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30년 만에 비밀해제한 1993~1994년 외교문서 가운데 한-미 원자력공동상설위원회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1981년부터 미국 에너지부 민감국가로 지정되어 있었고 그 목적이 핵관련 민감기술 보호라는 것을 정리한 부분. 외교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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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90년대 한국이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명단에 올라있던 데 대해 한국 외교부는 이것이 “핵관련 기술, 민감기술과 시설을 보호하려는 것”임을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28일 비밀해제된 외교문서에서 확인됐다.
외교부가 이날 공개한 외교문서에는 한국 정부와 미국 에너지부가 1993~1994년 한·미 원자력공동상설위원회를 열어 협력 협정 체결을 협상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협상 과정에서 외교부 조약국장이 1993년 11월 작성한 관련 문서에는 ‘미국 에너지부 내부 규정’이 정리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중점관리국가’(sensitive country·민감국가) 지정의 목적은 미 에너지부 산하 연구시설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로부터 핵관련 기술, 민감기술과 시설 등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또 미국 에너지부와 산하 연구시설이 “핵무기 생산기술, 원자력 관련기술, 군사용 컴퓨터 개발기술, 첨단기술 등”을 민감기술(sensitive subject)로, “특별 핵물질 또는 비밀물질 관련 시설”을 민감시설(sensitive facility)로 분류하고 있다며 “특히 남북한을 포함한 50개국가는 중점관리 대상국가(sensitive country)로 구분되어 이들 국가의 국민이 동 시설을 방문할 경우에는 이에 따른 엄격한 절차 규정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방문시 일정 기한내의 신청서 제출, 개인신상검사 특별보안 계획 실시 등 여러면에서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1993~1994년 당시 민감국가는 한국, 북한, 중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인도, 이란, 이라크,이스라엘, 파키스탄, 러시아 등 50개 국가였다. 또 “한국은 1981년 1월5일 동(민감국가) 규정 최초 시행 때부터 포함되었다”며 “50개국 중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모나코 오만 등 12개국은 원자력 이외의 분야에서는 비민감국가로 취급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는 1993년 12월 제1차 한미 과학기술협력 공동위원회에서 한국을 민감국가 목록에서 삭제해달라고 미국에 요청한다는 계획 아래 대응 논리를 준비했다. 외교부 내부 검토 자료에도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70년대 한국의 핵정책에 대한 (미국의) 불신과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되어 있고, 대책도 한국의 핵무장 포기 의지를 강조한다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번 외교문서 내용은 30년 전 한국이 민감국가로 지정되었던 것이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핵 개발 시도 이후 미국이 한국의 핵 문제를 계속 우려한 것과 관련이 있었음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한국이 올해 1월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로 지정된 뒤 외교부가 “미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며 국내 핵무장론과 관계가 없다고 설명한 것과는 달리, 30년 전부터 민감국가 지정 목적이 미 에너지부 산하 연구시설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로부터 핵관련 기술 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30년 전에도 한국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을 위한 선언 등을 했다는 점’ 등을 들어 미국에 핵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확히 한 끝에 1994년 7월 민감국가 명단에서 빠질 수 있었다.
또한 외교부가 “한국이 민감국가 명단에 있어도 한미간 기술 협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미국으로부터 확인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30년 전에도 민감국가로 지정되면 “엄격한 절차 규정을 적용받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에너지부. 워싱턴/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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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기밀해제된 30년 전 외교문서에서도 북한 핵 개발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한국의 핵 개발 가능성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관심과 우려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윈스턴 로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993년 12월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례 만찬회 연설을 하면서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 안전 협정상의 의무 이행 거부는 한반도 평화와 안보는 물론 전세계의 비확산 체제에 큰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1993년 11월23일 한·미 정상회담 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철저하고도 광범위한’(thorough and broad) 노력에 합의했는데 철저함이란 핵 확산 위협이 완전히 해결되고 한국 및 북한의 핵활동(nuclear programs)에 있어 투명성이 보장되는 의미”라고 했다. 미국이 북한 핵 활동뿐 아니라 한국의 핵 프로그램도 주시했음을 알 수 있다.
외교부는 이날 이런 내용이 담긴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 총 2506권 38만여 쪽을 일반에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볼 수 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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