, 문제점 그리고 개선방안'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정책 컨퍼런스는 한국은행과 금융연구원이 주최한다. 한은과 별도로 금융당국도 부동산금융 문제를 연초 업무계획에 넣고 주요 이슈로 고민해 왔다. 기관간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번 컨퍼런스가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현재 부동산금융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다. 부동산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익스포져에 대해서도 기관마다 추정치가 다르다. 어디까지를 부동산금융으로 볼 것인지, 범위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이 이날 금융안정 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부동산금융 규모는 '폭탄급'에 가깝다. 부동산 관련 대출이 2681조원으로 금융당국의 추정치인 2300조원과 유사하지만 전세보증이나 리츠, 부동산펀드 등 금융투자상품까지 더하면 익스포져가 4000조원을 넘어선다.

이 총재, 김 위원장, 이 원장이 머리를 맞대고 부동산금융 대담을 벌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금융회사 자금이 오로지 부동산으로 쏠리면서 정작 신성장 산업과 혁신기업으로 자금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고 있어서다. 반대로 주담대에 발목 잡힌 가계는 다달이 이자에 허덕이며 소비를 늘릴 형편이 못된다.

경제성장이 멈추면 성장률의 2~3%포인트(P) 수준으로 대출이자를 받아 이익을 내고 있는 금융회사도 결국은 기반이 흔들릴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다음달 3일 금융당국 수장 3인이 내놓을 진단과 해법에 관심이 쏠린다.

이창명 기자 charming@mt.co.kr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권화순 기자 fireso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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