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애 디자이너 mnbg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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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북동부권 5개 시·군으로 확산하며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낳은 산불이 발화 149시간 만에 꺼졌습니다.
28일 산림 당국과 각 지자체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영덕, 영양을 시작으로 피해 5개 시·군의 산불 주불이 잇따라 진화됐는데요. 다행히 전날 오후부터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5개 시·군에 1∼3㎜가량 비가 내린 데다가, 산림 당국이 헬기와 인력, 장비를 대거 동원해 총력전을 펼친 덕분에 진화 작업 속도가 가팔라졌습니다. 전날 오후 5시 기준 63%에 머물렀던 진화율은 이날 낮 12시 기준 94%까지 오르기도 했죠.
일주일 간 이어진 경북 산불에 따른 산불영향구역은 이날 4만5157㏊로 집계돼 역대 최대 산불 피해를 냈습니다. 다만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피해 범위는 더 늘어날 수 있는데요. 지칠 대로 지친 소방대원과 산불진화대원들도 우려를 자아냅니다. 이재민 대책, 산림 및 문화재 복구 등 남은 과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에 국민도 나섰습니다. 비가 쏟아지길 바라며 기우제를 지내는가 하면 일선 소방서에 후원 물품을 전달하고, 성금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데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계도 한데 뜻을 모아 눈길을 끕니다.
(출처=갤럭시코퍼레이션·빅히트뮤직 제공, 아이브·라이즈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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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을 끊은 건 방송인 이혜영과 유재석이었습니다. 이혜영은 "산불 피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께 작게나마 힘이 되길 바란다. 많은 분이 함께 마음을 보태주셨으면 좋겠다"며 2000만 원을 기부했고, 유재석은 5000만 원을 전했습니다. 두 사람은 수년간 꾸준한 기부를 실천하며 선한 영향력을 전해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죠.
이후 배우 이동욱, 김지원, 박보영, 김소연·이상우 부부, 가수 겸 배우 차은우, 그룹 르세라핌, 트와이스 멤버 지효, 나연, 다현, 있지 예지 각각 5000만 원을 기부했으며, 배우 천우희는 4000만 원, 그룹 오마이걸 멤버 아린과 배우 김세정·김성철은 각 2000만 원, 가수 겸 방송인 이미주와 그룹 제로베이스원 멤버 김지웅은 각 1000만 원을 전달했습니다. 배우 박해수는 소방관 지원에 써달라며 3000만 원을, 방송인 이영자는 산불 피해 이재민들의 긴급한 생활용품 마련을 위해 3000만 원을 각각 기부했죠.
가수 아이유는 산불 피해 지원과 재난 현장에서 헌신하는 소방관들의 처우 및 인식 개선을 위해 각각 1억 원씩, 총 2억 원을 기부했는데요. 울산 출신 가수 이찬원, 안동 출신 가수 영탁도 각각 1억 원의 성금을 쾌척했습니다.
그룹 아이브는 산불 피해 지원과 소방관 처우·인식 개선을 위해 총 2억 원을 기부했고요. 배우 변우석, 차은우, NCT 멤버 재현, 마크, 도영, 에스파 카리나, 슈퍼주니어 은혁이 각각 1억 원을 쾌척했습니다. 블랙핑크 제니와 지수는 각각 1억 원, 1억5000만 원을 전달했고요.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 슈가, RM 역시 1억 원을 기부하면서 온기를 자아냈죠. BTS 정국은 이재민을 위해 5억 원을, 소방관을 위해 5억 원을 기부하면서 총 10억 원을 쾌척해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세븐틴도 10억 원을 전했습니다.
기획사들도 선행에 동참하면서 K팝 팬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경남·경북 지역 대형 산불로 피해를 본 지역주민과 아동 가정을 돕기 위해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에 5억 원을 기부했고요. SM엔터테인먼트도 피해 복구를 위해 성금 3억 원을 기부했다고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가 밝혔죠.
지난해 12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 시민들이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참석했다. (출처=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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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스타, 그중에서도 아이돌의 기부 릴레이가 눈길을 끄는 건 이들의 팬덤 덕분입니다.
팬덤은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직접 행사하기도 합니다. 내 돌(아이돌)이 기부했다는 훈훈한 소식이 전해지면 나도 따라서 기부하거나, 오히려 스타보다 먼저 앞장서서 기부를 통해 선행을 펼치고요. 새로운 문화 현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2010년대 콘서트장 앞에 즐비하던 쌀 화환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인기를 끌었죠. 숲을 조성하거나 식수가 필요한 해외 낙후 지역에 우물을 기증한 사례도 숱했습니다.
여기에 지난해부턴 '내 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겠다'며 거리로 나섰습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촉구 집회에서는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사용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죠. 글로벌 유통 시장에서 이미 강력한 소비층으로 입지를 굳힌 아이돌 팬덤이 거리와 광장을 가득 채운 모습은 외신에서도 다루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이 같은 흐름에 편승해 응원봉을 들고 팬들과 함께 집회 인증 사진을 찍은 일부 정치인들의 모습이 전해지기도 했죠.
이에 이번 산불 사태에서도 먼저 기부한 연예인을 따라 팬덤도 기부하거나, 팬들의 기부 소식이 전해진 뒤 연예인도 성금을 전달하는 등 선한 영향력의 순환 구조가 나타났습니다.
가수와 팬덤의 선순환은 BTS와 팬덤 아미의 미담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BTS는 2020년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현 빅히트뮤직)와 함께 흑인 인권운동 캠페인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측에 100만 달러(약 12억여 원)를 기부한 바 있는데요. 이 소식이 알려진 뒤 전 세계 아미는 '우리도 100만 달러를 맞추자'며 힘을 보탰습니다. 단 하루 만에 거금이 모여 캠페인 주최 측에 전달됐죠.
K팝 팬들은 같은 해인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후보의 선거 유세 현장에서 '노쇼' 캠페인을 벌이면서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도 부각됐는데요. 당시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K팝 팬덤을 향해 "정의를 위한 싸움에 기여해 줘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샤라웃'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덕질'(팬 활동)이 공연장을 찾아가거나 격려 메시지를 보내는 일방적인 소비 행위에 그쳤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가수와 팬은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등 선한 영향력을 서로 주고받는 존재가 됐는데요. 이 같은 사례로 팬덤의 선한 영향력이 조명됨에 따라 '빠순이'라는 멸칭도 과거의 오명으로 남게 됐습니다.
걸그룹 뉴진스의 하니가 지난해 10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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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마음은 패션 트렌드로도 번진 모양샙니다. 대중 앞에 서는 아이돌의 특성상 모자부터 신발까지 화제를 빚는데요. 이중 '착한 아이템'은 팬들의 감탄뿐 아니라 연대감을 자아냅니다.
그룹 뉴진스 하니는 여러 공식 석상에서 빨간색 팔찌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팔찌는 아동 권리 실현을 위해 활동하는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더칠드런의 '세이브원' 긴급구호팔찌입니다. 긴급구호팔찌는 세이브더칠드런에 정기 후원을 하면 받을 수 있는데요. 후원금은 긴급구호 현장에서의 구호 키트를 공급하는 데 사용됩니다.
뉴진스 민지는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월드비전의 팔찌를 찼습니다. 월드비전은 한국전쟁으로 고통받는 고아를 돕고자 설립돼 현재 약 100개국에서 전쟁이나 취약한 지역의 아이를 위해 국제구호개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요. 이곳의 하루 팔찌는 실제 구호 현장에서 사용하는 난민 등록 팔찌를 모티브로 만들었고, 역시 캠페인 정기 후원 신청 시 받을 수 있죠.
제로베이스원 규빈은 사회적 소외와 빈곤에 노출된 여성 노인에게 일자리와 행복을 제공하고자 출발한 사회적 기업 마르코로호의 팔찌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는데요. 할머니들이 직접 만든 수제 팔찌인 만큼 시니어 일자리 창출에 조력하며, 제품 판매로 모인 수익금의 20% 이상을 할머니들의 일상과 복지를 위해 사용한다고 합니다.
에이티즈 홍중은 기부뿐 아니라 호주 비영리단체 YGAP가 기획한 아동학대 근절 캠페인인 '폴리시드 맨 캠페인'에 참여하는가 하면, 유니셰프의 프로미스 링, 세이브더칠드런의 후드티, 불가리의 세이브더칠드런 링 등을 착용하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들이 기부 팔찌나 캠페인 아이템을 착용하는 건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가치소비를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환경보호, 아동·노인 지원, 인권 운동 등에 대해 관심과 지지를 말이 아닌 비주얼로 표현하면서 팬들의 관심이나 동참을 유도할 수 있는데요. 팬들도 내 돌과 같은 아이템을 착용하면서 '같이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연대감까지 얻을 수 있죠.
감동만 자아낼 줄 알았던 아이돌들의 선행 릴레이. 황당한 부작용(?)도 포착됐습니다. 기부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연예인들에 대해 "너는 왜 기부를 안 하냐"는 희한한 비난이 나온 건데요. 심지어는 이들 명단을 정리해 비난을 유도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죠.
일부 네티즌들이 간과한 사실은 조용한 선행이 숱하다는 겁니다. 이번 산불 사태에 소속사나 구호 단체를 통해 기부 소식을 일부러 전하지 않은 아이돌 멤버, 배우, 스포츠 스타도 있습니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온정을 전하거나, 팬들에게만 살짝 귀띔하면서 조용한 선행에 나섰는데요. 각자의 미덕에 따라 기부 사실을 공개하거나 비밀에 부치는 거죠. 기부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예인을 비난하기 전에, 슬픔에 공감하고 증오를 차단하는 성숙한 태도도 필요해 보입니다.
[이투데이/장유진 기자 (yxxj@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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