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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우크라 종전 대비, 中을 새 뒷배로… 김씨 왕조 45년 만에 ‘국제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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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내달 방중] 김정은 ‘다자 외교’ 데뷔, 왜?

    조선일보

    2019년 1월 8일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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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자(多者) 외교’를 꺼리던 아버지 김정일 시대의 외교 관행을 깨고 다음 달 3일 중국의 항일전쟁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참석을 결정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이후’를 생각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포탄 등을 제공하고 파병까지 하며 군사·경제적 지원을 받아 자신감을 얻었지만, 올해 들어 휴전 협상이 개시되자 다소 소원했던 중국과의 관계 복원에 나섰다는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28일 “트럼프 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시작한 만큼, 북한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를 대비할 필요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러시아는 전쟁 종식 후 유럽 쪽으로 정책 초점을 이동할 것이므로 북한으로서는 중국을 새로운 뒷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이 지금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대외 무역의 중국 의존도가 90%를 넘는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 복원은 필수란 것이다. 당장 북한이 10월 10일의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행사 등을 치르기 위해선 중국의 경제 지원이 필요하다.

    중국이나 러시아도 한·미·일 협력 강화 국면에서 북·중·러 밀착의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중·러가 주도하는 정치·경제·안보 협력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열어 미국에 대항하는 다극 질서를 구축할 예정이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은 “한·미·일 구도가 점점 구체화하는 데다 이재명 대통령이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탈피하겠다고 하면서 중국 입장에선 불쾌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주북 러시아 대사관도 이날 김정은의 전승절 기념식 참석에 대해 “모스크바, 평양, 베이징은 새로운 국제 질서 구축에 노력할 준비가 돼 있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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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10월 1일 중국 건국 5주년 경축식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오른쪽 둘째) 북한 주석이 톈안먼 망루 위에서 마오쩌둥(오른쪽) 당시 중국 주석과 함께 열병식을 보고 있다. 이 경축식에는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도 참석했다./경화시보 자료


    김정은의 이번 전승절 기념식 참석에는 1980년 김일성 주석의 유고슬라비아 방문 이후 중단된 김씨 왕조의 ‘다자 외교’를 45년 만에 재개한다는 의미도 크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여러 국가 정상이 함께 모이는 국제 행사 등에 참석한 적이 없고,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할 때도 은밀하게 이동했다. 방중·방러 사실을 사전 발표하지 않고 전용 열차로 이동했고, 북한 언론은 김정일이 귀국한 뒤에야 외국 방문 사실을 공개했다.

    반면 김정은은 국제사회에서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비슷한 ‘정상적 외교’를 하려는 모습을 조금씩 보여왔다. 2023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북·러가 동시에 ‘방러’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12일에는 푸틴과의 ‘정상 간 통화’ 사실도 공개했다. 이번 전승절 열병식은 김정은이 시진핑·푸틴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상 국가’의 면모를 보일 수 있는 기회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연구센터장은 “앞으로 SCO 등 중·러 주도 다자 협의체에 북한이 참여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9년 평양서 만난 김정은·시진핑 -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집단 체조 공연이 열리는 평양 5·1 경기장에 들어서며 군중의 환호를 받고 있다. 북·중 양국은 김 위원장이 9월 3일 중국 항일전쟁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다고 28일 발표했다.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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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은 냉전 시대 소련 공산당 대회나 중국 국경절 열병식 등 국제 행사에 자주 참여했다. 김일성은 1954년 중국 정부 수립 5주년 국경절 열병식에 참석해서 마오쩌둥 주석,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1서기 등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올랐다. 1959년 중국 정부 수립 10주년 국경절에도 참석해 호찌민 베트남 주석 등을 만났다. 1980년 요시프 티토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의 장례식에 가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과 회담했다.

    북한의 다자 외교가 줄어든 것은 1986년 짐바브웨 비동맹 회의를 앞두고 시험 비행하던 김일성의 전용기가 아프리카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겪고 나서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김일성 대신 짐바브웨에 갔던 김영남 외교부장은 “장마당 같은 곳에 오실 필요 없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이후 김일성, 김정일은 유엔 총회 등 국제 행사에 가지 않았고 김정일은 양자(兩者) 정상회담만 했다. 1967년 이후 북한이 ‘수령 중심의 유일 지도 체계’가 되면서, 점점 더 여러 정상 중 한 명이 되는 다자 외교를 꺼리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김동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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