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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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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출·각본·촬영·편집·음향 다 ‘노영석’ 이름뿐···‘낮술’ 감독은 왜 영화를 ‘1인 제작’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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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인 제작한 노영석 감독을 만나다

    경향신문

    개봉을 앞둔 영화 <THE 자연인> 연출한 노영석 감독이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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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셋. 1000여만 원의 제작비로 만든 <낮술>(2009)이 유수 영화제 30곳의 초청을 받으며 ‘독립영화계 기대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서른여덟. 2억8000만원 규모의 스릴러 영화 <조난자들>(2014)을 선보였다. 이후 “조금 더 큰 영화”를 해보고 싶어 시나리오를 썼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각본은 제작 제안을 받지 못했다.

    “그러고 나니 세월이 확 간 걸 느꼈습니다. 무엇이든 만들어서 ‘생존 신고’를 해야겠구나. 지금 찍지 못하면 영화를 앞으로 만들 수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20일 개봉하는 노영석 감독(49)의 11년 만 신작 <THE 자연인>은 “내가 아직 여기, 영화계에 있다”는 감독의 선언과도 같은 작품이다. 노 감독은 시나리오부터 촬영, 음악, 녹음, 편집, 컴퓨터 그래픽(CG)까지 ‘1인 제작’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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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자연인> 포스터. 영화를 1인 제작한 노영석 감독이 이 포스터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스톤워크 제공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지난 13일 만난 노 감독은 “(공백기에 준비하던) 영화가 좌절되며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었다. 허송세월한 기분도 들었다”며 “아무도 안 해 본 것을 해보면 어떨까. 스태프의 역할까지 내가 다 해보자 생각하니 기운이 났다. 그렇게 영화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산속 등 비일상적 공간에서 만난 ‘희한한 사람’ 때문에 자꾸만 상황이 꼬이며, 어디로 흘러갈지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이야기. 노 감독이 탁월함을 보여왔던 분야다. <낮술>이 주인공이 처하는 난처한 상황이 자아내는 웃음에, <조난자들>이 고립된 상황에서 수상한 사람과의 만남이 주는 공포에 집중했다면 <THE 자연인>은 두 감정 모두를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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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자연인>에서 귀신을 쫓는 유튜버 인공(왼쪽·변재신)이 친구 병진(오른쪽·정용훈)의 어깨를 한 손으로 잡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스톤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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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귀신을 쫓는 유튜버 ‘귀식커’ 인공(변재신)과 그의 친구 병진(정용훈)이 귀신을 본다는 자연인(신운섭)을 찾아 외딴 산골짜기로 향하며 시작된다. 이 자연인은 사람 좋아 보이다가도 묘하게 수상쩍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 살면서 미디어 속 ‘자연인스러움’에 지나치게 빠삭하다. 정색할 때엔 누구 하나 죽일 것 같은 표정을 하기도 한다.

    자연인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인공은 이만 촬영을 접고 집에 갔으면 하지만, 병진은 그런 친구를 못마땅해하며 말린다. 영화는 코믹한 대화 사이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하며 가늠이 되지 않는 결말로 내달린다.

    노 감독은 ‘자연인’이라는 말을 대명사로 만든 MBN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던 중 ‘고립된 산속에서 자연인이 정색하면 꽤 무섭지 않을까’ ‘자연인이 사실 자기 정체를 조작한 것이라면?’ 하는 상상으로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2019년 여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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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자연인>의 자연인(신운섭)이 유튜버 인공(변재신)과 병진(정용훈)에게 정체불명의 ‘소금잼’을 권하고 있다. 스톤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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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 제작을 염두에 두고 집필하긴 했지만, 제작사들에 시나리오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독특한 상상이 가득한 글에 돌아온 것은 혹평이었다. 노 감독은 “시나리오에 ‘이게 말이 되냐’며 ‘10점 만점에 2점’이라고 평한 곳도 있었다. 오히려 ‘아, 진짜 나 혼자 하면 되겠다’ 싶어 오히려 신이 났다. 분노 에너지가 제일 좋은 원동력 아니겠냐”고 했다.

    자연인으로 출연한 배우 신운섭은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얘는 뭐 이런 생각을 해?’ 싶었다고 한다. <낮술>에도 출연했던 오랜 동료가 그렇게 말할 만큼 <THE 자연인>은 본 적 없이 이상한 코미디물이 맞다. 지저분한 유머와 ‘저게 말이 돼?’ 싶은 상황이 난무한다. 하지만 대중의 입맛에 맞춘 게 아닌, 감독의 취향을 날 것으로 밀어붙인 이야기는 그 자체로 완결성 있는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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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문에 초청됐던 <THE 자연인>의 크레딧 설명. 감독, 프로듀서, 극본, 촬영, 음악, 편집, 프로덕션 디자인, 음향 등 배우를 제외한 크레딧 모두에 노영석 감독의 이름만이 올라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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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가을에 22일간 촬영하고 편집하는 데 1년을 썼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냉면 가게에서 육수를 담당하는 ‘생활인’ 노영석이 모아둔 돈 2500여 만원을 들였다. 그리고 2023년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노 감독은 “아예 예상하지 못한 수상이었다”고 했다.

    “사회적 약자의 시선을 담는 등 의미가 있는 작품을 더 높게 봐줄 거로 생각했어요. 아이가 독감에 걸려서 시상식을 안 가려고도 했거든요.” 참석한 시상식에서 뜻밖의 큰 상을 받은 그는 눈물이 났다고 했다. “‘참 잘했어요’ 도장 찍어주는 기분이더라”던 노 감독은 그때의 감정이 북받친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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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을 앞둔 영화 <THE 자연인> 연출한 노영석 감독이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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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 수상 이후 2년 만의 개봉에 노 감독은 “사람들이 많이 보든 안 보든,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는 것”에 설렌다고 했다. 충무로의 신예로 주목 받던 감독이 1인 제작에 도전하기까지. 노 감독은 누군가는 이를 ‘후퇴’라 볼 수 있겠지만, 자신은 이 도전이 또 다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누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늘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게 보통이겠죠. 잘 됐던 것만 생각하고 살아가면 삶이 더 힘들지 않을까요. 영화를 준비하며 다른 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는 것만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한 편 더 만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도 명확하다. 1986년 초등학교 아이들이 외할머니댁으로 여행을 가며 벌어지는 일에 관한 내용이다. 이번엔 아이들이 고립되는 것이다. 노 감독은 “제가 어릴 때 못 놀아본 걸 놀아보고 싶어서 써두고, 더 잘 된 다음에 찍어야겠다는 마음에 놔둔 시나리오”라며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르니 어떻게든 그 이야기를 찍고 싶다”고 했다.


    ☞ 오해가 낳은 비극 다룬 영화 ‘조난자들’의 노영석 감독
    https://www.khan.co.kr/article/201403052132395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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