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인권 분야 개입 전략 변화
지난 4월 4일 엘살바도르 테콜루카에 소재한 초대형 교도소인 '세코트(CECOT·테러범구금센터)' 앞에서 한 군인이 경비를 서고 있다. 테콜루카=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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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부가 인권보고서에서 엘살바도르·이스라엘·러시아를 향한 비판을 대폭 축소할 것으로 전해졌다. 매년 발간되는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는 미국 국내·외를 불문하고 여러 재판이나 정책 결정에서 각국의 인권 상황을 점검하는 주요 자료로 사용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6일(현지시간) 미 국무부가 올해 발간 예정인 '2024년도 인권보고서' 초안을 확인한 결과 엘살바도르와 이스라엘, 러시아에 대한 비판이 대폭 삭제됐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지난해 보고서까지만 해도 담겨있던 세 나라의 성소수자 권리·탄압에 관한 모든 내용이 삭제됐고, 정부 차원의 다른 인권 침해 사실에 관한 서술도 완화됐다. 러시아는 지난해 성소수자 단체를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해 금지하고 전방위적인 단속과 체포를 벌였지만, 이번 국무부 인권보고서에는 관련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다.
미국이 자국 내 이민자를 추방하기 위한 '해외 감옥'으로 사용하고 있는 엘살바도르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보고서에 "교도소 환경이 가혹하고 생명을 위협한다"며 "중대한 인권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담겼다. 그러나 올해 발간 예정인 보고서 초안에서는 이와 같은 비판이 사라지고 "중대한 인권 침해에 대한 신뢰할만한 보고가 없었다"는 내용이 대신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이스라엘과 관련한 내용도 크게 줄었다. 우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감시하고 이동을 제한하기 위해 실험적 안면 인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기존 내용이 빠졌다. 비리 혐의로 재판을 이어가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사법 개혁'으로 법원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도 사라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00페이지 이상이었던 이스라엘 보고서 분량은 올해 초안에서는 25페이지까지 감소했다고 WP는 전했다.
WP는 미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전에 2024년 인권 보고서의 내용 대부분이 완성된 상태였으나, 트럼프 행정부 들어 수정이 거듭되며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7월 외교관들에게 "명확한 미국의 외교 정책적 이익이 없다면 선거에 대한 언급을 하지 마라"고 지시하는 등 민주주의·인권 분야에서 타국에 대한 개입을 점차 줄여가고 있는데, 이번 인권보고서 수정도 이러한 전략 변화의 일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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